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의 금융CAST]왜 21세기에는 대공황이 없었을까?

19세기와 20세기 초중반 극심했던 디플레이션
21세기 들어서는 대공황으로 번지지 않아
'화폐'에 대한 생각이 100년 사이 바뀌었기 때문
통화량 증가에 따른 성장 착시, 계속 유효할지 의문
  • 등록 2021-08-21 오전 11:00:00

    수정 2021-11-23 오후 6:45:43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지금도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의 여파는 계속되고 있지만 20세기 초중반의 경제대공황과 비교하면 양호한 편입니다. 이때의 혼란상은 군국주의와 파시즘의 출현을 낳았고, 온 세계를 세계대전의 전화로 몰아 넣었습니다.

21세기 글로벌금융위기가 공황으로 가지 않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왜 20세기에는 공황을 피하지 못했을까요? 인류, 정확히 말하자면 위정자들이 생각하는 ‘화폐의 관념’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경제대불황이란?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20세기 경제대공황 전에 19세기 대불황기가 있었습니다. 20년 가까이 디플레이션, 그러니까 물가 하락에 따른 불경기를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를 대불경기라고도 부릅니다.

1873년부터 1896년까지 20년 넘게 이어진 것이죠.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이 심각할 정도의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었습니다. 1990년부터 지금까지 디플레이션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과 비견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대불황기의 시작점인 1873년 뉴욕 제4 국립은행의 뱅크런 사태 (사진, 위키피디아)
이때의 시기를 요약하자면 영국 중심의 세계 경제 체제가 성장의 정점에 이르렀고, 이에 따라 인류가 겪는 첫 국제적인 경제불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로 간에 무역으로 연결되면서 어느 한 나라의 위기가 다른 나라의 위기로 전이되는 게 인지되던 시기였던 것입니다.

왜 ‘인지되는가’라고 하냐면은 이전에도 각 나라는 교역망이 연결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황 자체는 처음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하다못해 고대 이집트나 고대 로마 사회에서도 각 나라의 교역망은 지중해 바닷길과 육로 등을 통해 연결이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와 고대, 혹은 중세와 다른 점 하나는, 이때가 이성의 발달과 더불어 기술·공업화에 따른 생산력 증대가 있었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17세기 증기기관이 영국에서 실용화되고, 이에 따라서 기계공학이 발달하게 됩니다. 증기기관이라는 동력기관을 통해서 대량의 생산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기계의 출현으로 그 이전 인간이 분업해서 생산을 하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양의 생산물을 산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술의 발달은 생산력의 증대를 뜻하고, 이 즈음 금융도 고도화됩니다. 17세기 주식회사의 발달과 그에 따른 자본 거래가 체계화되면서 대형 금융가문, 대형 금융사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단순하게 돈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게 아니라 그 돈을 갖고 투자를 하고 대출을 해주면서 이를 늘려가는 금융 자본가들이 생겨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투기의 시대 대다수 자본가는 패가망신의 길을 걸었겠지만, 성공적으로 투자를 했던 금융가문들은 더욱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의 돈을 갖고 운용할 수 있게 됩니다. 금융공학의 발달인 것이죠.

그 이전 인류는 경험하지 못할 정도의 생산력 증대를 이뤄냈지만, 문제는 수요에 있었습니다. 늘어나는 공급에 수요가 뒷받침되지 못하다보니, 남는 생산물이 생기게 되고, 이는 가격 하락, 더 나아가 디플레이션에 빠지게 됩니다.

20세기 대공황도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문제에서, 공급을 뒷받침해주지 못했던 수요의 문제입니다. 미국의 뉴딜정책의 골자도 결국은 정부가 이 수요를 창출해줘서 국민들에게 쓸 돈을 공급해주고, 생산물을 소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대불황의 진화, 급격한 수요의 창출

결국 뉴딜과 최근의 코로나19, 그리고 글로벌금융위기 등의 위기 진화 과정을 보면 시중 통화량을 늘려 수요를 살리는 게 있었습니다. 고전경제학자들이 주창했던 ‘작은정부’론에 입각해서 방관했다가는 수요도 죽고 공급도 죽으니, 정부가 직접 나서 소방수 뿌리듯 현금을 살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수십년간 이렇게 돈을 뿌리는 정책에 익숙해져 있어, 크게 특이하게 느껴지지 않긴 합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정부 재정 적자와 이에 따른 빚을 우려하고 있긴 합니다.

출처 : 이미지투데이
또 일각에서는 통화량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물건은 그대로인데 통화량이 증가하면, 돈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고 이는 물가 상승을 의미하게 됩니다.

만약 19세기에 살던 사람이 21세기에 와서 이런 정부의 정책을 본다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아니 이 사람들은 어디서 저렇게 많은 돈이 나와서 마구마구 화폐를 찍어서 뿌릴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돈에 대한 관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관념의 세계에 있던 ‘돈’이 현실화된 게 ‘화폐’

그들이 생각하는 돈의 관념은 무엇일까요. 현대 우리가 생각하는 돈의 관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교환 가치가 있으면서 모아두고 있으면 가치가 축적이 되고, 누구나 선망하는 물건으로,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이든 바꿀 수 있어야죠.

그리고 그 가치의 평가가 계량적으로 돼야 합니다. 양이 늘어나면 그에 따른 가격도 일정하게 올라가고, 그러면서 희귀하면서 또 그러면서 너무 구하기 힘들면 안되고. 흔해서도 그렇다고 너무 진귀해서도 안됩니다.

