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책 다시보기]협상학 관점으로 본 예산정국 이야기

여의도 여야 정치권의 정쟁에 숨겨진 정책 이야기
  • 등록 2015-12-05 오전 8:00:00

    수정 2015-12-05 오전 8:00:00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새정치민주연합의 중진급 반열인 A 의원. 그가 지금껏 새누리당의 협상 파트너로 만났던 혹은 지켜봤던 의원들을 향해 낸 촌평(寸評)은 울림이 꽤 있습니다.

먼저 새누리당 내에서도 ‘협상 좀 한다’고 평가 받는 재선 B 의원. “B 의원은 남 얘기를 잘 듣지를 않아요. 선을 딱 긋고 이건 안 된다고 하는 식이에요.” 이렇다 할 협상력 평가는 없는 새누리당의 재선 C 의원. “C 의원 때는 정말 좋았어요. 대화가 참 잘 됐던 것 같아요.” A 의원이 나중에 또 협상해야 한다면 누구를 상대하고 싶을까요. 당연히 C 의원일 겁니다. C 의원이 만만해서가 아닙니다. 어차피 국회의원들은 협상이 주업인 ‘프로 중 프로’입니다. 상대가 있는 협상은 내가 가진 ‘덜 중요한 것(상대에게는 더 중요한 것)’을 내주고 상대가 가진 ‘더 중요한 것(상대에게는 덜 중요한 것)’을 받아내는 커뮤니케이션의 과정 아니겠습니까. 그 지난한 과정의 돌파구가 안 보이면, 그러니까 양측이 ‘윈윈(win-win)’할 수 있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협상은 파행이 불가피합니다. 이런 협상은 타결돼도 문제입니다. 둘 중 한 명은 아군(我軍)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을테니까요.

협상은 상대와 내가 ‘윈윈’ 하는 게임

최근 사내교육을 통해 처음 접한 ‘협상학’은 여의도 정가에도 유효합니다. 협상 전문가인 최철규 휴먼솔루션그룹 대표의 강의를 들었는데요. 그는 저서 ‘협상의 신’에서 바람직한 협상의 모습들을 그려놓았습니다. 인상적인 사례 하나만 옮겨봅니다.

어떤 중소기업의 CEO가 직원들에게 연초에 이렇게 말한다. “올해 목표를 달성하면 전 직원을 해외여행 보내주겠습니다.”

결국 연말에 목표 실적을 달성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 해외에 가긴 무리다. 그래서 CEO는 말한다. “해외는 무리니, 가지 맙시다.” 당연히 직원들의 불만이 커진다. 이때 CEO가 수정 제안을 한다. “해외는 그렇고 국내는 보내주겠습니다.” 이럴 때 직원들 반응은 어떨까. “쳇, 됐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CEO는 이런 반응을 접하고 이렇게 생각한다. ‘아니, 국내 여행이라도 가는 게 어디야? 안 가는 것보다는 자기들한테 이득 아냐?’

저자인 최 대표는 “그건 CEO의 오해”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이득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라는 겁니다. CEO가 자기 기분에 해외여행을 보내준다고 했다가, 못 보내준다고 했다가, 다시 반만 보내준다고 하니 자존심이 상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최근 협상학자들은 ‘심리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고 합니다. 협상이란 원하는 걸 최대한 얻어내는 게 아니라 상대의 행동·인식·감정을 변화시켜 가치를 키우는 의사소통이라는 것이지요.

과거 머무른 사생결단식 여의도 협상

협상학의 관점에서 이번 예산정국을 보자면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물론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그토록 원했던 관광진흥법과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을 얻었습니다. 얼핏 ‘승리’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의 마음까지 얻었을까요. 이 원내대표가 당내에서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리는 걸 보면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원내대표는 이번 ‘패배’를 앙갚음하려 이를 갈고 있을지 모릅니다. 윈윈은 커녕 한 쪽은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입니다. 승패가 명확히 갈리는 이런 협상은 반세기 전 학계에서 통용됐다고 합니다.

원·이 원내대표는 어차피 또 만나야 합니다. 당장 노동개혁 입법이 화두에 오를 겁니다. 노동개혁 입법을 저지하기 위한 이 원내대표의 저항은 훨씬 더 커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원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요구인 노동개혁 입법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연말 여의도의 그릇 깨지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립니다.

학계 용어로 요즘은 ‘협상 3.0’의 시대입니다. 최 대표가 소개하는 루브르박물관 탄생기도 좋은 협상의 결과물입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 당시. 왕궁인 루브르궁을 파괴하려는 시민군의 욕구와 역사적 유물을 보존하려는 정부의 욕구 사이에서, 루브르박물관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지요. 루브르박물관은 현재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 프랑스의 명소입니다.

새정치연합의 중진급 A 의원의 말처럼 여의도 협상은 너무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승자와 패자가 분명한 게임. 국회의원이 국민의 사랑을 못 받는 건 말로만 통합과 화합을 외치면서 실제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기 때문 아닐까요. 독자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여야 정치권의 정쟁 혹은 정책을 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jungkim@edaily.co.kr로 보내주세요. 부족하지만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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