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파장]소비위축·대기업 '갑질'에 두번 우는 소상공인

접대횟수 대폭 감소 전망…외식업계 직격탄
유통 대기업 할인판매 부담 소상공인에 전가
중소·중견기업, 법무·감사 전담조직 미비…변호사업계 반사이익
정부, 큰 피해 예상되는 소상공인 구제 대책 '無'
  • 등록 2016-09-29 오전 7:00:00

    수정 2016-09-29 오전 7:00:00

[이데일리 박철근 채상우 기자]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28일 본격 시행되면서 소상공인 업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김영란법 영향으로 소비가 대폭 줄어들고 유통 대기업은 이익 보전을 위해 납품 중소기업·소상공인들에게 납품가를 후려치는 소위 ‘갑질’ 행태가 지속되고 있어서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28일 “고급 음식점 수요가 줄면서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식당을 운영하는 곳이 잠시 반사이익은 누릴 수 있다”면서도 “김영란법 위반 시범케이스가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면 결국 전체 수요는 줄어 소상공인들의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6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대기업들은 1~2년 견딜 수 있지만 소상공인들은 김영란법에 따른 손실을 견딜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이틀 전인 26일 오후 서울 강동구의 한 횟집에 김영란법 세트 출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뉴스1
◇소비위축·대기업 ‘갑질’에 이중고

경기도 광명시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 모씨(40·남)는 “객단가가 비싸지 않지만 손님들이 김영란법 시행 이전부터 ‘앞으로 저녁 모임 갖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왔다”며 “저녁 모임이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전했다.

광명시장에서 건어물을 판매하는 손 모씨(57·여)도 “지난 추석때부터 선물세트 판매가 전년대비 약 25% 감소했다”며 “전통시장 살리기 차원에서 시행중인 온누리상품권 사용도 줄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이 정착되고 나면 위축된 경기가 풀릴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시장 현장에서 느끼는 바는 전혀 다르다”고 전했다.

유통 대기업에 납품하는 소상공인들도 김영란법 시행이 달갑지만은 않다는 입장이다.

대형마트와 SSM(기업형 슈퍼마켓)에 계란 및 계란가공품 등을 납품하는 A씨는 “명절 시즌에는 유통 대기업들이 특수를 누리기 위해 납품단가 인하 요구가 더욱 거세진다”며 “유통 대기업들이 명절 특수를 누리는 동안 중소 납품업자들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손실을 입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김영란법 시행으로 선물가격 상한선이 5만원으로 정해지면서 상당수 유통 대기업들은 자사의 유통 마진은 확보한 상태에서 일정금액 이하로 납품하지 않으면 거래를 지속하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일삼는다는 것으로 확인됏다. 방법도 점차 고도화 돼 할인판매가 유통대기업 주관이 아닌 납품업자들이 자발적으로 유통대기업에 요청한 것이라는 문서에 서명까지 요구하고 있다. A씨는 “납품단가가 낮아져도 판매수수료는 그대로 받는다”며 “거래선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소상공인들은 저가 선물세트의 판매 증가에 따른 혜택을 보지 못한다”고 전했다.

◇중소·중견기업 “법무·감사 전담부서 없어 문의할 곳 찾기 힘들어”

대기업과 달리 중소·중견기업들은 김영란법 시행과 관련해 법 저촉여부를 문의할 법무나 감사담당 부서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영활동에서 공무원이나 언론인을 접촉할 때 위법여부를 사전에 숙지하기 쉽지 않다.

지난 23일 서울 용산 김구기념관에서 중견기업연합회가 개최한 ‘중견기업계 김영란법 설명회’에는 짧은 기간 진행한 온라인 신청만으로 160여명의 중견기업 관련 실무자들이 참석했다. 중견련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중견기업들의 적극적인 대응의지를 방증한 것”이라며 “대기업처럼 감사·법무 전담부서가 없는 경우가 많아 이날 참석인사도 인사·총무부서 직원이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중소·중견기업 상황이 이렇다보니 변호사나 로펌 등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소 건축자재기업 B사의 민 모 대표는 “자체 법무팀이나 감사팀이 없다보니 김영란법 관련 교육도 로펌에 의뢰해 실시했다”며 “관급공사에 납품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해석이 모호한 경우에는 로펌이나 변호사를 통해 자문을 구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공공조달시장에 납품하는 중소·중견기업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공급계약 확대나 신규공급 등을 위해 공직자에게 견본품을 건네도 김영란법에 저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견본품이 공산품일 경우에는 회수하면 되지만 식품의 경우 회수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부정청탁을 없애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에는 적극 공감한다”면서도 “사회현실을 무시하고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법 시행을 강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소상공인 구제 대책 ‘無’

김영란법으로 인해 특히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소상공인에 대한 구제 대책은 전무하다. 소상공인들은 정부가 힘이 없는 소상공인의 목소리는 무시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문성섭 한국화훼협회장은 “피해가 예상되는 졸속행정임을 정부 스스로가 인지하면서 소상공인이 피 흘리는 모습을 꼭 눈으로 봐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는 “운영하고 있는 가게의 9월 매출이 전년 대비 30% 가량 줄어든 650만원에 불과하다”며 “인건비와 임대료 등을 제외하고 남는 것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문 회장은 종국에는 한국의 화훼산업 자체가 붕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에서는 화훼산업이 새로운 문화콘텐츠산업으로 각과받으며 육성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한국은 오히려 말살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민상헌 외식중앙회 서울지회장 역시 “정부에 수 차례 소상공인 구제 대책에 대해 건의를 했지만 완전히 묵살당했다”며 “대기업이었다면 과연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겠느냐. 힘없는 소상공인이기에 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 회장은 “비리를 방지하는 김영란법 취지는 십분 공감하지만 금액을 기준으로 위법을 가리는 방법이 잘못됐다”며 “정부가 다시 한번 법 취지를 고려하고 재정비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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