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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지난 20일 국내 사업체 10곳 중 4곳은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이하 연차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고용노동부의 연구용역을 받아 지난 한 해 동안 국내 1570개 회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근로시간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차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곳은 661곳으로 전체의 42.1%에 달했다는 게 골자다.
최근 기업들이 휴가촉진제를 방패삼아 근로자들에게 연차 수당을 주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기사를 내보냈다. 휴가촉진제는 근로자들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2003년부터 도입했지만 이 제도를 도입한 사업장은 직원들이 연차를 소진하지 않아도 연차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소멸한다.
기사가 나가자 고용부는 “전체 조사 대상 기업 중 644곳은 휴가촉진제나 회사 방침을 통해 연차휴가를 다 소진한 것으로 파악했다”면서 “이들 기업은 근로자들이 휴가를 다 썼기 때문에 연차 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즉 연차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661곳 중 644곳(97.4%)은 전직원이 연차휴가를 모두 소진해서 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어 주지 않은 게 미지급으로 잘못 잡혔다는 것이다. 이는 조사 대상 기업(1570곳) 중 41%(644곳)는 전 직원이 연차를 모두 소진한다는 말로도 해석된다.
과연 644개 기업은 직원들에게 휴가를 다 쓰게 했을까.
정부의 해명은 허점투성이다. 특히 조사방법부터 문제다. 이번 조사는 실제 연차소진 여부를 파악한 게 아니고 해당기업 인사담당자에게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받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거짓으로 답해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직원들이 연차를 다쓰지 못했는데도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솔직히 털어놓은 1.8%(17개)의 기업 담당자들이 비정상이다.
연차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곳은 이름을 대면 알만한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 정도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 중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최근 SNS 상에서 한 IT 벤처기업이 자사의 복지 혜택 중 하나로 ‘상사에 허락받지 않고 아무때나 연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을 꼽은 게 화제가 됐다. 법으로 보장된 당연한 권리가 복지가 되는 세상이다.
재계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해 보면 휴가촉진제를 도입한 기업이라고 할지라도 “모두 연차를 썼다”는 말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헛소리다.
기업 10곳 중4곳은 전직원이 모든 연차를 다 쓴다는 못믿을 소리가 진실이길, 그리고 모든 회사의 모든 직원이 법이 보장하는 휴가를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