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결정장애]정권 이은 '폭탄 돌리기'..이번에도 하다 마나

  • 등록 2016-05-31 오전 7:00:59

    수정 2016-05-31 오전 9:06:59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조선·해운업에 칼 빼 든 정부의 구조조정이 변죽만 울릴 뿐 청사진을 내놓지 못한 채 시간만 흐르고 있다. 기존 주력 산업이 곪아가지만, 돌파구 마련은 커녕 여태 살릴 기업과 정리할 기업조차 가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권을 이은 부실기업 폭탄 돌리기가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소가 있는 울산 하늘이 미세먼지로 뿌옇다. [사진=연합뉴스]
2009년에도 구조조정…기업 살리기에 방점

정부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 착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도 2009년 11월 ‘조선·해운 산업 동향 및 대응 방안’을 내놨다. 조선·해운업 업황을 보여주는 지표인 ‘발틱운임지수’는 2008년 5월 1만 1793포인트로 고점을 찍고 7개월 만인 그해 12월 역대 최저점인 663포인트로 추락했다. 금융위기 여파로 무역 물동량이 줄면서 호황을 누리던 조선·해운업계에 공급 과잉, 수익성 악화의 비상등이 켜졌던 것이다.

당시 내놓은 대책의 핵심은 우량 기업 지원과 부실 중소 업체 퇴출이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주축이 돼 조성한 선박펀드가 한진해운·현대상선 21척 등 7개 해운사 보유 선박 33척을 매입했다가 다시 빌려주는 방식으로 긴급 유동성을 수혈했다. 수출입은행·수출보험공사가 조선사에 제공하는 제작금융 지원액도 기존 4조 7000억원에서 9조 5000억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한국은행 대출을 투입한 20조원 규모 ‘자본확충펀드’와 정부 보증채 발행으로 마련한 ‘구조조정기금’ 6조 2000억원은 기업 지원에 나선 은행 자본을 늘리고 구조조정 자산을 처분하는 실탄 구실을 했다. 정부는 2013년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도 추가로 내놨다. 만기도래하는 회사채를 갚기 위해 재발행하는 기업을 돕기 위해서다. 작년 말까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총 1조 8819억원이 각각 지원됐다.

전략없는 미봉책…지원 효과도 낮아



문제는 기업 살리기 대책이 ‘미봉책’에 그쳤다는 점이다. 당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또는 퇴출이 결정된 조선·해운사는 전체 신용위험평가 대상 115개 업체 중 C&중공업 등 17곳에 그쳤다.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산업 특성과 업황 전망, 기업 분석 등을 통해 경쟁력이 약화할 기업은 미리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며 “장기적인 산업 구조 재편 같은 질적 측면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작 정부 지원 효과도 신통치 않았다. SPP조선·성동조선해양·대선조선 등 2010년부터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 조선사는 물론 대형 기업도 적자의 늪을 탈출하지 못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2009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누적 영업 손실 2조 4206억원을 기록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대책을 내놨던 당시엔 이렇게까지 업황이 나빠지리라곤 예상치 못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구조조정 판을 새로 짜지 않으면 7년 전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뚜렷한 방향성 없이 “고비부터 넘기고 보자”는 식의 의사 결정이 과거와 닮은꼴이어서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4조 2000억원 추가 지원을 결정한 대우조선해양(042660)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낙관적 전망과 달리 올해 들어서까지 수주 가뭄이 이어지자 이달 초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질 것으로 생각 못 했다”고 뒤늦게 자인하기도 했다. 최근 부도를 앞두고 부랴부랴 법정관리 진입을 결정한 STX조선해양은 ‘뒷북’ 대응의 전형이다.

“정부, 채권단 뒤 숨지 말아야”



정부가 참고할 만한 전례는 있다. 1984년 정부 주도로 추진한 ‘해운 산업 합리화 조치’와 1989년 ‘조선 산업 합리화 조치’다. 당시 주력 선사 중심의 선사 통폐합(112개→31개사), 외항 화물 사업 신규 면허 발급 중지, 조선시설 신·증설 억제, 선박 수출 물량 할당 등 과감한 산업·제도적 조치가 이뤄졌다. 업체 반발 등 걸림돌이 없진 않았지만, 추후 경기 회복 시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는 토대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 중국 업체에 밀려 경쟁력을 잃는 중소 조선사 처리, 대형 조선사 다운사이징(downsizing), 해운사 통폐합 문제 등에 적용해 볼 수 있는 본보기다.

정부가 채권단에게 권한과 책임을 미루기만 할 게 아니라 총대를 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업과 국책은행 중심의 채권단, 배후의 관료라는 협상 테이블에서는 책임이 뒤따르는 구조조정에 적극 나서기보다 현상 유지(버티기)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구조조정 전문가인 주진형 전 더불어민주당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은 “금융위기 당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GM 등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거기서 나온 결과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직접 구했다”며 “우리도 전문가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권한을 부여하고 책임은 대통령이 진다고 나서야 구조조정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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