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Story]재난망 시범사업 이의제기 봇물..정부가 강행할 수 있을까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세월호 참사때 생명을 구하는 골든타임을 지키지 못했다는 판단에서 추진된 국가재난안전통신망(재난망). 지자체, 소방, 경찰 등이 하나의 통신망으로 잘 소통하기 위해 정부는 이달 중 시범사업 발주를 시작으로 2017년 말까지 전국망 구축을 완료한다는 계획입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국민안전처는 지난해부터 관련 기술 기준과 구축 방식을 정하고, 정보화전략계획(ISP)을 수립한 데 이어 시범사업 제안요청서(RFP)를 내고 7월 24일부터 10일 간 참여하려는 기업들로부터 이의제기를 받았죠.

정부가 발주하는 사업에서 사전규격에 대한 이의제기는 통상적인 절차입니다. 그런데 조달청 사업규격 사전공고 페이지에 접수된 의견이 무려 70건, 아이템별로는 241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의를 제기한 기업도 삼성전자 같은 굴지의 장비제조사나 이동통신3사 같은 대기업외에도 위성모뎀, 백본 스위치, 스토리지, 영상기기, 보안 업체, 전력 공급망 업체 등 다양합니다.

국민안전처는 시간 부족을 이유로 이의제기 기간을 줄이는 ‘긴급입찰’을 했는데, 이의제기 건수나 참여 기업 수는 역대 최대 수준입니다.

기업들의 이의제기 내용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먼저 삼성전자(005930)는 푸시투토크(PTT)서버에서 하드웨어 규격 제안을 완화하고 단말기 스펙에서 단말기간통신(D2D) 통화용량 확장기능을 추가해야 하며, 분실폰 위치추적용 서버의 제공주체를 명시할 것 등을 제안했습니다. 또한 기본 제공 앱의 내역과 단말기 운영체제(OS)의 차기버전 업그레이드 필요 여부도 명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기지국 내에서 디지털 정보를 처리하는 DU에서 무선설비 기술기준 변경사항을 반영할 것도 요청했죠. 한마디로 서버, 단말기, 통신장비 등에서 광범위하게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재난망 구축의 주사업자가 될 것으로 보이는 이통3사도 일제히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일단 KT(030200)와 LG유플러스(032640)는 무상 유지보수 기간 및 범위를 명시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KT는 여기에 운영센터 내 지령대 시스템의 용도를 특정할 것과 통신서비스에서 태블릿PC항목을 삭제할 것 등을 요청했고, LG유플러스는 구체적 검증장비와 대상, 기준 등 상세 요구사항을 정해달라고 했죠. SK텔레콤(017670)과 LG유플러스는 사업기한을 최소 10개월 이상으로 조정(연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통3사는 안전처 사전규격의 디테일 부족뿐 아니라 기간 부족 및 서비스 품질보장의 불분명성 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가 재난망 사업을 통해 키운다는 벤처들은 어떨까요.

에이엠텔레콤, 사이버텔브릿지 같은 단말 기업들은 그룹통화 내용 상세정의와 단말기 내 녹음파일 기능 명시 등을 요구했고, 이동기지국용 PS-LTE(공공안전 LTE) 개발업체 다누아이앤티와 위트솔루션, 이니셜티 등도 보안 알고리즘, 운영 온도, IP미디어서브시스템(IMS) 항목 삭제 등을 요구했습니다. 국제 표준화 기구에서 IMS 관련 표준이 모토로라 등의 반대로 확정되지 않아서입니다. 모토로라는 IMS에 기반한 음성콘트롤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정부가 재난망 시범사업 발주를 강행할 수 있을까요.

정부는 RFP 이의제기 기간이 끝나는 어제(6일) 재난망 시범사업을 발주할 계획이었습니다.

업계 전문가는 “이번처럼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의제기가 쏟아진 사례를 찾기 어렵다”면서 “기업들은 각자 준비하고 있지만 누가 손해를 감내하고 가느냐가 승부처가 될 것이라는 말이 돈다.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격”이라고 걱정했습니다.

정부는 이례적으로 현직 검사가 참여하는 범부처 재난망 검증팀까지 가동하면서 사업을 챙긴다지만, 재난망의 부실징후는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미리 정한 재난망 완료 시점에만 신경쓸 게 아니라, 재난망에 대해 기술기준부터 구축방식까지 면밀히 재검토하는 게 국민의 세금을 헛되이 날리지 않는 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재난망은 436억 예산이 드는 내년 2월 종료 시범사업뿐 아니라, 2017년까지 전국망 구축비 1조1000억 원이 드는 대형 국책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재난망 사업 검증팀이 활동 중인 서울 광화문 이마빌딩. 현직 검사를 팀장으로 기획재정부, 미래창조과학부, 국민안전처, 감사원 인력 등이 포함됐다. 검증팀은 재난망 시범사업과 본사업 전반을 챙기면서 예산의 적정성을 비롯해 기술기준, 절차, 구축 및 운영방식의 적정성까지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 검증팀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지시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