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맛보기] ‘정치고수’ 반기문, 추석밥상 중심에 오르다

지난 5월 방한 이후 침묵 깨고 추석연휴 대권행보 재가동
정세균 의장·여야 3당 원내대표 면담서 ‘내년 1월 귀국’ 언급
반기문 귀국, 朴대통령 레임덕 방지·與 차기주자간 역동성 강화
  • 등록 2016-09-17 오전 9:00:00

    수정 2016-09-17 오전 9:00:00

왼쪽부터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세균 국회의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사진=국회의장실 제공)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내년 1월 중순 이전에는 (국내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귀국하는 대로 대통령과 국회의장 등을 찾아뵙고 귀국 보고 계획을 갖겠다.”

역시 반기문이었습니다. ‘기름장어’라는 별명대로 노회한 정치력을 과시했습니다. 외교관의 행보라기보다는 정치 고수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추석연휴 기간 동안 또다시 이슈메이커로 떠올랐습니다. 본인의 대권 행보와 관련해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을 쏟아냈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 방한 이후 국내 주요 정치적 현안에 대해 굳게 침묵한 것과 180도 다른 태도입니다. 약 4개월 만에 본인의 향후 행보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개진하면서 또다시 국내 정치의 중심에 섰습니다.

추석 연휴는 차기 대권주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민족대이동에 따라 수도권과 지방의 민심이 오가기 때문입니다. 특히 추석 밥상머리에서는 지역, 세대, 계층간 서로 다른 정치적 의견이 용광로처럼 뒤섞이면서 전국 단위의 여론을 만들어집니다. 반기문은 추석연휴 기간 동안 미국을 방문한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와 만나 차기 대선과 관련해 해석할 수밖에 없는 미묘한 언급을 남겼습니다. 효과는 백점만점입니다. 추석정국의 최대 이슈 중 하나로 ‘반기문 담론’을 만들어내며 이른바 밥상머리 정치의 중심에 섰습니다.

◇반기문·정세균 회동, “대권의 대(大)자도 나오지 않았지만…”

정세균 국회의장 일행은 현지시각 15일 미국 뉴욕에서 반기문을 만났습니다. 여기에는 정진석 새누리당,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국민의당 원대대표가 함께 했습니다. 대권의 대자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북한의 제5차 핵실험에 따른 해법 마련과 유엔 사무총장 시절 업적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역사 최대 관심사는 대선 관련 언급이었습니다. 특히 정진석 원내대표는 충청권 맹주격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친서를 전달하고 “소중한 지혜와 경륜을 미래세대를 위해 써달라”며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주문했습니다.

반기문은 지난 5월 방한에서도 강력한 권력의지를 보여준 바 있습니다. 당초 방한기간 동안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정치적 언행을 최대한 자제할 것이라는 예상이었지만 대선출마와 관련해 정면돌파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정치입문이나 대선출마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은유적 화법으로 정작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은 모두 말했습니다.

“내년 1월 1일이 되면 한국 사람이 되니까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때 가서 고민하고 결심하겠다”고 대권 출마를 최초로 시사했습니다. 역대 최악의 총장이라는 국제사회의 혹평도 반박했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사찰 의혹에는 화까지 내며 강력 반박했습니다. 압권은 건강에 대한 언급이었습니다. 1944년생으로 만 70세가 넘는 나이가 핸디캡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 “10년 동안 마라톤을 100미터 뛰듯이 했는데 역대 어떤 사무총장도 저보다 열심히 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1년에 하루도 아파서 결근하거나 감기에 걸려 쉰 적도 없다. 체력 같은 건 요즘은 별 문제가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현지시각 15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미국을 순방 중인 정세균 국회의장 및 여야3당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반 총장은 이 자리에서 내년 1월 국내로 귀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사진=국회의장실 제공)
이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올해말 임기가 마무리되면 내년 1월 귀국하겠다는 언급입니다. 또 대통령, 국회의장 등을 만나 보고하는 자리도 갖겠다고 말한 것으로 면담에 배석한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이 전했습니다. 노련한 외교관 출신의 반기문은 본인의 이러한 언급이 언론에서 어떻게 해석될 것인지 모르지 않습니다. 현 정치지형과 상황을 고려할 때 반기문의 언급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해석할 수 없습니다. 사실상 내년 1월부터 대권행보를 본격화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박지원은 “정진석 대표가 굉장히 세게 러브콜을 하셨는데 (반 총장이) 싫지 않은 표정으로 답변을 했다”고 이날 회동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반기문 조기 대권행보시 여야 차기 지형 ‘흔들흔들’

