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지난달 말 어느날, 국회 본청의 한 엘리베이터. 새정치민주연합 초선 A 의원이 한 상임위 간사를 맡고 있는 새누리당 재선 B 의원과 2층에서 나란히 탔다. 둘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법안 얘기만 했다.
A 의원은 B 간사 소관인 자신의 XX법 개정안을 처리해달라고 부탁했고, B 간사는 “살펴보겠다”고 했다. A 의원은 재차 “정부가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면서 “꼭 좀 살펴봐달라”고 했다. B 간사는 “정부가 반대하는 게 아닐 거다. 지금 법안이 너무 많아서 다 챙겨보지 못하고 있다”며 6층에서 내려 상임위로 갔다. A 의원은 그 엘리베이터로 도로 2층으로 내려갔다.
두 인사의 대화는 국회의 입법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회의원들이 너무 ‘가볍게’ 법안을 발의하다 보니 계류법안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결과적으로 심사기능은 약해지고 있다. 불필요한 입법 비용이 커진 것이다.
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단순하게 양적인 지표만을 중심으로 의정활동을 평가하면 한계가 있다”면서 “그런 방식을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는 “의원들의 법안을 보면 별 성의도 없고 재탕 삼탕을 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입법기관 내에도 의정감시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입법 뿐만이 아니다. 국회의 예산심의권은 지역구 예산 혈투로 변질된지 오래다. 각 정부부처 장관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 지역구 의원들은 예산정국 내내 소위 ‘힘있는’ 실세들과 접촉하고자 혈안이 됐다. 국고에서 조금이라도 더 지원받기 위해서다. 국가 전체의 균형재정을 책임지는 예결특위의 취지는 이미 ‘현실을 모르는’ 얘기다.
국회 안팎에서는 내년에 새로 들어설 20대 국회는 이런 폐단이 없어지도록 리모델링돼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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