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태의 코덱스]아르노 강의 세 사람

  • 등록 2019-12-12 오전 7:01:00

    수정 2019-12-12 오전 7:01:00

[임규태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수석고문]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모나리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다른 그림들과 구분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모나리자의 배경이다. 대부분의 초상화는 모델이 앉아있는 공간을 그려 넣지만, 모나리자의 배경은 완전한 형태의 풍경화이다.

모나리자 뒤에 뜬금없이 그려져 있는 풍경은 아르노 강이다. 아르노 강은 이탈리아 반도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경제·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강이다. 아르노 강 상류에는 피렌체가, 하류에는 피사가 위치해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실험으로 유명한 피사는 물류와 무역의 중심지였다. 내륙에 위치한 피렌체는 경제적, 전략적으로 피사를 손아귀에 넣고 싶었지만, 피사의 강력한 저항에 번번이 실패했다.

이때, 다빈치가 피렌체 공화정에 피사를 무릎 꿇게 만들 수 있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제안한다. 항구도시인 피사로부터 아르노 강을 빼앗아 버리자는 것이다. 다빈치의 아이디어는 이러했다. 아르노 강 상류에 인공 운하를 만들어 강물 줄기를 다른 쪽으로 빼돌리면, 피사의 핵심 비지니스인 무역과 물류에 타격을 입게 된다. 피렌체는 아르노 강물의 통제권으로 피사를 압박하는 것이다. 피렌체 공화정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다빈치의 계획에 부정적이었다.

그때, 한 인물이 다빈치의 계획에 신뢰를 보내면서 실행에 옮겨진다. 다빈치의 대담한 아이디어를 승인한 인물이 바로 니콜로 마키아벨리이다. 결국 다빈치의 아르노 강 운하 프로젝트는 아르노 강 줄기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 되면서 조기 종료한다. 다빈치는 정확한 계산으로 운하를 설계했지만, 현장 공사를 진행한 담당자가 제멋대로 공사를 벌였기 때문이다. 비록 아르노 강 프로젝트는 실패했지만, 두 사람의 신뢰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마키아벨리와 다빈치가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살았을 뿐 아니라 긴밀히 교류했다는 사실은 의외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정치인과 예술가를 연결시킨 계기가 된 인물이 이탈리아의 풍운아 체사레 보르자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고만 고만한 도시 국가들이 게르만 민족이 장악한 신성 로마제국의 계략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소모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는 로마 교황청의 보호권을 신성로마제국에 헌납한 후 되찾을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사생아로 태어난 보르자는 아버지인 교황의 뜻을 따라 이탈리아의 재통일을 꿈꿨던 인물이다. 보르자는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교황청의 보호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분열된 이탈리아를 통일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한다. 그는 아버지가 선물한 추기경직을 스스로 포기하고 프랑스 황제에 충성을 맹세한다. 신성로마제국의 압박으로부터 프랑스라는 보호막을 얻기 위해서였다. 교황인 아버지와 프랑스 황제의 지원을 받은 보르자는 통일 이탈리아를 건설하기 위한 정복 전쟁을 시작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모나리자’의 배경은 아르노 강이다.(사진 위), 다빈치가 그린 아르노 강의 운하 계획(아래)
이 무렵 후원자를 잃게 된 다빈치는 젊은 정복자 보르자에게 접근하여, 그의 군사 고문 자격으로 이탈리아 정복 여행에 동행한다. 바로 이 여행에서 다빈치는 아르노 강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다수의 스케치를 남겼고 모나리자의 배경으로 재활용하게 된 것이다. 보르자의 정복 여행에는 다빈치 이외에 제3의 인물이 동행했는데, 그가 바로 마키아벨리다.

피렌체 공화정의 외교 사절로 파견된 마키아벨리는 사실 피렌체 정부가 보르자를 염탐하기 위해 보낸 스파이였다. 보르자는 그의 정체를 일찌감치 눈치 챘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정복 여행을 함께 하도록 허락한다. 이 여행에서 마키아벨리와 다빈치는 젊고 대범한 정복자 보르자에게 매료된다. 이탈리아를 재통일하여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젊은 야심가를 어느 이탈리아인이 사모하지 않겠는가.

세월이 흘러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다시 장악한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생명은 끝났고, 반란 혐의로 옥고마저 치른다.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자신의 삶을 바친 공화정이 아닌 강력한 군주제를 옹호하는 ‘군주론’을 집필한다. 그는 이 책을 새로운 군주 메디치 가문에 헌정하여 정치적 재기를 꾀하려는 의도였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하면서 염두에 둔 이상적인 군주의 모델이 보르자였다. 문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기에는 보르자의 평판이 너무 나빴다는 사실이다. 보르자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던 형을 살해했을 뿐 아니라, 배다른 여동생과 근친관계를 유지했고, 질투에 눈이 멀어 여동생 남편들을 살해했다. 악행과 기행을 거듭하던 보르자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적병의 칼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의 시체가 반나체로 길거리에 버려졌을 때, 매독의 흔적을 가리기 위해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결국, 마키아벨리는 보르자의 악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논지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시대의 변천을 거치면서 삶의 흔적은 바래고, 권력의 치부를 정당화하는 그의 글만 살아남았다. 군주론이 시간을 초월해 살아남은 이유는 부패한 세습 권력뿐 아니라 권력지형의 반대편에 놓인 혁명가들도 자신들의 인간적 과오로부터 민중의 눈과 귀를 가리는데 활용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아르노 강가에서 통일된 세상을 꿈꾸던 세 사람의 운명은 군주론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던진다. 다빈치는 미켈란젤로에 밀려 후원자를 구하지 못하다가, 프랑스 황제의 도움으로 조용히 여생을 마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발판으로 정치적 재기를 꾀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쓸쓸히 인생을 마감한다. 군주론의 주인공인 보르자는 길거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 뿐 아니라, 유럽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권력자들이 대중에 던지는 달콤한 주장이 그들의 악행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악행은 악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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