이런 이상화된 돈의 관념은 사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보듯 이상의 세계에나 있습니다. 실상 이렇게 완벽한 돈은 현실 세계에 없는 것이죠. 사람들이 머릿속에 완전한 신의 형상을 상상하듯, 또 완전한 돈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상화된 돈의 모습에 가장 근접한 게 바로 ‘금’입니다. 지금은 흔한 금속 중 하나가 됐지만 ‘은’도 과거부터 수천년간 내려오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돈의 모습에 가장 근접하게 접근했습니다.

금은 썩지 않습니다. 금속이란 특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보물로 취급이 될 수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잘 만들어 주조하면 화폐도 될 수 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금을 다들 갖고 싶어합니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금과 은을 주된 화폐로 봤어요. 단지 금과 은을 들고다니기 힘들고 보관의 문제도 있다보니 지폐가 대용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이미지투데이
‘금’의 굴레에 갇혀 있던 19세기 화폐

19세기와 21세기의 결정적 차이는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화폐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입니다. 19세기에 사는 사람들은 금에 기반하지 않은 채 지폐를 찍어낸다는 것을 ‘속이는 행위’로 볼 것입니다.

만약 왕이 찍어낸 지폐가 알고 보니 금과 상관없이 마구 찍어낸 것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 지폐를 신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현물 금화로 만들어서 유통시키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19세기 대불황이 20년 넘게 유지됐던 것은, 그때까지 사람들이 ‘통화량 증가에 따른 착시’를 활용할줄 몰랐던 게 컸습니다.

달리 보면 생산된 물건은 많이 늘었는데, 이를 사줄 통화량은 한정돼 있다면 물건의 가격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깊은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것이죠. 계속 생산되는 재화보다 양이 일정한 화폐의 가치가 더 높아지는 것입니다.

당시 화폐의 수량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던 데는 오늘날의 기축통화가 없었던 데 있습니다. 채굴량이 한정된 금이 그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당시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각 나라들의 통화는 각자 나라에서 유통될 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국제 통화라고 할 수 있는 것, 믿을 수 있는 교환의 매개체가 금과 은 등 광물에 의존하고 있었고, 이러다보니 급속한 공급 증가를 받아줄 돈의 양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달러 중심의 체계를 만들자

2차세계대전 말미에 각국 열강들이 모입니다. 승전국들 말입니다. 20세기 전반기에만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과 국제 질서 체계를 잡기 위해 논의합니다. 이 와중에 미국이 세계 주도 국가로 발돋움했고, 유럽은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한 정치 경제 통합을 합니다.

세계경제가 성장하는 데 있어 통화량 조절 담당을 미국이 하게 됩니다. 아주 힘이 세어진 미국이 순채권국의 입장에서 세계 통화를 달러로 하고 달러의 가치를 금에 페어링 한 것이죠.

출처 : 이미지투데이
각 나라들은 달러로 교역을 하고, 그 달러를 미국이 금으로 바꿔준다고 약속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각 나라의 통화는 달러에 페어링 됩니다. 이렇게 하면 적절하게 미국이 통화량을 늘려주고, 디플레이션의 반복은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패전국 일본과 독일 등이 급속 성장을 했고, 세계 경제의 성장에 따라 달러화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경제의 성장은 통화량의 증가를 필연적으로 부를 수 밖에 없고, 통화량의 증가는 돈의 가치 하락을 부르게 됩니다. 고속성장국가일 수록 물가가 높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세계경제가 성장하고 달러화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는데, 그 달러화는 금의 고정된 가치로 묶여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금 1온스를 35달러로 바꿔줄게, 우리를 믿어”라고 했는데, 실제 시장에서 달러화의 가치는 금 1온스에 50달러를 넘을 정도가 되었던 것이죠.

미국 입장에서는 이런 불균형을 참을 수 없었고, 가뜩이나 일본과 독일에 대한 무역적자가 심화되던 차에, 이를 포기하게 됩니다. 바로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이고, 이를 1971년 당시 닉슨 대통령이 선언했기 때문이 ‘닉슨쇼크’가 됩니다.

미국은 그때부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달러를 마구 찍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세계 경제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었고 이에 따른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높아서, 1차세계대전 직후 바이마르공화국 때처럼 통화 가치의 하락이 없었던 것이죠.

동네 최고 부자가 차용증과 어음을 마구 찍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동네 주민들은 미심쩍지만, 그래도 다른 이웃주민들과 거래하는데 필요하고, ‘설마 저 부자가 망하겠어’라는 마음에 이를 부지런히 사서 활용합니다.

금이 아니라 시장 상황에 따라 달러 가치가 변화를 하게 됐고 이에 따라서 각국의 통화 가치도 요동을 칩니다. 이른바 환차익을 노린 핫머니, 펀드들의 활동이 시작합니다.

(금융이란 것이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해주고 여기서 이자를 받는 것을 넘어서, 가격의 변동 곡선을 보다가,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거래에까지 넓어지는 것이지요. 각국의 환율 변동에 따라 누릴 수 있는 이익이 늘어난다는 것에 착안한 것입니다.)

이젠 화폐가 넘치는 시대, 인류가 안 가본 길?

21세기를 넘어서는 이제 화폐 과잉을 걱정할 때가 됐습니다. 역사적으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가 위기에 빠지면 어김없이 화폐가치는 떨어졌고, 그 화폐는 남발되곤 했습니다. 국민들은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약간 신기합니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 국가들의 통화량은 경제 성장 규모 이상으로 돈을 풀었지만, 우려했던 인플레이션은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여전히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통화량만 늘린다고 해서 디플레이션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논의될 부분은 시장 충격을 줄이면서 통화 증가량을 서서히 조절해나가야할 때인 것 같습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와 미국 잭슨홀 미팅이 열리는 8월26일 이 같은 힌트가 구체화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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