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야인시대]③ 불금 지새운 동네서점에선 무슨일이

논현동 심야책방 북티크 체험기
독서삼매경에 빠져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매주 금요일밤 오후 10시~오전 6시
30여명 자리지켜…자유로운 북토크도
  • 등록 2016-08-05 오전 6:06:00

    수정 2016-08-05 오전 7:38:03

지난달 23일 새벽 1시께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책방 북티크의 ‘심야책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손님들이 저마다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사진=김용운 기자).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지난달 22일 금요일 오후 10시. 이른바 ‘불금’의 황금시간대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책방 북티크를 운영하는 박종원 대표는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운영하는 ‘심야책방’ 프로그램에 얼마나 손님이 찾을지 걱정이 됐다. 일년 중 절기상 가장 덥다는 ‘대서’답게 열대야가 나타난 밤이었다. 무더운 날씨를 뚫고 굳이 책을 읽겠다며 밤을 새울 손님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박 대표의 걱정은 기우였다. 오후 10시가 넘자 독서에 대한 열정으로 불금의 밤을 보내려는 손님이 속속 모여들었다. 입장료 1만원을 낸 이들은 제각각 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서점에 비치한 대여용 책을 읽거나 자신이 가져온 책을 꺼내 저마다 독서삼매경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손님에게 줄 커피를 내리며 흡족한 표정으로 서점을 둘러봤다. 오늘의 심야책방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생각에서다.

2014년 12월 문을 연 북티크는 ‘책’(book)과 작은 가게를 뜻하는 ‘부티크’(boutique)를 합쳐 만든 상호다. 평소에는 카페를 겸한 동네서점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한다. 북티크가 주목받은 건 개점과 함께 시도한 ‘심야책방’ 프로그램 덕이 크다.

◇‘불금’ 풍경 바꿔…치킨+맥주 대신 커피+책

박 대표는 모두가 치킨에 맥주를 마신다는 소위 ‘불타는 금요일’ 밤에도 분명히 홀로 책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으로 봤다. 주변에서는 반신반의했지만 일본 만화 ‘심야식당’이 국내서도 인기를 얻었고 심야에 문화적 욕구를 채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박 대표는 “개점 초창기 심야책방을 열었을 때 손님이 달랑 한명뿐인 적도 있었을 만큼 운영이 쉽지 않았다”며 “그러나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 몇달 전부터는 매주 많게는 30명이 넘게 심야책방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날 자정쯤이 되자 넘자 한두 명씩 찾아온 손님들로 어느새 빈 테이블을 찾기 힘들어졌다. 서울 송파구 잠실에 사는 간호사 조유현(28) 씨는 “직업 특성상 심야에 시간이 나는 편인데 영화관람 외에는 딱히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심야에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워 오늘 처음 후배와 함께 심야책방을 찾았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만족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새벽 1시께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책방 북티크의 ‘심야책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손님들이 저마다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사진=김용운 기자).


새벽 2시가 되자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던 정막을 깨고 박 대표가 손님들에게 공지를 했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가 읽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북토크시간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서점에 있던 30여명 중 10여명이 작은 세미나룸으로 모였다. 대부분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나는 사이였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이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행은 박 대표가 맡았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이병률의 산문집, 한강의 ‘채식주의자’ 등 각자 읽고 있던 책에 대한 소감을 서로 나누는 동안 금세 열기가 뜨거워졌다.

◇“심야시간 활용한 문화욕구 틈새시장 있어”

이날 북토크에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소개한 회사원 김동건(28) 씨는 “심야시간에 책을 읽으면 집중도 잘되고 책에 관한 이야기도 편히 나눌 수 있어 심야책방에 거의 매주 참가했다”며 “금요일 밤이라는 특정한 시간에 스스로 책을 읽으러 오는 사람들인 만큼 집중력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북토크가 이어지는 시간에도 세미나실 바깥에는 저마다의 독서열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책상에 엎드려 가볍게 잠을 청하는 이도 있었고 노트에 책 내용을 정리하는 이도 있었다. 북토크를 마무리한 시간은 새벽 4시 30분. 보통 토크시간이 길어질 때면 멤버들끼리 심야책방이 끝난 다음 인근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한다고 박 대표가 귀띔했다.

버스의 첫차가 다닐 새벽 5시쯤 되자 자리를 뜨는 손님이 생겨났다. 경기 의정부시에서 온 최정아(24) 씨는 “밤새워 책을 읽는 게 피곤하기도 하지만 이곳이 아니면 두꺼운 책을 집중해 읽기도 쉽지 않다”며 “평소 일상이 바쁜 만큼 심야를 이용해서라도 문화적·정서적으로 재충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심야시간에 문화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심야책방을 시작했는데 이젠 정착된 듯하다”고 말했다.

책읽는 이들과 밤을 지새우고 서점에서 나온 시간은 새벽 5시 30분. 그제야 서점에 빈자리가 보였다. 다음번에는 다른 이들처럼 책 한 권 들고 찾아 밤새워 책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지난달 23일 새벽 1시께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책방 북티크의 ‘심야책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손님들이 저마다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사진=김용운 기자).
▶ 관련기사 ◀
☞ [신야인시대]① 호모나이트쿠스…밤을 지배하는 사람들
☞ [신야인시대]② 밤새 걷는 사람들…밤새 타는 사람들
☞ [신야인시대]③ 불금 지새운 동네서점에선 무슨일이
☞ [신야인시대]④ 나는 한밤에 일한다 고로 존재한다
☞ [신야인시대]⑤ 심야활동 늘자 '편의점·야식' 웃어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미모가 더 빛나
  • 빠빠 빨간맛~♬
  • 이부진, 장미란과 '호호'
  • 홈런 신기록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