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책 다시보기]힘없는 비례대표는 말이 없다

여의도 여야 정치권의 정쟁에 숨겨진 정책 이야기
  • 등록 2015-09-26 오전 8:00:00

    수정 2015-09-26 오전 8:00:00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독자 여러분, 요즘 부쩍 정치인들이 싸운다는 보도를 많이 접하셨을 겁니다. 본질적으로 국회의원도 다른 직업군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명분과 이유를 대지만 결국은 국회의원 뱃지를 계속 다는 것, 즉 ‘해고’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내년 4월이 국회의원 총선거인데요.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온 것이지요.

올해는 여의도에 ‘핵폭탄’이 떨어졌습니다. 헌법재판소가 각 선거구당 인구편차를 당초 3:1에서 2:1로 줄여버린 겁니다. 예를 한번 들어볼게요. 인구가 400만명인 국가에 세 도시가 있다고 단순화해보지요. 인구편차 3:1에서는 200만명의 A 지역구, 130만명의 B 지역구, 70만명의 C 지역구가 가능할 겁니다. A에서는 100만표, B에서는 65만표, C에서는 35만표를 얻으면 당선될 수 있지요. 그런데 이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A에서 90만표를 얻은 낙선자 ㄱ씨는 어떨까요. B, C 의원보다 훨씬 더 득표하고도 떨어지는 불합리가 생길 수 있지요. 결과적으로 90만표의 가치는 버려지는 겁니다. 분명 부작용이라고 봐야 겠지요.

2:1로 기준을 더 엄격하게 해볼까요. 각각 A 180만명, B 130만명, C 90만명으로 가정할 수 있습니다. 당선을 위해서는 각각 90만표, 65만표, 45만표가 필요합니다. A 지역구의 낙선자와 B, C 의원간 표 격차가 그나마 좀 줄겠지요. ‘당선을 위한 힘을 가진’ 한 표의 가치가 더 평등해진 겁니다. 3:1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나요. A에서 20만명만큼 쪼개 C에 합친 것이지요.

이걸 지역구 200개가 넘는 우리나라 현실에 적용해보겠습니다. A 같은 곳은 지역구 내부에서 쪼개고, C 같은 곳은 지역구끼리 합치게 될 겁니다.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이 들고 일어선 것은 이 때문입니다. 지역구가 줄어들면 결국 ‘해고’될 가능성이 커지지요.

투표가치의 평등성과 농어촌 대표성 중 전자 택한 헌재

이번주 해드릴 이야기는 바로 이것입니다. 과연 국민 투표가치의 평등과 농어촌의 지역 대표성 중 무엇이 우선일까요. 헌재의 결정문부터 한번 보시지요.

“인구편차의 허용기준을 완화하면 할수록 과대대표되는 지역과 과소대표되는 지역이 생길 가능성 또한 높아지는데, 이는 지역정당 구조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같은 농어촌 사이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이같은 불균형은 농어촌의 합리적인 변화를 저해할 수 있으며 국토의 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헌재의 판단은 명확해 보입니다. 한 표의 가치가 불평등해질수록 지역주의가 비등해질 수 있는데, 이는 부정적이라는 겁니다. 오히려 농어촌이 여기에 안주할수록 국가적으로는 손해라는 것이지요.

저는 농어촌 의원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지 않습니다.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2:1 편차를 기계적으로 적용해보니 7개 시·군이 한 지역구가 된 곳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역구 관리 자체가 물리적으로 어렵겠지요.

정치권은 후자 쪽으로 가…애꿎은 비례대표 칼질 시도

그럼에도 여의도에서는 논의가 이상하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부터 발벗고 나서고 있는데요. 300명 국회의원 수는 더 늘리지 못하겠으니, 현재 54명인 비례대표를 더 줄여서 농어촌 지역구를 확대하자는 겁니다.

비례대표는 각 정당의 득표수에 비례해 당선된 의원입니다. 각 당에서 순번을 정한 후 전국적으로 득표한 만큼 의원이 나오는 겁니다. 앞서 90만표를 얻어 A 지역구에서 낙선한 ㄱ씨를 예로 들었지요. 이 90만표는 인근 B, C 지역구의 65만표, 35만표보다 가치가 떨어진 채 버려지지만, ㄱ씨의 정당 비례대표를 더 당선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집니다. 헌재가 우선한 투표가치의 평등성이 비례대표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지요. 이런 비례대표를 늘리지는 못할 망정 줄이려는 게 정치권의 움직임인데요. 거칠게 본다면 위헌 소지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지역구 의원들이 비례대표를 무시합니다. 이유는 유권자에 의해 ‘선출’되지 않고 권력자에 의해 ‘임명’됐다는 겁니다. 법조인 출신 어느 초선 의원은 이런 얘기도 합니다. “비례대표의 전문성이 지역구 의원보다 더 뛰어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건 본질을 벗어난 주장이라고 봅니다. 비례대표를 뽑는 과정이 불투명했다면 그건 기성 지역구 정치인들의 잘못이 더 큽니다. 힘 깨나 쓴다는 의원들이 ‘자기 사람’을 안 심으면 되는 겁니다. 전문성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비례대표와 지역구 의원의 전문성을 겨루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지역구 부담에서 벗어나 국가적 이슈에 매진하는 게 비례대표의 존재이유입니다. 요즘 지역보다 국가를 생각하는 정치인이 몇이나 됩니까.

비례대표제 더 잘 되게 다듬어야지 잘라내려 해선 안돼

‘힘없는’ 비례대표는 말이 없습니다. 당 대표부터 비례대표를 줄이려 하는데도 국회에는 반대 목소리가 거의 없습니다. 여기에 현직 비례대표들은 이미 지역구에 혈안이 돼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현직 비례대표들은 비례대표를 줄인다고 해도 하등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지요.

차제에 비례대표 중 우수한 인사에게 다시 한번 정책으로 기회를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재정 보건 복지 노동 출산 등 장기적으로 국익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의제는 너무 많습니다. 제도가 잘 굴러가지 않으면 고칠 생각을 해야지, 싹둑 잘라버리려는 시도는 안 됩니다. 특히나 새누리당은 헌법적 가치를 그 누구보다 중요시하지 않습니까.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여야 정치권의 정쟁 혹은 정책을 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jungkim@edaily.co.kr로 보내주세요. 부족하지만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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