복수의 화신? 고속성장 주역? …두 얼굴의 방글라데시 총리

[글로벌 스트롱맨]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 총리
야당 보이콧에 재집권 확실시…노벨상 수상자 등 정적 징역행
민주투사서 절대권력자로…"나라마다 민주주의 정의 달라"
의류산업 중심으로 경제 고속성장…빈부격차·인플레 과제
  • 등록 2024-01-06 오전 11:00:00

    수정 2024-01-06 오전 11:00:00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오는 7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에서 총선이 치러진다. ‘선거의 해’로 불리는 2024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주요 선거다.

5일(현지시간) 한 방글라데시 시민이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모습이 그려진 선거 선전물 앞을 지나고 있다.(사진=AFP)


‘원 우먼 쇼’ 된 방글라 총선…“일당제 길목” 우려

이 같은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에 방글라데시 국내외에선 해보나마나라는 평가가 나온다.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이 여당인 아와미연맹과 그 위성정당·관제야당뿐이기 때문이다. 영국 동양아프리카학대학교의 아비나시 팔리왈은 AP통신에 “이번 선거는 본격적인 일당제 국가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18년 총선에서도 야당 후보들이 잇따라 선거를 포기하면서 아와미연맹이 전체 298석 중 287석을 싹쓸이했다. 올해도 이 같은 모습이 재현된다면 셰이크 하시나 현 총리가 5년 더 집권 기간을 연장할 게 확실시된다. 영국 BBC는 이번 선거를 두고 하시나의 ‘원 우먼 쇼(one woman show)’라고 평가했다. 하시나는 1996년~2001년에 이어 2009년부터 지금까지, 총 20년간 방글라데시 총리를 맡고 있다. 현재 재임 중인 전 세계 여성 정상 중 집권 기간이 가장 길다.

방글라데시 야당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최대 야당인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은 지난해 일찌감치 선거 보이콧을 선언했다. 영국에서 망명 중인 타리크 라흐만 BNP 의장대행은 AFP통신사 인터뷰에서 투표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며 “방글라데시는 또 다른 가짜 선거를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BNP는 하시나가 유령 유권자와 부정투표로 2018년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시나와 맞붙을 대항마는 사라진지 오래다. 하시나의 최대 정적이자 BNP의 실질적 영수인 칼레다 지아 전 총리는 횡령 등 혐의로 연금된 상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인권운동가인 무함마드 유누스 전 그라민은행 총재도 노동법 등을 위반했다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유누스는 하시나 등 기성 정치인의 부패를 비판하며 그와 불편한 관계를 맺었다. BNP는 거물급 인사 외에도 2만명 넘는 자당 정치인과 지지자가 방화·폭력 등 ‘가짜 혐의’로 기소돼 사법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버지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 전 대통령 사진 앞에서 연설하는 하시나.(사진=AFP)


군부 쿠데타에 ‘방글라 국부’ 아버지 잃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철권을 휘두르는 하시나를 향해 ‘아시아판 철의 여인’이라고 표현했다. 19차례에 걸친 암살 시도에도 권력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 사람에게 적합한 별명이다. 2004년 수류탄 테러에선 목숨은 건졌지만 한쪽 귀 청력을 잃었다.

하시나가 처음부터 절대 권력자였던 건 아니다. 하시나의 아버지는 방글라데시의 국부로 불리는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 전 대통령. 1975년 방글라데시에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하시나의 인생이 바뀌었다. 독일에 머물던 하시나와 여동생 셰이크 레하나는 목숨을 건졌지만 아버지를 포함한 나머지 가족은 모두 살해당한다. 하시나는 지난해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그들(쿠데타군)은 내 어머니와 열 살밖에 안 된 동생, 시누이, 장애인인 삼촌을 죽였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하시나의 아버지를 몰아내고 권좌를 차지한 이가 지아의 남편 지아우르 라흐만이다. 하시나와 지아 사이 50년 가까운 악연은 이때 시작됐다.

인도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하시나는 1981년 아와미연맹 당수를 맡아 방글라데시로 귀국한다. 그때부터 하시나는 야당 투사가 된다. 당시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엔 10만명 넘는 사람이 모여 ‘국부의 딸’을 맞이했다. 팔리왈은 “하시나는 정치인으로서 매우 강한 자질을 갖고 있다. 바로 트라우마를 무기화하는 것이다”며 1975년 쿠데타 이후 하시나의 정치 역정을 설명했다. 하시나의 한 측근은 “하시나는 아버지의 업적이 미완이라고 봤고 자신만이 그것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지아우르 라흐만은 반대세력에 대한 유화책 차원에서 하시나의 귀국을 허용했지만 하시나가 귀국한 지 10여일 만에 신군부 세력에 암살당한다. 뒤이어 들어선 후세인 무함마드 에르샤드 군부정권에 맞서 하시나와 지아는 동맹을 맺었다. 두 사람은 수감·연금 생활을 반복했지만 1990년 민중봉기를 주도하며 마침내 군부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칼레다 지아(왼쪽) 전 방글라데시 총리와 하시나.(사진=AFP)


‘50년 라이벌’ 하시나와 지아

군부 붕괴 후 먼저 집권한 건 지아. 지아가 1975년 쿠데타 세력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자 두 사람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지금 BNP가 그런 것처럼 하시나와 아와미연맹도 투표를 보이콧하고 BNP의 부패 문제를 공격하며 지아에게 맞섰다. 그 결과 1996년 지아를 제치고 총리직에 올랐지만 하시나 내각 역시 실정을 거듭하며 2001년 권력을 내줘야 했다. 정권을 주고 받는 두 여성 거물을 향해 방글라데시에서 ‘여걸들의 전쟁’이란 말이 나왔다. 방글라데시 정치평론가 누룰 아민은 “타협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강경파가 양쪽 모두에 있었다”며 “우린 ‘전멸의 정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혼란 속에 2006년 군부가 주도하는 과도정부가 수립됐다. 하시나와 지아 모두 부패 혐의로 옥고를 치러야 했다. 2년 만인 2008년 치러진 총선에서 하시나는 예상 밖 압승을 거둔다. 그 이후 하시나는 정권을 놓치지 않는다. BNP는 총파업을 감행하며 하시나 내각에 맞섰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하시나는 절대권력을 구축했다. 방글라데시에선 하시나의 아버지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을 비판하는 게 금지될 정도다. 즉결처형 등 심각한 인권 침해 혐의도 받고 있다. 이를 견제해야 할 야당은 하시나의 철권에 와해될 위기에 처한 상태다.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에 하시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는 나라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사진=AFP)


빈부격차 과제 남긴 고속성장

하시나 정부의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다. 하시나 내각이 의류 산업 육성·인프라 확충 정책을 편 덕에 지난 15년 동안 방글라데시의 경제는 16배 성장했다. 특히 방글라데시의 의류 산업 규모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그 덕에 빈곤율도 절반으로 줄어들며 국민 살림살이도 폈다. 하시나는 “나는 이 나라를 배고픔과 빈곤이 없는 선진국으로 만들고 싶다”고 이코노미스트에 말했다. 다카에서 인력거꾼으로 일하는 압둡 할림은 “하시나가 우리 마을에 전기를 공급해 줬다”고 말했다.

다만 방글라데시 경제를 낙관하긴 이르다. 의류산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데다가 물가는 고공 행진하고 빈부격차는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카 고속도로 근처 빈민가에 사는 보쿨은 “나라가 발전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를 위한 발전은 아니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다카 외곽에서 과일을 파는 무함마드는 “정부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며 “이렇게 물가가 치솟으면 정직하게 돈을 버는 사람들은 살아갈 수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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