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사건엔 분식회계도 빠질 수 없습니다. 회삿돈을 빼돌리고도 회계장부엔 이를 감춰야 하니 ‘분식의 기술’이 동원되는 것이지요. 얼마 전 대법원은 게으른 사외이사에게도 분식회계에 따른 투자자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사외이사는 이사회에 나간 적이 없어 분식회계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대법원은 이사회에 참석하는 것이 주요 업무인 사외이사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죄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지요.
한때 코스닥 상장사였던 코어비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전 대표이사의 횡령 사실을 감추기 위해 분식회계를 한 곳이죠. 횡령은 회삿돈이 빠져나가는 것이니까 이를 감추려면 빠져나간 돈 만큼을 다시 채워넣어야 하겠죠? 있지도 않은 돈이 어떻게 땅에서 솟아나고 하늘에서 떨어질 수 있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코어비트는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한 비상장사 주식 55만주를 17억 6000만원에 사들입니다. 하지만, 회계장부에는 이 주식을 110억원에 산 것처럼 기록, 보유 주식의 가치를 부풀렸습니다. 비상장사는 주식시장에 상장한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기업의 주머니 사정을 일일이 투자자들에게 공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특성을 악용, 횡령 사실을 감추는 수단으로 쓴 것입니다.
영업권을 부풀린 것도 횡령 사실을 감추는 대표적인 분식회계 수법입니다. 영업권이란 건물이나 기계, 토지처럼 눈에 보이는 자산이 아니라 브랜드 가치, 명성, 경영조직, 특허권 등 오랫동안 영업을 하면서 얻게 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을 뜻합니다. 좀 추상적이다 보니 가치를 부풀리는 데 이용할 소지가 있어 보이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코어비트는 이를 분식회계에 이용했습니다. 개점휴업 상태인 계열사가 마치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면서 영업권의 가치가 엄청나게 큰 것처럼 부풀린 것입니다.
코어비트가 이렇게 분식회계로 부풀린 금액은 150억원에 달합니다.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된 2010년 당시 자본금은 140여억원이었는데요, 거짓으로 부풀린 돈이 자본금보다도 더 많았으니 심각한 수준이었지요.
만약 코어비트의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회사의 재무제표를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분식회계 문제를 지적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 회사에 투자해 손실을 본 투자자들도 많이 줄었을 것이고 사외이사가 투자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는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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