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새해, 기레기 아닌 기자로 살려면

  • 등록 2018-01-01 오전 7:00:00

    수정 2018-01-01 오전 7:00:00

[이데일리 이성재 디지털미디어센터장] 어느 순간 ‘기레기’(기자+쓰레기)가 돼 있었다. 세상은 기자를 두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과장된 기사로 사회를 더욱 혼란하게 만드는 쓰레기라고 손가락질했다. 정권과 기업에 빌붙어 진실을 호도하고 국민의 눈을 가리며 정권의 부역자로 전락했다고도 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그동안 언론이 보여준 행태는 쓰레기보다 더한 말을 들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전부 다 맞는 말도 아니다. 비리를 끄집어내고 묻혀 있는 진실을 공개하며 새로운 세상을 여는 데 기여한 기자의 순기능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방문했을 때 벌어진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기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기자가 중국 측 경호원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했을 때 국민 중 일부는 “기레기는 맞아도 싸다”라며 비난했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던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북을 통해 “경호원이 기자인지, 기자를 가장한 테러리스트인지 어떻게 구분을 하겠나. 폭력을 써서라도 일단 막고 보는 게 정당방위가 아닐까”라며 폭행을 가한 중국 경호원의 행동을 두둔하고까지 나섰다.

한술 더 떠 장신중 경찰인권센터장은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서도 샌다. 국내에서 안하무인격으로 하던 행태를 중국에서도 그대로 하려다 화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며 이번 폭력사태의 책임을 기자에게 돌렸다.

가슴 아픈 일이다. 어쩌다가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중국 경호원의 발길질보다 더한 비수로 기자에게 꽂히게 된 건가. 어쩌다가 진실을 찾아 자신의 몸을 기꺼이 던져온 기자들이 쓰레기로 전락해버린 건가.

이제는 기자정신이란 말이 먼 옛날이야기로 들린다. 아니 앞으로 거의 들을 수 없는 말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기자를 기레기로 치부하는 시대에서는 말이다. 상처 받은 언론은 사회를 향해 저항하고 또 치유에 나설 힘마저 잃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2018년 무술년 새해에 적어도 기레기가 아닌 기자로 산다는 것을. 10년 전 시사저널 해직기자들이 쓴 ‘기자로 산다는 것’을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당시 파란색 펜으로 밑줄까지 그어가며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를 정말 소름끼치게 하는 기사는 따로 있다. 팩트로 점철된 기사다. 그 자체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니까 말이다” “기자는 질문할 자유만 있지 다른 어떤 특권도 없다” 등.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들은 여전히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자라면 마땅히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곧추 세우고 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한다’ ‘세상에는 아직도 진정한 기자들이 남아있다’라고.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밝았지만 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어느 것 하나 나아질 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야말로 기레기가 아닌 기자로서 살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건가를 깊이 고민하며 펜 끝에 담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주위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고 동참하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기자 본연의 자세로써 국민에, 세상에 한 걸음 더 다가하는 새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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