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탐구생활] ‘백봉신사상 최다수상’ 정세균의 마지막 꿈

[정치탐구생활]정세균, 여야 정치인 중 가장 화려한 스펙 자랑
사상 첫 의장 출신 총리…‘퇴임 후 정계은퇴’ 불문율 파기
모범적 의정활동에도 차기 지도자 이미지와는 인연 없어
文정부 후반기 국무총리, 대권도전 사실상 마지막 기회
  • 등록 2020-02-07 오전 6:03:00

    수정 2020-02-09 오전 9:37:12

정세균 국무총리가 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현황점검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모든 초선 의원들의 꿈은 재선이다.”

여의도에 떠도는 우스개지만 거의 100% 진실이다. 그렇다면 재선 의원들의 꿈은? 보통 장관이다. 의정활동 8년이면 자신감이 넘친다. 대통령 곁에서 국무위원으로 일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정치적 위상과 체급은 자연스럽게 업그레이드된다. 여의도로 복귀해도 호칭은 “의원님”이 아닌 “장관님”이다. 그만큼 장관은 매력적이다. 3선 이상이면 꿈이 더 커진다. 작게는 국회 상임위원장이나 당 정책위의장에서부터 크게는 당 대표·원내대표·시도지사 등을 목표로 한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사실상 이 모든 것을 다 이뤘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기업인 출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정계에 입문해 15대부터 20대까지 내리 6선을 기록했다. 고향인 전북 진안·무주·장수에서 4선을 기록한 뒤 19대 총선에서는 서울 종로 출마를 선택하는 정치적 도전에도 나섰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은 물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원내대표·당 의장까지 두루 거쳤다.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도 지냈다. 요약하면 여야 현존 정치인 중 가장 화려한 정치적 스펙을 자랑한다.

“국회의장 퇴임 이후 정계은퇴는 불문율이다.”

국회의장의 신분은 무소속이다. 국회법이 규정한 ‘의장의 당적보유 금지’ 조항 때문이다. 이는 정파와 이념에 관계없이 보다 중립적이고 공정한 국회운영을 하라는 의미다. 적대적 대결구조가 판을 치는 한국정치를 대화와 타협으로 이끌라는 주문이다. 의장은 입법부의 최고 어른이지만 퇴임하면 정치적 영향력이 급감한다. ‘국회의장 퇴임 이후 정계은퇴’라는 불문율 탓이다. 17대 국회 박관용 의장 이후 만들어진 일종의 관행이다. 물론 일부 국회의장들의 경우 현역으로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지만 모두 총선 불출마를 선택했다. 정계은퇴 이후에는 고비 때마다 조언과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정계원로로서 활동할 뿐이었다.

20대 국회 전반기 수장이었던 정세균 전 의장은 이러한 관행에 반기를 들었다. 국무총리 지명 직전까지 21대 총선 출마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고민 끝에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에서 의전서열 5위인 국무총리를 선택했다.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세균 총리가 헌정사상 첫 국회의장 출신 국무총리라는 파격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다. 차기 대권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세균 총리가 차기 대권 도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 그렇다고 부인한 적도 없다. 정치권에서 NCND(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음, Neither Confirm Nor Deny)는 대체로 ‘예스’를 뜻한다.

“누구보다 화려한 스펙…대중적 임팩트는 부족”

매년 12월이면 국회에서 백봉신사상 시상식이 열린다.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지는 상 중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백봉신사상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백봉 라용균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일제강점기 시절 안창호 선생의 조언으로 영국 유학을 다녀왔던 라용균 선생의 별명은 ‘영국신사’였다. 독설과 몸싸움이 난무하는 국회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신사적인 의정활동을 한 의원들에게만 주어진다. 정치인들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는 현장 정치부 기자들이 평가한다. 평가기준은 자기통제력과 정직성의 발휘는 물론 공정하고, 원칙을 준수하되 원칙에만 집착하지 않고 유연하고 균형된 방식으로 처신하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다. 백봉신사상 최다 수상자는 정세균 국무총리다. 1999년부터 2019년까지 전체 21회 중 무려 15회를 받았다.

‘정치인 정세균’에 대한 현장 정치부 기자들의 평가는 합격점을 넘어 최우수라는 의미다. 불행한 건 정세균 총리에 대한 기자들의 평가와는 달리 국민적 평가는 박하기 그지없다. 뛰어난 정치적 업적과 오랜 경륜, 모범적인 의정활동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임팩트는 너무나 부족했다. 대권으로 가는 길의 필수조건인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이웃집 할아버지같은 소탈한 이미지를 뛰어넘어 나라를 책임질 지도자의 이미지는 사실 거의 없다. 다소 민망하지만 정세균 총리가 차기 지도자로 분류된 적이 없지는 않다. 문재인·안철수 등장 이전 MB정부 시절 정동영·손학규와 더불어 ‘민주당 빅3 주자’로 불린 게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총리는 모두 차기후보군…2022년 정세균에게 기회는 올까”

문재인정부 출범 초기 이낙연 전 총리를 차기 주자로 보는 시각은 없었다. 호남 출신의 비문 인사 발탁이라는 탕평인사 정도였다. 더구나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 김경수 경남지사, 김부겸 전 행안부 장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쟁쟁한 카드가 많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상당수 차기주자들이 완전히 아웃되거나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대안부재 속에서 이낙연 전 총리가 급부상했다. 여야 차기 지지율 1위를 줄곧 달리고 있다. 한때 라이벌이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크게 제친 것은 물론 일부 조사에서는 대세론의 기준점인 30% 안팎의 선호도가 나올 정도다.

민주당·한국당 등 여야 대표, 서울시장·경기지사, 실세 장관, 국무총리는 전통적인 차기 후보군이다. 특히 국무총리의 경우 관리형 대독총리가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이 차기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이회창·이홍구·이수성·김종필·고건·이해찬 등 역대 총리들이 대표적이다. 이낙연 전 총리가 차기 주자로 우뚝 선 것도 총리 시절 재난재해 현장은 물론 국회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행보와 성과 때문이었다. 민주당 입장에서 차기 주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다다익선 구조다. 정세균 총리가 온갖 비난에도 총리행을 선택한 것은 대권을 향한 권력의지와 열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낙연 전 총리도 무에서 유를 창조했는데 정세균 총리라고 못할 이유는 없다. 2월 임시국회 데뷔전을 앞두고 있는 정세균 총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라는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책임총리다. 오는 2022년 3월 정세균 총리에게도 과연 기회는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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