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책 다시보기]'국가'는 없고 '지역'만 판치는 국회

여의도 여야 정치권의 정쟁에 숨겨진 정책 이야기
  • 등록 2015-10-03 오전 8:00:00

    수정 2015-10-03 오전 8:00:00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여의도 정가에 ‘정치의 계절’이 왔습니다. 정치인에게 선거는 ‘모든 것’이라고 하지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직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또 빼앗아오려는 정치인들의 사투가 눈물겹습니다. 최대 화두가 농·어촌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의석수 배분 문제입니다. 농어촌 의원들은 비례대표를 줄여서라도 자신들의 지역구를 지키려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비례대표들은 별다른 말이 없는 상황이고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밥그릇’이 달린 문제여서 원칙이랄 게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조금 더 중장기적인, 국가적인 시각을 갖고 문제제기를 해볼까 합니다. “농어촌을 죽일 작정이냐” 같은 윽박지르기는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믿습니다.

국회 한 연구 “지역구 의원 법안은 ‘선심정치’ 경향”

연구논문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전진영 국회입법조사관이 18대국회 의원발의안을 바탕으로 쓴 ‘국회의원의 대표유형에 따른 정책적 관심과 영향력의 차이 분석’입니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이 어떤 자세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지 잘 계량화돼 있습니다.

이 논문의 결론은 명쾌합니다. 농림수산정책 관련법안 중 지역구 의원들이 낸 비중은 93.4%에 달했습니다. 전체 국회의원 중 지역구 비중은 82%입니다. 10%포인트 이상 더 높다는 얘기지요. 농림수산 관련법안은 농어촌을 지역구로 하는 의원들이 분명한 이해관계를 갖는 영역이지요. 국토개발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주택토지 수자원 교통 항공 철도 항만 등과 관련된 것인데, 지역구 의원의 비중은 91.1%였습니다. 조세재정정책 역시 지역구 비중이 높았습니다. 87.6%나 됐지요. 특히 조세특례제한법은 특정 지역 혹은 집단에 대해 공제 같은 세제혜택을 줄 수 있지요.

전 조사관은 이렇게 분석합니다. “세 정책은 주로 분배적 성격을 가집니다. ‘선심정치’를 대표하는 특징을 갖지요. 다음 선거에서 지역주민에게 업적을 자랑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비례대표는 달랐습니다. △여성가족정책(39%) △보건복지정책(34.1%) △노동정책(27.7%) 등에서 많은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얼핏 봐도 세 정책의 중요성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인구감소는 우리사회의 최대 재앙이지요. 출산 문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복지 역시 이와 연결되고요. 노동문제는 박근혜정부가 앞장서 개혁을 주장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 정책들은 지역구 이해관계와는 큰 연관성이 없습니다. 전 조사관은 “비례대표는 특정 지역에 이익이 집중되는 정책보다는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에 보다 높은 관심을 갖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19대국회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다. 각 상임위원회의 의원 배분을 보면 정확히 일치합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총 19명 중 비례대표가 2명에 불과하고, 국토교통위원회는 31명 전원이 지역구 의원입니다. 반면 보건복지위원회는 21명 중 8명이, 환경노동위원회는 16명 중 8명이 각각 비례대표입니다. 여성가족위원회는 대부분 비례대표(16명 중 11명)입니다.

비례대표 줄이면 국가정책 뒤로 밀릴 가능성 커져

지역구 의원들의 의정활동이 부실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지역구 정책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문제는 그런 개인이 모여 집단이 됐을 경우입니다. 본의 아니게 국회가 다루는 정책이 편향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농어촌 의원들의 말대로 비례대표를 줄이면 국가적 정책이 뒤로 밀리는 건 자명합니다. 정책간 균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건 국민들이 원하는 국회의 모습은 아닐 겁니다.

저는 지방 소도시 출신이고, 부모님은 시골 출신입니다. 농어촌의 몰락을 잘 압니다. 심지어 90세가 넘으신 외할머니댁 마을은 현재 어르신들만 네 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어릴적 다녔던 학교는 이미 폐교됐습니다. 도시로 떠나버린 농어촌 사람들이 그곳에서 얼마나 진정성있는 유권자가 될지 의구심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농어촌 의원들이 지역 대표성을 주장하려면 당당하게 의원 정수 확대를 말해야 합니다. 의원수를 늘리는 것은 국민들 반발이 무서우니 하지 못 하고, 힘 없는 비례대표에게 화살을 날리는 건 안 됩니다. 비례대표는 표(票)의 비례성에 입각한 헌법 정신을 반영한 겁니다. 둘은 애초부터 연계될 수도 없고, 연계돼서도 안 되는 겁니다. 국회 밖에 있는 선거구 획정위원회에 흐르는 기류도 이것입니다.

지역구만 찾아다니는 비례대표, 제도 욕보이는 것

그리고 하나 더. 현재 비례대표들도 자신의 의정활동을 냉정하게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비례대표가 된 것은 자신의 정당에 전국적으로 모아진 표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특정 지역구에서 뽑아준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국가보다 지역구만 바라보는 건 존재의 이유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비례대표제 자체를 욕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역구 의원이 되고 싶으면 지역구 밑바닥부터 닦는 게 순서입니다.

저는 여야 차원에서 비례대표가 가진 정책 ‘주특기’만으로도 재선을 넘어 3·4선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가 아닌 정책에 강한 중진 비례대표가 장관도 되고 국무총리도 되는 건 너무 먼 얘기일까요.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여야 정치권의 정쟁 혹은 정책을 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jungkim@edaily.co.kr로 보내주세요. 부족하지만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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