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스틱 휘두른 잡스 "바보야! 문제는 단순화야"

17년 동료가 본 잡스의 '심플 원칙'
전 세계 통틀어 애플 임원은 100명뿐
제품 20가지 4개로 축소해 '신화창조'
단순 프로세스가 효율 높인다 강조
…………………………………………
미친듯이 심플
켄 시걸|380쪽|문학동네
  • 등록 2014-04-17 오전 8:14:04

    수정 2014-04-17 오전 8:43:36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심플스틱으로 맞았어요.” 스티브 잡스(1955∼2011) 앞에서 이제 막 프레젠테이션을 끝낸 애플의 패키지 디자인팀. 얼굴들이 사색이 됐다. 몇주간 혼신을 다했던 일은 어이없이 무너져버렸다. 이 남자 잡스 때문에. 뭐가 문제였나.

이날 잡스를 짜증나게 한 건 그가 그토록 중시하던 창의성 문제가 아니었다. 프로젝트 그 자체였다. 어느 회사나 하는 일이다. 한 제품에 대한 두 가지 버전의 패키지를 만드는 건. 하지만 잡스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그냥 통합하세요. 한 제품에 한 상자로.”

에피소드가 드러낸 건 ‘단순함’이다. ‘심플’이 애플의 종교였고 잡스는 교주였단 얘기다. 애플은 자신들의 단순함이 다른 기업과 구별되는 특별한 점이란 걸 서로에게 상기시키고 실행에 옮겼다. 아니다. 그 이상이다. 단순함을 향해 목숨 건 혁신을 시도했다고 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눈길을 끄는 게 있으니 ‘심플스틱’. 굳이 풀어쓰자면 ‘단순막대기’다. 이는 애플 내부의 핵심가치를 집약한 상징이면서 은유다. 업무구조를 평평하게 만들고 구차한 프로세스를 도려낸 잡스의 경영도구다. 때론 영감을 자극하는 마술봉이기도 했고 때론 생계를 위협하는 몽둥이이기도 한 ‘절대방망이’였던 셈이다.

이 모두를 아우른 애플 내부의 ‘단순치 않은 단순함’에 대한 면밀한 고찰은 켄 시걸이 해냈다. 17년간 잡스와 함께 광고·마케팅을 이끌며 직접 겪은 사건과 성과, 사례와 사연 등을 집약해 ‘애플의 경영원칙’으로 정리했다. 책은 잡스가 유포한 심플 DNA가 애플의 뼛속 깊이 각인된 세세한 과정이다.

잡스와 시걸을 나란히 놓고 봤을 때 두 가지는 빠뜨릴 수 없다. 1997년 잡스가 고사 직전의 애플에 복귀해 만들어낸 광고캠페인 ‘다르게 생각하라’가 그 하나. 시걸이 세상에 날린 이 한 줄로 애플은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다른 하나는 ‘아이(i)’. 1998년 최신 컴퓨터를 내놓고 ‘맥맨’(MacMan)이라 이름 붙이자고 우기는 잡스를 막은 ‘아이’다. 시걸이 제안한 ‘아이’는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애플 아이 시리즈의 기점이었다.

▲“심플해져라, 더 심플해질 때까지”

“애플에 위원회가 몇개나 있는지 아십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바로 창업한 회사처럼 조직돼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창업회사지요.” 2010년 디지털 콘퍼런스에서 잡스가 모처럼 회사 얘기를 꺼냈다. 복잡한 위계질서에 대한 거부. 이는 잡스가 주창하는 단순함의 본질이다. 시걸은 철저하게 단순화한 잡스의 이 경영방식을 “단순함을 향한 헌신적 집착”이라 정의한다. 하지만 그 자신도 애플 성공의 기둥이 거기에 자라났다는 건 부인하지 못한다.

아이폰의 원버튼처럼 끝까지 단순화하자는 게 잡스의 고집이다. 이 지점에 도달하는 단계에서 똘똘한 인재들의 아이디어가 거추장스러운 프로세스로 인해 훼손되는 걸 질색했단다. 시간 사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가령 이런 거다. ‘프로젝트를 망치는 가장 쉬운 방법’을 기업들에 물었다고 치자. 애플의 답은 ‘넉넉한 시간’이다. 한순간도 손실없이 가동해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논지다. 단순함이 목표를 넘어 기술이 되는 순간이다.

▲냉혹하게, 최소로, 더 작게

시걸은 단순함으로 무장한 애플 경영의 제1원칙으로 ‘냉혹’을 꼽는다. 잡스 특유의 기질과 잘 맞아떨어졌다는 설명도 붙였다. 냉혈의 의미는 아니다. 그저 할 말을 하면 된다는 뜻이다. 최선의 결과라는 목표가 있다면 아주 단호하게.

‘최소와 작게’도 중요한 원칙이다. 소수정예는 잡스의 이상이었다. 예컨대 애플에선 ‘연례회의 톱100’을 운영한다. 여기서 100은 전 세계 애플 임원의 수를 말한다. 제품군에도 반영됐다. 1997년 잡스가 복귀한 시점에 애플에는 20여가지의 제품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네 가지로 축소된다. 개인과 전문가용의 데스크톱과 노트북. 이 네 가지가 애플 신화의 서장이 된 건 물론이다. 흔히 기업은 ‘고객이 다양한 선택권을 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잡스의 반전은 여기에 있었다. “복잡한 제품군에서 복잡한 선택을 하는 대신 단순한 제품에서 단순한 구매경험을 하게 될 때 고객은 회사를 더욱 신뢰하게 된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에게 먹혔다”

아이폰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요즘에도 빛을 잃지 않은 가치는 여전히 잡스다. 그만큼 심플이 신화로 남을 여지도 커지게 됐다. 세상에 단순함만큼 어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잡스의 단순함은 선택이고 느낌이며 방향이고 정신이기까지 하니. 하지만 잡스만큼이나 시걸의 입장도 분명하다. 단순함에는 과실이 없다는 거다. 만약 어떤 회사가 실패를 했다면 단순함의 잘못이 아니라 단순함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지금 들고 있는 무겁고 복잡한 경영무기를 한번 바꿔보라고 했다. 더 명확하게는 오늘도 두 가지 이상의 버전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조직에 ‘심플스틱’ 하나씩 쥐어보자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에게 먹혔다”고 잡스가 자랑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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