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왕관쓰려는 반기문, 그 무게를 견뎌라

10년만에 전격 귀국..유력 대선후보로 떠올라
수백명 인파 예상하지 못한채 '허둥지둥'
'민생행보'표방하더니 '민폐행보'로 비쳐지나
  • 등록 2017-01-14 오전 8:10:00

    수정 2017-01-14 오전 8:10:00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KB국민은행 도화동점에서 국내 통장 계좌를 개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임현영 기자]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권력에 집착하는 ‘헨리4세’를 꼬집고자 한 말이다. 왕관을 쓴 자는 명예와 권력을 지녔지만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이 따른다는 의미다. 지난 2013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상속자들’ 부제로도 유명세를 탔다.

최근 이틀 간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의 행보를 보면서 이 문구가 떠올랐다. 지난 12일 반 전 총장의 귀국 당일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한국의 위상을 높인 국제 외교관의 ‘금의환향’보다는 차기 대선판도를 흔들 유력 후보의 등장이란 의미가 더 컸다. 실제로 그의 지지율은 지난 10년간 국내를 떠나있었음에도 지지율 선두를 다툴 정도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대다수 유권자들도 반 전 총장의 행보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그는 인천공항에서 대국민 ‘귀국 메시지’를 발표한 데 이어 이튿날에는 현충원을 참배한 뒤 주민센터로 이동해 전입신고를 했다. 이후 자신이 선거사무실이 위치한 마포지역 인근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했다. 자신의 위상을 여기까지 끌어올려준 국제적인 이미지를 잠시 내려놓고 ‘친근한 시민’이란 점을 어필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하지만 최근 시민과 소통하려는 의도와 달리 오히려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행보 내내 크고 작은 구설수가 뒤따랐다. 일단 귀국날 수백명의 취재진·환영인파 등이 몰리며 인천공항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실무진은 반 전 총장이 입국하기로 한 게이트를 여러번 반복 공지하며 혼란을 키웠다. 무거운 장비를 든 취재진들이 뛰어다니며 장소를 옮기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했다. 서울역으로 오는 데 택한 이동수단 역시 공항철도에서 승용차로 변경됐다가 공항철도로 다시 바뀌며 혼선을 빚었다. 비좁은 공항철도 내부에서도 혼란이 이어졌다. 서울역에서는 반 전 총장의 방문 직전 대합실에 있던 노숙인들이 외부로 쫓겨나는 일이 발생하며 잡음이 새어 나왔다.

이튿날 행보도 어수선하긴 마찬가지였다. 현충원을 제외한 주민센터·은행 등은 구름 인파를 감당하기엔 너무 협소했다. 좁은 실내에서 취재경쟁이 벌어지다보니 서로 넘어지고 부딪히는 아찔한 상황도 종종 목격됐다. 이는 종종 감정 싸움으로 번졌다.

일례로 사당3동 주민센터에서는 한 방송사 촬영기자가 주민에게 카메라 앵글을 가린다는 이유로 비켜줄 것을 요청했으나 해당 주민은 “우리 지역 주민센터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면서 비켜주기를 거부하며 마찰이 생겼다. 예민해진 나머지 양 측은 몸싸움 직전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다른 민원을 위해 주민센터에 방문한 시민들이 불편함을 겪은 것은 물론이다.

반 전 총장이 사업자 등록 계좌개설을 위해 들른 마포 KB은행 도화역 지점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비좁은 은행에 인파가 몰리자 시민들의 은행 업무는 불편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반 전 총장이 상담받는 은행 창구를 포함해 양 옆 창구의 업무도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은행을 들른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졌고 내부 직원들이 “ 비켜주세요” “물러나주세요”라며 양해를 구했으나 한꺼번에 몰린 인파를 제어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대선레이스’를 이제 시작한 반 전 총장의 상황도 이해가 된다. 지난주 캠프를 처음 차린만큼 아직 ‘초짜’다. 선거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직 공식행사 대응에 미숙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명의 인파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이는 실무진의 판단 착오다. 탄핵 정국으로 대선이 빨라진만큼 온 나라의 신경이 대통령 선거에 몰리고 있다. 유력한 대선후보의 일거수 일투족에 시민들의 관심이 몰리는 일은 당연하다. 게다가 열기는 더욱 고조될 것이다.

벌써 민생행보가 아닌 ‘민폐행보’가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오는 상황. 그만큼 대선 후보, 나아가 차기 대통령이 짊어질 왕관이 무겁다는 방증일 것이다. 시민과의 소통이라는 본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세련된 ‘민생행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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