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위치한 중앙보훈병원. 지난 2011년부터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근무시간을 줄여 일하는 ‘전환형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도입해 운용 중이다. 그 결과 2011년 11%대였던 간호사 이직률이 지난해 5%대로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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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시간선택제 일자리제도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고, 이 제도를 도입한 기업과 근로자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직도 시간선택제 근무는 ‘그림의 떡’인 사업장들이 많다. 국내 전체 사업장 중 이 제도를 도입한 곳은 0.1%도 되지 않는다.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시간선택제 도입을 추진하도록 정부가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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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선택제란 유연근무제 범주에 속하는 근무형태로 생애주기에 따라 임신, 출산, 육아, 자기계발 등을 이유로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고용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지원한 기업은 지난 4년 간(2013~2016년) 16배(2013년 319개→2016년 5193개), 지원 인원은 10배(1295명→1만 3074명), 지원 금액은 15배(34억원→510억원)로 증가했다. 특히 최근 1년 새 전환형 시간선택제 도입 기업과 사용자가 늘었다. 시간선택제 전환 지원기업과 인원은 지난해 기준 2015년 대비 각각 3배(242→746곳), 4.5배(556→2530명)로 증가했다.
국가표준산업분류상 정부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지원하고 있는 18개 업종 중 활용도가 높은 분야는 제조업(20.7%),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17.4%), 도·소매업(15.9%), 출판·영상·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11.0%) 순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업장에서는 다른 세상 얘기일 뿐이다. 2014년 기준 통계청에 등록된 국내 총 사업체 762만 5640곳 중 시간선택제를 활용하는 기업은 고작 0.07%(5193곳)에 불과하다. 정부 조사 결과 시간선택제 일자리 수요가 가장 높은 업종은 콜센터 등 사업지원서비스업(11.9%)으로 파악됐다.
A시중은행에 다니다 출산·육아를 위해 휴직한 이모(32)씨는 “복직까지 아직 1년이나 더 남아있지만 내년 봄에 어떻게 복귀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라며 “시간선택제가 있으면 도움이 되겠지만 회사에 이 같은 근무 시스템이 없어 아쉽다”고 털어놨다.
제도 도입이 시급한 대표적 업종이 금융업이다. 여성인력 비중이 높고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급여수준도 높아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신한·우리·KB국민·KEB하나·NH농협) 중 시간선택제를 도입해 운용 중인 곳은 신한은행 뿐이다. KB국민은행이 작년 12월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갔고 우리은행은 지난 13일 유연근무제를 도입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한 시중은행 인사 담당자는 “은행원들은 보통 오전 9시 전에 출근해 오후 6시면 퇴근한다”며 “다른 업종보다 퇴근시간이 이르기 때문에 육아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지민 노사발전재단 선임연구원은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막고 일·가정 양립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인 만큼 일선 사업장에 뿌리 내릴 수 있게 기업들이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직무 조정·배분을 통해 전일제 동료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조직 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