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사장의 性이야기](22)성인용품사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 등록 2016-04-24 오전 10:13:23

    수정 2016-04-24 오전 10:13:23

[최정윤·곽유라 플레져랩 공동대표] 플레져랩을 창업한 지도 어느새 8개월하고도 2주가 되었다. 수년간 직장인으로, 프리랜서로 커리어를 꾸려 온 우리가 이십 대의 끝자락에 전 재산을 털어 성인용품 매장을 차린 것은 나름 인생을 건 도박이었다. 사업 초기, 대출은 줄줄이 거절당하고 규제까지 신경 써야 하는 등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오픈 하자마자 ‘젊은 비혼 여성 둘이 여성을 타겟으로 한 성인용품 사업을 한다’라는 특이점으로 관심을 끌 수 있었다.

그간 30차례 이상 국내외 언론에 소개된 덕분에 꽤 많은 이들이 플레져랩을 찾고 있다. 작년 8월 서울 합정역 인근의 점포 하나로 시작한 우리가 지난달 신사동 가로수길에 두 번째 매장을 차리는 등 첫 자영업 도전치곤 나쁘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다.

최정윤(오른쪽), 곽유라 플레져랩 공동대표. 사진=플레져랩
몇 번 우리의 매출 규모를 경제지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그 이후 부쩍 창업 문의가 늘었다. 전화, 이메일, 그리고 직접 방문으로 성인용품점 창업에 관심이 있는데 컨설팅을 해 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 수년간 비슷한 아이템을 고민했노라는 이들부터 은퇴 후 한 번 도전해 보고픈 사업이라는 사람들까지 그 사연과 연령대가 다양하다. 절박한 심정을 담아 “한 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는 자필 편지를 등기로 보낸 사람도 있었다.

안타깝지만 현재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씩 일을 하는 우리로선 창업 관련 상담을 할 여력이 없다. 그렇지만 하루에 적게는 한두 명, 많게는 다섯 명 이상으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다 보니 그냥 단순히 거절하는 것으로는 좀 모자란 것 같았다. 우리가 당장 돕진 못해도 무언가 건설적인 조언을 할 수 있다면 그리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 사업을 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우리 보다 업계에서 10년 이상 버텨 온 터줏대감들이 해줄 말이 더 많을 것이다. 이들이 지난 세월 동안 법정 싸움 끝에 성인용품 수입 합법화를 이뤄내는 등의 노력을 했기에 이젠 큰 무리 없이 합법적으로 성인용품 사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성인용품 사업은 특수하고 제약이 많다는 점을 작년에 플레져랩을 세우면서 톡톡히 느꼈기에, 그걸 보탠 몇 가지 생각을 나누려 한다.

먼저 이 사업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적성은 ‘섹스토이를 좋아하는 것’이다. 성인용품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안 써본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앞으로 관련 사업을 하고 싶다면 남자건 여자건 본인이 직접 사용해 보고 기기가 주는 감각과 그 기쁨을 느껴보는 것이 맞는 순서라 생각한다. 자신도 매혹하지 못하는 물건을 남들에 파는 것이 잘 되기 어렵다는 게 우리의 지론이다.

다음, 사업적 전망을 보자. 국내 섹스토이 산업은 지속해서 팽창하겠지만, 새로 유입된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단 국내 온라인 성인용품 사이트는 현재 포화상태다. 이미 많은 물품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업체들이 자리 잡은 지 오래고, 그 이외의 사이트들의 상품과 가격, 서비스는 비슷비슷하다. 아주 특이한 물건을 판매한다거나 확 튀는 신선한 방식으로 온라인 쇼핑몰을 꾸밀 재량과 예산이 없다면, 괜히 사이트 제작비만 낭비하는 셈이 될 수 있다. 온라인 홍보엔 제약도 많다.

성인용품점 ‘미스에스리더’ 전경. 사진=플레져랩
그렇다면 오프라인 매장을 차리는 건 어떨까? 과거에는 많은 상점이 정식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은 기기, 디자인 카피 제품, 불법 의약품 등을 마구잡이로 ‘부르는 게 값’ 식으로 팔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게 통하지 않는다. 검열과 단속도 더 까다로워졌음은 물론, 소비자도 검색을 통해 대략의 시세를 파악하고 있다. 아, 그리고 오프라인 매장을 차린 후 홍보를 하고 싶어도 역시나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만약 자리를 잡을 몇 달간 버틸 여력이 있다면 괜찮지만, 그게 아니라면 초조해질 것이다. 또 점포를 차리는 데는 아무리 간단하게 해도 기본적으로 큰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부담이 커진다. 게다가 성인용품은 ‘향락 산업’으로 분류되어 그 어떤 창업 지원금도 받을 수 없다.

간혹 이 일이 ‘소액 창업이 가능한 쉬운 사업’이라 하는 문구가 눈에 띄기도 하는데, 이 비즈니스는 절대로 간단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 어떤 업종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는 업종이다. 문화 트렌드를 읽어내는 한편, 다양한 섹스토이와 그 특질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굿바이브레이션즈 전경. 사진=플레져랩
우리가 이상적으로 보는 섹스토이의 천국, 샌프란시스코엔 이름을 떨치는 가게만 해도 스무 군데가 넘는다. 이 상점들은 제각각 고유의 개성을 갖고 있고, 몇 년에서 수십 년 까지 영업하며 지역의 명물로 거듭났다. 대표적인 섹스토이 브랜드 ‘굿 바이브레이션즈(Good Vibrations),’ 지난 27년간 가죽 페티시 제품을 판매해온 ‘미스터 에스 레더(Mr.S Leather),’‘ 란제리에 방점을 둔 ’핑크 버니(Pink Bunny),‘ 소규모에 좀 더 캐쥬얼한 ’시크릿츠(Secrets)‘ 등이 각기 다양한 고객층을 유치하며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생기 있는 섹스토이 생태계가 생겨날 수 있다면 우리로서도 반가운 일이다.

그러니 위에 열거한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꼭 성인용품점을 열고 싶다면 자신의 철학을 녹여낸 특별한 성인용품점을 기획하길 바란다. 섹스토이 소비자로서 불편했던 점, 아쉬웠던 점 등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를 만든다면 그나마 승산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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