차기 대선과 관련해 가장 중대한 변수 중 하나는 반기문의 귀국 시점입니다. 이는 반기문이 차기 대선의 변수가 아닌 ‘상수’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반기문은 아직 대선 출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5월 방한 이후 여야 정치권에서는 그의 대선 출마를 거의 기정사실로 보고 있습니다. 몸값이 치솟은 반기문의 귀국 시점이 국내 정치에 던지는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특히 반기문의 차기 대선 출마 여부에 따라 여권의 차기 전략은 물론 이에 대응하는 야권의 차기 전략 또한 근본적으로 뒤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의 과반 붕괴로 마무리된 20대 총선 이후 여권의 차기 지형은 송두리째 뒤흔들렸습니다. 반기문, 문재인, 안철수 등 이른바 빅3 후보의 1, 2, 3위 구도가 고착화됐기 때문입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레이스 1위를 달리는 반기문이 없다면 여권의 차기 전망은 매우 불투명해집니다. 아직까지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지만 반기문을 제외한 여권 차기 주자들의 지지율은 여전히 5% 안팎 수준입니다. 두자릿수 지지율은 10%를 넘긴 주자를 찾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반기문이 중도 포기하거나 네거티브 검증공세에 밀려 낙마하지 않는다면 다른 주자들은 사실상 기회를 잡기 힘든 수준입니다.

야권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반기문이 차기 주자로 거론되기 전까지만 해도 문재인, 안철수의 양강구도가 유력했는데 반기문의 등장으로 많은 것들이 변화했습니다. 차기 대선은 여전히 야권 우위의 지형이지만 반기문의 등장으로 단일화 없이는 야권의 대선승리도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올 정도입니다.

반기문의 1월 귀국설에 야권을 경계감을 드러냈습니다. 면담에 동석했던 우상호 원내대표는 “오늘 정치적 논의는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내년 1월 중순 전에 귀국하시겠다고 했다. 주변 분들과 상의하지 않았겠는가 짐작하고 있다”면서 “1월에 오신다는 것은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역시 면담 이후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반 총장은 임기가 끝나면 빠른 시일내에 귀국해 본격적인 활동을 할 것을 강하게 암시받았습니다”라며 반기문의 조기 대권행보를 전망했습니다.

◇예상 깬 조기 귀국, 반기문 등장이 가져올 파급효과는?

반기문이 내년 1월 귀국을 거론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이는 당초의 예상을 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기문은 올해말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마무리되면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어느 정도 국내 정치와는 거리를 둘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의 경륜을 활용해 해외에 머물면서 남북평화나 국제분쟁 해결 등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더구나 남북관계에서 반기문의 주도로 의미있는 진전을 이뤄낼 경우 대선주자로서 그의 가치는 더욱 높아집니다. 더구나 국내에 조기 귀국할 경우 이른바 네거티브 검증공세에 시달릴 위험성도 적지 않습니다.

반기문은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 전략을 채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왕 맞을 매라면 미리 맞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야권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경우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을 공고히 하면서 여권 안팎에서 대세론을 확장시켜 나갈 수도 있습니다. 아울러 아무리 차기 지지율 1위라고 하더라도 정치적 기반이나 조직을 갖추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하루 빨리 귀국해서 대권 행보를 본격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계산을 끝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반기문의 내년 1월 귀국은 많은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내년은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5년차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기문이 귀국 이후 대권행보를 본격화하면 야권 공세의 초점은 박근혜보다는 반기문에 집중될 수 있습니다. 반기문의 조기 귀국은 역설적으로 박근혜로 향햐는 야권의 파상공세를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또 내년은 차기 대통령을 뽑는 이른바 대선의 해입니다. 반기문으로서는 1월 귀국을 통해 내년초 언론과 여론의 관심을 본인에게 집중시키는 부수 효과를 얻으며 국내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진입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손해볼 것 없는 윈윈 전략입니다.

또 반기문의 귀국은 침체에 빠진 여권의 차기 지형에 역동성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반기문을 제외하면 여권의 차기 주자들은 문재인, 안철수로 이어지는 야권 주자들의 위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기문의 등장은 여권의 차기 경쟁에도 역동성을 제고하면서 차기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의 희망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이때문에 일부 차기 주자들은 경우에 따라 반기문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를 자처하며 페이스메이커로 뛸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기문은 지난 5월 방한 이후 차기 대선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됐습니다. 넉달 뒤인 9월 추석 정국에서는 대권행보 본격화를 예고했습니다. 또다시 4개월이 흐른 내년 1월 반기문이 국내로 돌아오면 또 어떤 언급으로 국내 정치를 뒤흔들까요? 혹시 개헌을 이야기하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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