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으로 굳어진 법안 ‘빅딜’···“국회의원 권한 스스로 포기”
국회 입법조사처의 한 조사관은 바람직한 국회 입법기능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그러나 정작 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게 현실이다. 법안이 관련 상임위에서 충분한 논의도 거치지 않은 채 양당 지도부간 정치적 결단에 의한 법안 연계처리, 이른바 ‘빅딜(Digdeal)’이 관행화 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국회법 86조에 따라 법안에 대한 체계와 자구 심사를 해야 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역할은 축소되기 일쑤다. 같은법 59조에는 법사위에 회부된 법률안은 5일이 지나지 않으면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하거나 본회의에 부의할 수 없다.
이를테면 3일 새벽 본회의에서 처리된 여야간 ‘빅딜5법’인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 △관광진흥법안 △대리점거래공정화법안(남양유업방지법) △모자보건법 △전공의의수련환경및지위향상법 등은 정상적인 해당 상임위 심사와 법사위 심사를 거치지 않았다. 법사위 숙려기간 5일이라는 국회법을 어긴 셈이다. 2일 법사위원장인 이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심의거부를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법사위는 법 성안(成案)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데 이에 앞서 각 의원실·국회 입법조사처 법제실과 해당 상임위원회 전문위원 검토과정을 거친다. 이를 통해 위헌 소지가 있는 법률 조항을 걸러내고 정부 부처와 예산협의나 비용추계를 한다. 달리 말해 빅딜 관행이 거듭될수록 최소한의 성안 단계마저 거치지 않아 법안 완성도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지도부 중심의 협상에 의한 법안 처리는 상당히 전문성이 약화될 수 있는 구조”라며 “전문성을 갖춘 상임위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해 의결하고 본회의에서 의원들의 의사를 물어 통과시키는 구조로 가야한다”고 했다. 이어 “공천권 때문에 의원 자율성이 없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각 법안은 고유의 특성과 내용을 갖고 있고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도 다른데 패키지로 묶어 빅딜하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입법 심사·심의에 대한 권리·의무를 포기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달랑 82명이 법안 2만8000여건 검토···법제실 전문인력난 여전
국회 의안정보시스템(3일기준)에 따르면 19대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1만7150여건이 넘는다. △18대국회(1만3913건) △17대국회(7489건) △16대국회(2507건) 등과 비교하면 급격하게 증가한 수치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곳 인력은 4년째 정체돼있다. 법제실에 따르면 △2008년 63명 △2009년 71명 △2010년 77명 △2011년-2015년 82명으로 18대·19대 국회들어선 증가한 입법안에 비해 전문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중 입법 보좌관 인력은 50명이고 변호사 출신은 5~6명이 고작이다. 당연히 입법 지원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국회 입법시스템은 입법 전 검토과정이 많은데다 꼼꼼하게 자구수정이나 체계 등의 심사를 해야 한다”며 “제도적으로 기구 강화를 위해서는 변호사 인력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는 “법안 심의를 하는 입법 보조기구가 많지만 종국의 책임은 국회의원이 져야 하는 것”이라며 “해당 의원이 법안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지 또는 관련 상임위에서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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