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혼란'을 도입한다면?

인간의 뇌는 혼란할 때 더 창조적
체계 무시한 軍회의 아이디어 '펑펑'
다른 생각·관점 가진 '이단아' 찾아
경직된 조직문화 무너뜨려라
…………………………………
최고의 조직은 어떻게 혼란을 기회로 바꿀까
오리 브래프먼·주다 폴락|232쪽|부키
  • 등록 2015-01-28 오전 7:39:20

    수정 2015-01-28 오전 7:56:36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쥐 한 마리가 유럽 인구 절반을 죽이고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대학원에 가지 못하고 특허사무소에서 몽상가들과 어울리던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내놨다. 2차대전 후 학생에게 창업을 부추긴 스탠퍼드대는 실리콘밸리를 탄생시켰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세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혁신이다. 그런데 전제가 있었다. ‘혼란’이다. 어느 하나도 말끔한 체제 위에서 완성된 게 없지 않나.

시대의 간극과는 무관하게 현대인 지금은 혁신이 더 이상 혁신이 아닌 때다. 조직은 물론 개인까지 혁신에 좇기는 터라. 세상 모든 조직이 다뤄봤다는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그 효율성을 도식화해 게시하며, 교육에 사활을 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체계화와 최적화를 추구하려 들수록 점점 사라져 가는 것도 혁신이더란 거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건가. 아니다. 있다. 그것이 혼란이란다. 맑은 연못을 헤집고 다니는 미꾸라지 같은.

포천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하는 저자가 리더십전문가와 의기투합해 혼란의 정의를 다시 세웠다. 최고라는 조직을 살펴봤더니 당연히 혁신의 창조가 있었고 이를 부추기는 동기가 있는데 그것이 혼란이었다는 거다. 책은 이들이 설파하는, 기업과 조직, 또 개인에 혼란이 필요한 이유다. 단순한 예를 보자.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섞여 ‘떠들고’ 있다. 딱히 주제나 목적도 없어 보인다. 옆에서 소란한 웅성거림을 보고 들으면 당장 무슨 생각이 들겠나. ‘말장난으로 시간낭비 중’ 정도가 될 터. 그런데 핵심은 여기에 있다고 했다. 마치 재즈처럼 약간의 룰만 제공한 뒤 내버려둬야 기발한 음색을 뽑아낼 수 있다는 거다.

원제는 ‘카오스 임페러티브’. 풀어내자면 ‘혼란의 규칙’쯤 될까. 가령 이런 거다. ‘자유를 주마. 뭐든 해봐’로 파격을 제안했을 때 당장 그려질 수 있는 풍경.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 단 한 곳만 빼고. 기업이다. 이 타이트한 조직 내 위계와 규율은 굳이 명시할 필요가 없는 ‘법’이다. 어째서? 피부에 닿는 환경이니까. 그러니 알레르기가 생기면 방법이 없다. 떠나거나 피하거나 할 뿐이다. 그런데 유독 ‘창의와 혁신’을 부르짖는 곳도 기업이다. 이 불멸의 키워드는 기업이 살아남는 한 끝까지 들러붙을 절대과제다. 그런데 뭔가 서걱거린다. 위계와 규율, 창의와 혁신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앙상블 아닌가. 저자가 꼬집은 게 이 우스꽝스러운 조화다. 책은 그 불협에 대한 공격인 셈이다. 혼란의 규칙을 잣대로 한. 다만 셋 정도는 구분했다.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굴러다닐 여백, 그 안을 헤집고 다니는 이단아, 계획된 우연.

▲멍 때릴 때 가장 창의적이 된다

‘혼란’하면 떠오르는 자동 이미지는 위협이다. 고요한 평화를 깨고 멀쩡한 조직을 뒤흔드는 것. 해악의 다른 말처럼 쓰인다. 그런데 혁신하는 조직은 오히려 휴식, 우연, 다양성 같은 ‘특별한 혼란’ 속에서 창의를 끌어낸단다. 빈 공간을 만들어 착안과 고안을 심는다는 얘기다.

과학적인 근거도 있다. 뇌는 체계보다 혼란 속에서 더 잘 ‘돈다’. 신경생물학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과제가 없을’ 때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에 들어선단다. 중요한 건 보관하고 그렇지 않은 건 버리고 나머지는 연결해 카테고리화 하는 작업. 그런데 이 작업이 가장 활발한 시기가 놀거나 몽상에 빠질 때란다. 한마디로 ‘멍 때리고 있는’ 여백의 순간에 섬광이 ‘번쩍’한다는 말이다.

▲군대에 ‘혼란’을 던져놨더니…

‘경직된 군대.’ 어찌 보면 마땅한 명제겠지만 9·11테러 이후 좀 달라졌다. 비행기가 납치돼 건물을 들이박는 테러 따위는 상상도 못했던 터라, 다음 적이 누구고 다음 위협이 뭔지 판단조차 못하게 된 상태에 놓인 거다. ‘제발 상상력을 키워라.’ 그러면 이젠 이런 명령도 군대식으로 해야 하나.

이 경우의 답은 저자의 실제 경험에서 찾았다. 미 합참의장이 의뢰를 해왔단다. 미군의 의사결정을 향상할 방안을 찾아달라고. 저자의 대답은 이랬다. “혼란을 조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군대에 흑사병을 조금 퍼뜨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방법이 나온 건 아니다. 그저 장교를 한적한 곳에 모아 빽빽한 일과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건데. 체계와 강제를 무시한 쾌감에서 새 아이디어를 빼낸다는 전략은 성공적이었단다. 군대처럼 빈틈없는 조직일수록 여백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판단이 먹혔다는 얘기다.

▲이단아, 그들을 찾는 것이 승부수

정보만으로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담배는 아무도 못 피우는 것이 되고 스마트폰 따위는 버리고 열심히 책만 읽어야 한다. 저자의 철학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계획된 우연을 만들어 남다른 DNA를 가진 이단아를 색출, 서로의 세계를 섞어야 혁신이 생긴다는 논지다.

미국의 아인슈타인 의료센터는 고위 간부부터 간호보조사, 수위까지 참석하는 회의를 수시로 연다. 결국 에이즈보다 치사율이 높다는 황색포도상구균의 감염률을 절반으로 떨어뜨렸다. 할리우드 사람들이 모여 잡담이나 떨던 북살롱에서 출발한 허핑턴 포스트가 진보 담론의 선두 매체가 된 것도 유사한 사례다. 결정적으론 실리콘밸리가 있다. 이들의 역동적 시스템을 행정관료가 만들었겠나. 물론 터는 잡고 건물은 세울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안에 혁신까지 박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착각이란 말이다. 법과 규율로 창조성을 빼낸다? 법과 규율로 못 빼내는 것이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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