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계급의 그대, 결혼생각은 접어라"

상위계급만 누리는 특권 '결혼'
"결혼결정, 사랑 아닌 계급"
경제불평등 '가족변화' 초래
수요·공급따라 결혼시장 변화
'계급이동사다리' 다시 놔야
…………………………………
결혼시장
준 카르본·나오미 칸|428쪽|시대의창
  • 등록 2016-11-09 오전 6:05:00

    수정 2016-11-09 오전 8:19:00

‘결혼시장’의 저자 존 카르본과 나오미 칸은 한때 보편성의 상징이던 결혼이 이젠 새로운 계급구분의 표식이 됐다고 주장한다. 심화한 경제적 불평등이 남녀의 짝 찾는 방식을 바꾸었고 결혼을 결정하는 건 사랑이 아닌 계급이라고 했다(사진=이데일리 디자인팀).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세상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결혼한 부류와 결혼하지 않은 부류. 이처럼 명쾌하고 깔끔한 기준이 또 있겠나. 게다가 이 구분은 어떤 잣대로 가림막을 치던 늘 걸리적거리던 ‘남녀차별 어쩌구’ 논란도 확실하게 잠재울 수 있다. 결혼은 거의 대부분의 남녀가 커플을 이루는 것으로 돼 있으니. 압도적인 수의 커플이 일생에 단 한 번만 한다는 것도 비교적 공평하다. 숨은 속사정에다가 이러저러하게 하고 싶은 말들이야 많겠지만. 결혼을 결심하는 동기가 돈·명예·권력보단 여전히 사랑에 쏠린다는 것도 순수해 보인다. 인간이 하는 그 어떤 행위보다도.

다만 결혼과 비혼의 수가 동수인 건 아니다. 결혼한 부류가 하지 않은 부류보다 많다. 이유는 여럿이다. 결혼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쉽다, 시달림이 적다, 사회생활에 유리하다 등. 한마디로 훨씬 더 정상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계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보편성의 상징이던 결혼이 점점 사회적·개인적으로 큰 숙제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결혼연령이 낮아지고 결혼율이 떨어진다. 덩달아 출산율도 하락하고. ‘안정적인’ 결혼생활이란 수식이 붙으면 상황은 더욱 난감해진다. 몇몇 혜택 받은 이들이 누리는 특권처럼 보이니까.

도대체 결혼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이유가 그리 단순치 않다. 소득을 매개로 한 ‘계급’이란 개념이 그 중심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미국의 법학자 준 카르본 미네소타대 법대 학장, 나오미 칸 조지워싱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서 나왔다. 두 저자는 소득과 결혼율 사이의 상관관계를 ‘심화한 경제적 불평등’에서 찾는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이들은 각종 통계는 물론 국가·시기·지역별로 남녀가 짝을 찾는 방식을 다룬 문헌과 조사를 모조리 뒤적였다. 수십 년에 걸쳐 결혼이, 또 가족이 왜 그토록 격한 반전과 갈등을 겪었는지 그 사연이 집집의 현관문을 삐져나온 순간이다. 짐작대로 일반적인 가족논리로만 풀 수 없는 매듭이다. 계급이 고리를 걸고 경제적 불평등이 그물을 치고 있으니.

▲이미 기울어진 장사 ‘결혼’…사랑 아닌 계급이 관건

결혼시장이 휘청한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도 사정이 비슷한가 보다. 미국서 가족이란 그림은 돈 벌어오는 아버지와 살림하는 어머니, 자녀 두세 명이 교외서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중산층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제 그 이미지는 산산조각 나 뿔뿔이 흩어졌다는 게 저자들의 진단이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재편한 경제적 계급이 가족을 재구성한 탓이란다. 물론 계급마다 요인은 다르다. 가족에게 닥친 전환을 온전하게 설명하려면 삶에서 계급이 차지하는 역할을 가늠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에 사는 가장 가난한 집단은 왜 결혼하지 않는지, 엘리트 여성은 어쩌다가 역사적 흐름을 거슬러 가장 많이 결혼하는 층을 이뤘는지, 수십 년 동안 모든 집단에서 꾸준히 증가한 이혼율이 교육·소득수준이 높은 집단에서 유독 떨어지는지 등.

