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전화올까 전전긍긍‥연말이 두려운 임원들

핑크슬립은 없어..발표 하루이틀 전에 전화로 통보
고문·자문역 자리 주고 1~2년간 지원..재취업도 알선
“퇴직임원 대우가, 남아있는 직원 사기에 영향 미쳐”
인력 이동 잦은 IT 업계는 퇴직임원 예우 없어
  • 등록 2018-12-04 오전 7:39:18

    수정 2018-12-04 오전 7:39:18

[이데일리 안승찬 이소현 김유성 이연호 기자] “화장실 갈 때도 휴대폰 꼭 쥐고 갑니다. 혹시나 전화가 올지 모르니까요.”

연말이 되면 기세등등하던 임원들은 무척이나 예민해진다. 기업들의 연말 인사 발표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홀로 깊은 패배감에 빠지기도 하고 막연한 기대감에 부풀기도 한다. 누군가는 내심 축하전화를 기다리고, 또 누군가는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번 주 인사발표를 앞둔 삼성 내부에선 긴장감이 감돈다. 삼성에 ‘핑크 슬립’은 없다. 핑크 슬립은 해고통지서를 일컫는 말이다. 분홍색 해고통지서를 급여봉투에 넣어서 해임 통보를 하던 포드자동차의 관행에서 나온 말이다. 핑크 슬립은 임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삼성은 승진자보다 퇴직자를 먼저 챙기는 문화가 있다. 모든 퇴직할 임원에겐 인사 발표 전에 전화나 면담을 통해 통보한다. 보통 인사 발표가 나기 하루 이틀 전에 알려준다. 이메일이나 서류로 퇴직 통보를 받는 일은 거의 없다.

전무나 부사장급 퇴직 임원은 대표이사가 직접 챙기는 경우도 많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아요.” 삼성의 한 대표이사가 했던 말이다. 일일이 전화하고 면담을 진행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이지만, 나가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여기는 문화가 자리잡은 결과다.

삼성의 인사발표는 주 후반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것도 퇴직자에 대한 배려 차원이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회사를 나가라는 통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는 사람은 없다. 경우에 따라 크게 낙담하기도 한다. 삼성의 한 인사담당자는 “주 후반에 발표해서 가급적 주말동안 마음을 추스릴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은 퇴직자에게 인심이 후한 편이다. 전화 통보 이후 공식적인 인사 명단이 발표되면, 퇴직 임원은 본인 희망에 따라 최대 2년까지 고문·자문역 등을 맡을 수 있도록 한다. 일정 수준의 급여도 지급한다. 사무실과 차량을 제공하기도 한다. 삼성의 퇴직 임원들은 ‘삼성 출신’이라는 이름값 때문에 재취업이 비교적 잘되는 편이다.

올해 승진잔치가 벌어진 LG그룹에서도 한편에서는 쓸쓸히 떠나는 사람이 많다. 41세의 나이에 회장에 오른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대대적인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무려 134명의 신임 상무가 선임됐다. 2004년 완료된 GS 등과의 계열 분리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승진자가 많다는 건 그만큼 나가는 사람도 많다는 뜻이다. LG 관계자는 “퇴직자가 승진자 숫자보다는 다소 적다”고 말했다.

LG 역시 퇴직자를 열심히 챙긴다. 보통의 경우 인사팀 담당자가 직접 퇴직 대상 임원을 찾아가 현재 회사 상황 등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한다. 희망하는 퇴직 임원들은 1~2년간 고문이나 자문역을 맡는 경우가 많다. LG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구본준 부회장도 장자경영이라는 LG가(家)의 전통에 따라 내년 3월 퇴임하고 고문역을 맡게 된다. 42년 ‘LG맨’이었던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역시 3M 출신의 신학철 부회장에서 자리를 내주고 고문 예우를 받을 것으로 전해졌다.

LG는 제2의 인생을 설계하려는 퇴직 임원을 위해 사업 구상과 전업 준비를 지원하는 ‘LG크럽’을 운영한다. 전·현직 임원간 여기서 만나 안부도 묻고 정보를 교류하기 위한 모임이다. 삼성에도 ‘성우회’라는 비슷한 모임이 있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은 창업을 지원하거나 전직을 알선하는 ‘아웃플레이스먼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현대차그룹도 사장급 이상 임원은 퇴임 후 고문으로, 나머지 임원은 자문으로 1~2년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현대차 퇴직 임원은 협력업체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완성차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협력업체 입장에선 현대차 출신 퇴직 임원은 영입 1순위다.

재계 한 관계자는 “퇴직 임원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가 내부 직원의 사기에 영향을 미친다”며 “임직원들은 퇴직하는 이들이 겪는 일은 자신들도 언젠가는 겪게 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우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귀띔했다.

IT 업계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포털 등 IT·인터넷 업계는 퇴임 임원에 대한 특별한 예우가 없다. 직원들의 이직이 비교적 자유롭고 기업 내 조직 구조도 대기업과 비교해 유연하기 때문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임원이라는 직급 구분 자체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최고경영자(CEO)에 대해서는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퇴직 후 고문직을 부여하고 일정 수준의 보수를 지급한다.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와 임지훈 전 카카오 대표도 퇴직 이후 혜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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