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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의견수렴 끝 ‘정공법’ 선택…개혁동력 상실 우려한 듯
3일 대법원은 “대법원장은 법관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해 의혹을 해소하고 법원 구성원 사이에 발생한 갈등과 혼란을 없애기 위하여 추가조사를 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의혹은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의 정치적 성향 등을 파악해 이를 작성·관리해 왔다는 내용이다.
법조계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취임 직후 추가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김 대법원장은 인사청문회에 이어 임기 첫날에도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당장 급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고 강조했다.
김 대법원장은 임기 시작 사흘 뒤인 9월28일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 대표단 면담을 시작으로 지난달 27일 대법관회의까지 한 달을 내부의견을 수렴한 뒤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추가조사를 결정하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대법원장이 법원 내 반대여론이 있음을 알고도 추가조사를 택한 이유는 개혁동력 상실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블랙리스트를 그대로 덮고 넘어갈 경우 개혁성향 판사를 포함한 다수의 판사들이 김 대법원장의 개혁의지를 의심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향후 김 대법원장이 추진하는 개혁과제는 힘을 받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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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의 추가조사 결정으로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조사단의 구성 및 조사방법 등이다. 앞서 대법원은 첫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 때는 이인복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진상조사위는 “블랙리스트 없다”고 결론내고 조사를 마무리했다.
추가조사를 계속 요구해 온 법관회의는 대법원장의 결정 직후 즉각 조사권한을 요구했다. 법관회의 측은 “추가조사의 주체·대상·방법·절차 등에 대해서는 대표회의 내 소위원회에 조사권한을 위임해 달라”며 “위원회의 조사활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실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법관회의의 성격이다. 진보 성향의 판사가 상당수인 법관회의가 주도적으로 조사를 진행할 경우 반대 입장을 가진 법관들은 조사결과 및 공정성에 의구심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대법원장 의견수렴 과정에서 상당수의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는 반대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의 한 판사는 “법관회의에 조사권한을 일임하는 것은 아무래도 잡음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며 “법원 내 감찰 기능을 하는 윤리감사관실 인원을 포함하는 등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고민해야 모두가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블랙리스트가 저장돼 있었다고 의심받는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 컴퓨터에 대한 조사 여부 및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 대한 추가조사 등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앞서 진상조사위는 사건 컴퓨터를 직접 조사하지 않고 결론을 냈다.
김 대법원장은 추가조사의 구체적 사항에 대해 “현재 검토 중”이라며 “사법신뢰에 지장이 생기지 않고 그 절차가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