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 모뉴엘 사태

과도하게 많은 현금·생산을 늘리지 않았는데도 늘어난 재고자산
지나치게 긴 매출채권 회전율·실제론 마이너스인 영업현금흐름
"모뉴엘 재무제표엔 분식회계 정황 드러나 있다"
  • 등록 2015-01-31 오전 8:00:00

    수정 2015-02-01 오전 8:41:24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혁신업체로 주목받았다가 3조원대 허위 수출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기업. 중소기업 사기의 대명사가 돼버린 모뉴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적어도 나쁜 짓을 했다는 건 서울 시내에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봐도 다 알게 됐지요.

덩달아 이 회사에 보증을 해 준 무역보험공사(무보)와 무보의 보증서만 믿고 대출을 해 준 시중은행들까지도 ‘눈뜬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재무제표만 꼼꼼히 봤어도 모뉴엘의 분식회계 혐의는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다는 게 회계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모뉴엘 재무제표의 어떤 점에 분식회계 정황이 드러날까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구체적인 분식회계 내용이 발표되진 않았지만, 수사 중이라면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의문점을 수사당국이나 금융감독당국이 풀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먼저 모뉴엘이 가진 비정상적인 현금 보유량입니다. 투자처가 없어 현금을 쌓아놓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보유한 현금은 사업자금에 활용하기 때문에 현금성 자산 비중이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뉴엘은 2012년말에만 총자산 2294억원의 21.3%인 490억원이 현금이었고 이듬해에는 이 현금성 자산이 515억원으로 늘어납니다. 현금성 자산이 과도하게 많은 것, 영업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외화예금도 257억원에서 두배에 가까운 479억원으로 늘어나는데요. 우리나라 은행에 예금해도 되는데 굳이 외국 은행에 예금한 돈이 이렇게 많다면 의심을 해봐야겠지요? 아니나 다를까 모뉴엘은 우리나라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자신이 관리하는 홍콩 내 서류상회사(SPC) 계좌에 송금하는 방식으로 446억원을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관세청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매출액이 늘어나는 동시에 재고자산도 함께 늘어난 부분도 의심해야 할 대목입니다. 판매한 상품이 많은데 재고품도 많이 쌓였다면, 어떤 경우일까요? 상품을 엄청나게 많이 생산했을 때일 겁니다. 팔아도 팔아도 상품이 남아서 재고품으로 쌓였다는 얘기지요. 생산설비를 늘렸거나 공장 가동률을 크게 높였거나 하청업체에 생산을 부탁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겠지요. 하지만 모뉴엘은 이 3가지 경우 중 어느 한 가지에도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제품을 만들어 팔고 난 뒤 실제 현금이 유입되는 기간, 즉 매출채권 회전기간도 살펴봐야 할 항목 중 하나입니다. 통상 수출업체의 매출채권 회전기간은 30일 이내에 결제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뉴엘은 이 기간이 137일(2013년말 기준)에 달했습니다. 제품을 판 뒤 넉 달이 훨씬 넘어서야 현금이 들어온다는 것. 정상적인 수출이 아닐 수 있다고 의심할 수 있겠지요.

지난번 분식남에서 2회에 걸쳐 설명 드린 현금흐름표도 한 번 볼까요? 모뉴엘의 2012년말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143억원 플러스, 2013년말 15억원으로 얼핏보면 현금이 유입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국제회계기준(IFRS)의 원칙대로 매출채권을 은행에 매각해 손실 본 금액을 대출을 받아 이자를 지불한 것으로 본다면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2012년 974억원 마이너스, 2013년 1622억원 마이너스가 됩니다. 매출은 일어났지만 실제로 들어오는 현금은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매출채권, 즉 거래처에 외상값을 받을 권리를 은행에 팔아 돈을 받았지만, 거래처가 외상값을 못 갚으면 모뉴엘이 은행에 돈을 도로 갚아줘야 하니 실제로는 대출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죠. 물론 모뉴엘은 비상장사이기 때문에 IFRS 기준이 적용되진 않지만, 대출심사를 하는 사람들은 실질적인 경제활동의 내용을 더 중시하는 IFRS의 시선에서 기업을 바라볼 필요는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재무제표 곳곳에 위험 징후는 있었습니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대표는 “재무제표의 신뢰성은 회계감사를 믿을 수밖에 없지만, 금융기관들도 분식회계 정황이 있는 재무제표를 꼼꼼히 봤다면, 어이없이 사기를 당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일리 있는 얘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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