혹시 여성의 문제인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지난 30년간 여성은 가장 드라마틱한 상승세를 탔다. 소득이 증가하고 교육수준도 높아지고. 하지만 심화한 불평등이 강타한 건 여성보단 남성이다. 경제불황으로 중산층 신화를 누리지 못하는 중간계급이 예전처럼 배우자를 고를 수 있는 여건을 잃은 것이다. 상위계급은 그들대로 최상층 여성을 차지할 경쟁에 내몰리고, 하위계급은 늘어난 숫자 때문에 결혼에 적절한 배우자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결혼은 ‘패키지 상품’…중간계급 남자는 어디에?

결혼시장의 계급화. 저자들은 그간 미국 내 논의가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헛다리를 짚었다고 비난한다. 보수파는 개인의 능력부족 탓으로 돌렸고 진보파는 인종차별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럼에도 결혼율 하락에 대한 분석에서 보수와 진보가 일치하는 지점이 있으니 더 이상은 임신 때문에 결혼하지는 않는 세상이 왔다는 것이다. 설명을 제대로 못 해내는 부분에서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누구는 임신을 하지 않았는데도 왜 굳이 결혼하려고 하지?”

결국 사회변화가 가족변화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결혼이란 게 결혼을 비롯해 그밖의 친밀한 관계가 패키지로 나온 상품이란 것을 인정해야 하는 거다. 결혼 역시 수요와 공급에 따라 달라지는 시장 안에 있다는 소리다.

저자들의 논리틀에서 보면 소득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중간계급 남성 수는 현저히 줄었다. 게다가 상위계급과 하위계급 남성 모두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과 결혼하고 싶어한다. 이는 남녀가 관계를 지속하고 싶게끔 하는 조건을 결정적으로 바꾼 계기가 됐다. 이후 상위계급은 다시 결혼의 가치를 받아들이며 결혼과 자녀 양육에 적극 나서지만 하위계급은 여전히 떨어진 결혼율을 극복하지 못하는 처지란 거다.

▲불평등 해소 ‘계급이동사다리’ 다시 놔야

불평등이 초래한 가족변화가 더욱 큰 불평등을 불러온다는 게 저자들의 판단이다. 자녀에게 투입하는 자원격차가 커질수록 계급장벽은 단단해지니까. 어려서부터 우수교육을 받는 상위계급의 자녀는 자신의 계급을 더욱 공고하게 유지한다. 이는 근면하게 일하는 노동자계급을 위로 끌어올리던 계급이동사다리를 아예 부러뜨리는 결과를 빚는다.

해결책 역시 불평등 해소다. 안정적인 가족을 회복하는 건 경제활동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하는 데 달렸다고 했다. 교육과 안정적인 직업·계급이동의 기회를 보장하는 정책 같은 거 말이다. 좀더 단순하게 풀면 이렇다.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이 버는 돈으로 가족이 먹고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한마디로 결혼에 관한 한 탈제도화가 아니라 재제도화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논지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결혼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결혼의 ‘새로운 모델’을 받아들여서다. 가령 부부가 동등하고 상호의존적이며 아이는 함께 키워야 한다는 모델. 결혼이 자신에 대한 투자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이미 젊은 남자는 일자리가 없으면 가족을 꾸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단다. 만약 그가 결혼을 하고 싶다면 월급이 아닌 다른 매혹적인 요소로 원하는 여성을 설득해 아이를 낳고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결혼도 시장의 논리라니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게 당연할 터. 틀린 주장도 아니다. 그럼에도 못내 씁쓸한 건 가장 사적인 선택에서도 주체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됐다는 인간적인 상실감. 그 틈을 책은 잘도 파고든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미모가 더 빛나
  • 빠빠 빨간맛~♬
  • 이부진, 장미란과 '호호'
  • 홈런 신기록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