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유병언, '분식회계 왕국'을 만들다

예술적 가치 없는 유 전 회장 사진, 수백억에 사주고 자산 부풀려
청해진해운, 선박 수리비도 '비용' 아닌 '자산'으로 처리
  • 등록 2014-12-27 오전 10:03:50

    수정 2015-01-16 오후 5:56:06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고 오래 볼수록 분식회계 혐의가 고구마 줄기 캐듯 드러난 회사. 봄바람 불던 진도 팽목항을 울음바다로 만든 세월호 사태의 원인이 된 그곳. 유병언 전 회장이 경영한 세모그룹이 그랬습니다. 분식회계 혐의가 없는 계열사가 없었을 정도로 유 전 회장은 거대한 ‘분식회계 왕국’을 만든 것입니다.

분식회계의 시작은 회사가 번 돈을 개인적으로 쓰고자 했던 유 전 회장의 욕심에서 출발했습니다. 회계규정상 계열사끼리 10원 한푼이라도 거래한 게 있으면 재무제표 주석에 기록해야 합니다. 함부로 회삿돈을 유용하긴 어려워 보이는데요. 유 전 회장은 이를 감쪽같이 감출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객관적으로 가치를 측정하기 어려운 자산, 즉 예술품을 횡령에 동원하기로 한 겁니다.

유 전 회장이 찍은 사진. 여러분이 미술품 경매에 그의 사진이 나왔다면 얼마에 사시겠습니까. 필름도 있어 100장이든, 1000장이든 얼마든지 인화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유 전 회장이 사진작가들에게 인정받는 예술가도 아닙니다. 예술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그의 사진. 계열사 고성중공업(옛 천해지)은 무려 200여억원을 사진을 사는 데 썼습니다. 007가방에 만원권을 가득 담으면 1억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하는데요, 유 전 회장의 사진을 만원권이 가득 든 007가방 200개와 맞바꾼 겁니다.

사진에 대한 분식회계는 세 가지 방법으로 이뤄졌습니다. 먼저 사진을 시장에 되팔기 위한 상품으로 처리한 재고자산, 전시용으로 회사가 보유하는 유형자산, 사진은 나중에 받고 먼저 돈부터 건네준 선급금이 그것입니다. 모두 자산을 뻥튀기하기 위한 수단들이었지요.

실제로 조사해보니 그의 사진은 창고에 먼지가 쌓인 채로 보관돼 있었다고 합니다. 진짜로 200억원짜리 예술 작품이었다면, 이렇게 방치해 놓았을까요?

세월호 운영을 맡았던 청해진해운. 말 그대로 해운회사니까 배가 많겠지요. 고장난 배를 수리하려면 돈이 듭니다. 돈이 들었으니 ‘비용’으로 처리해야 할 것 같지만, ‘자산’으로 처리할 때도 있습니다. 수리한 뒤 배의 수명이 늘어나면 그만큼 돈을 더 벌 수 있으니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낡은 엔진을 통째로 새것으로 바꾼다거나 갑판을 몽땅 갈아치운다면 배의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에 유형자산(자본적지출)으로 처리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페인트칠을 한다거나 조그마한 부품을 갈아 끼우는 것으론 수명이 늘어나지 않을 테니, 이는 비용(수익적지출)으로 처리하게 됩니다.

청해진해운은 백령도 노선을 운항하는 데모크라시호의 엔진이 고장 나자 이를 견인해 수리를 했습니다. 엔진 전체를 통째로 새것으로 바꿨다면 이를 유형자산으로 처리해야 하지만, 단순히 부품을 교체한 것이기 때문에 수리비는 비용으로 처리해야 했지요. 하지만 청해진해운은 이를 유형자산으로 처리함으로써 자산규모를 부풀렸습니다.

세모그룹의 분식회계 혐의는 분식회계를 저지른 다른 회사보다는 단순한 편입니다. 회계사가 장부상 재고자산, 유형자산으로 적혀 있는 유 전 회장의 사진이 어떻게 보관돼 있는지를 확인만 했어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회계사 눈에는 쌓여 있는 먼지가 보이지 않았던 걸까요. 세모그룹과 회계사 사이의 유착관계를 의심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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