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다빈치가 피렌체 공화정에 피사를 무릎 꿇게 만들 수 있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제안한다. 항구도시인 피사로부터 아르노 강을 빼앗아 버리자는 것이다. 다빈치의 아이디어는 이러했다. 아르노 강 상류에 인공 운하를 만들어 강물 줄기를 다른 쪽으로 빼돌리면, 피사의 핵심 비지니스인 무역과 물류에 타격을 입게 된다. 피렌체는 아르노 강물의 통제권으로 피사를 압박하는 것이다. 피렌체 공화정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다빈치의 계획에 부정적이었다.
그때, 한 인물이 다빈치의 계획에 신뢰를 보내면서 실행에 옮겨진다. 다빈치의 대담한 아이디어를 승인한 인물이 바로 니콜로 마키아벨리이다. 결국 다빈치의 아르노 강 운하 프로젝트는 아르노 강 줄기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 되면서 조기 종료한다. 다빈치는 정확한 계산으로 운하를 설계했지만, 현장 공사를 진행한 담당자가 제멋대로 공사를 벌였기 때문이다. 비록 아르노 강 프로젝트는 실패했지만, 두 사람의 신뢰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마키아벨리와 다빈치가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살았을 뿐 아니라 긴밀히 교류했다는 사실은 의외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정치인과 예술가를 연결시킨 계기가 된 인물이 이탈리아의 풍운아 체사레 보르자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고만 고만한 도시 국가들이 게르만 민족이 장악한 신성 로마제국의 계략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소모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는 로마 교황청의 보호권을 신성로마제국에 헌납한 후 되찾을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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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공화정의 외교 사절로 파견된 마키아벨리는 사실 피렌체 정부가 보르자를 염탐하기 위해 보낸 스파이였다. 보르자는 그의 정체를 일찌감치 눈치 챘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정복 여행을 함께 하도록 허락한다. 이 여행에서 마키아벨리와 다빈치는 젊고 대범한 정복자 보르자에게 매료된다. 이탈리아를 재통일하여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젊은 야심가를 어느 이탈리아인이 사모하지 않겠는가.
세월이 흘러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다시 장악한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생명은 끝났고, 반란 혐의로 옥고마저 치른다.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자신의 삶을 바친 공화정이 아닌 강력한 군주제를 옹호하는 ‘군주론’을 집필한다. 그는 이 책을 새로운 군주 메디치 가문에 헌정하여 정치적 재기를 꾀하려는 의도였다.
결국, 마키아벨리는 보르자의 악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논지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시대의 변천을 거치면서 삶의 흔적은 바래고, 권력의 치부를 정당화하는 그의 글만 살아남았다. 군주론이 시간을 초월해 살아남은 이유는 부패한 세습 권력뿐 아니라 권력지형의 반대편에 놓인 혁명가들도 자신들의 인간적 과오로부터 민중의 눈과 귀를 가리는데 활용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아르노 강가에서 통일된 세상을 꿈꾸던 세 사람의 운명은 군주론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던진다. 다빈치는 미켈란젤로에 밀려 후원자를 구하지 못하다가, 프랑스 황제의 도움으로 조용히 여생을 마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발판으로 정치적 재기를 꾀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쓸쓸히 인생을 마감한다. 군주론의 주인공인 보르자는 길거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 뿐 아니라, 유럽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권력자들이 대중에 던지는 달콤한 주장이 그들의 악행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악행은 악행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