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국제유가가 하루만에 5% 이상 폭락했다. 지난 3월 이후 근 석 달만에 가장 큰 하루 낙폭이었다.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7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2.47달러(5.1%) 하락한 배럴당 45.72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거래소의 브렌트유 가격도 4.1%, 2.06달러 추락한 배럴당 48.06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이처럼 유가가 갑작스럽게 추락한 배경에는 미국 원유 재고 증가가 자리잡고 있다. 이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발표한 지난주 원유 재고는 330만배럴 증가한 1550만배럴이었다. 이는 당초 350만배럴 감소할 것이라던 시장 전망을 완전히 뒤집은 것으로 지난 2008년 이후 근 9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났다. 특히 메모리얼데이를 시작으로 연중 휘발유 소비가 가장 많다는 드라이빙 시즌이 개막됐지만 휘발유 재고도 330만배럴 늘었다. 휘발유 수요가 50만5000배럴 오히려 줄어든 탓이다. 반면 EIA는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계속 늘어나 내년에는 하루 생산량이 사상 최대치인 1000만배럴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3월 기준으로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910만배럴 수준이다.
이처럼 미국 원유 재고가 늘어난 것은 미국내 원유 생산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원유 수입물량이 늘어난 이유도 한몫하고 있다. 미국 WTI와 북해산 브렌트유 사이의 가격 차이(=스프레드)는 지난주 1.99달러까지 줄자 미국 석유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진 자국산 원유 소비를 줄이는 대신 상대적으로 싸 보이는 브렌트유를 비롯한 외국산 원유 수입을 늘렸다. 실제 지난주 미국의 해외 원유 수입물량은 하루 평균 35만6000배럴 늘어났고 수출은 74만6000배럴 줄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늘어난 미국 원유 수입은 어느 나라를 통해 이뤄진 것일까. 바로 이라크다. 이라크로부터의 미국 원유 수입은 지난주 하루 평균 114만배럴까지 급증해 지난 2012년 이후 5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의 원유 수입이 무려 55%나 줄었지만 이라크산 원유 수입 증가가 이를 대체했다.
필 스트레이블 RJO퓨처스 선임 스트래티지스트는 “오늘 원유 재고 보고서가 원유시장에 치명타를 가했다”며 “이렇게 원유 재고가 늘어난다면 시장 균형을 다시 바로 잡기는 어려울 것이며 시장 안팎에서는 유가가 다시 20달러까지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얘기들까지 나돌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