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우의 닥치Go]동대문 ‘사입삼촌’ 따라가보니

동대문 새벽 도매시장서 구매대행 체험기
“뛰어야 산다…시간은 바이어와의 ‘신뢰’”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뛴다'
  • 등록 2017-07-01 오전 6:00:00

    수정 2017-07-01 오후 6:47:21

서울 신당동 동대문 도매시장. 이데일리DB
[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안녕하세요. 링크샵스요. 세 장 다 됐죠?”

“응~ 삼촌 이건 샘플~”

30일 새벽 1시 동대문 패션 도매시장을 누비는 한 청년 황정호(27)씨. 시장에선 그를 ‘삼촌’이라고 부른다. 소매업체가 주문한 물건을 대신 구매해 주는 황 씨는 ‘사입삼촌’이다. 황씨는 바빴다. 쇼핑몰 전체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으로 뛰어오르고 내렸다. “시간이 없어요.” 바쁘게 뛰어다니는 이유는 그게 전부다.

‘사입삼촌’ 황정호(27)씨가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기다리고 있다. 이데일리DB
사입삼촌들에겐 시간이 곧 바이어와의 ‘신뢰’다. 주문마감→상품픽업→검품 주문내역 확인→배송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황 씨는 상품픽업을 담당하고 있다. 운동화에 반바지, 티셔츠 차림에 한 손엔 주문대장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다른 한 손엔 의류가 든 비닐봉지를 들었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4층도 한 바퀴 돌 건데 같이 도실래요?”

동대문 도매시장. 이데일리DB
한 평 남짓한 가게들이 따닥따닥 줄지어 붙어 있다. “안녕하세요 유이요. 빨리 좀 해주세요. 지금 바로요” ‘유이’는 바이어명 또는 주문한 업체명이다. 단지 ‘유이요’라고만 말해도 도매상인이 알아서 해당 상품을 내준다. 그런데 이곳에선 다그쳤다. 이유가 있다. “여기는 바쁜 집이라 두 번씩 쪼아야 해요. 아니면 늦어요”

도매상인도 늦게 내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있다. 자정에 문을 여는 청평화시장. 공장서 물건을 실어 나르는 ‘지게꾼’들이(이들은 정말 지게를 매고 다닌다) 옷 보따리를 싸 들고 도매업체에 물건을 내려주면 그제야 포장을 한다. 밤 12시에 문을 열어도 공장물건을 받아 상품을 분류해 포장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황 씨가 도매상인에게 받은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이데일리DB
황 씨는 하나씩 가져온 물건을 쇼핑몰 밖 업계 간 구역을 정해놓은 어느 한 곳에 모아놨다. 그리곤 다시 가게를 돌아다니며 바이어 이름을 불렀다. “안녕하세요, 라니오기요” “안녕하세요 제이에이이요” 아직 준비가 안됐다면 “다시 올게요. 빨리요”라고 한다. 이 패턴이 반복됐다. 그러면서 계단 중간엔 의류가 가득 모였다. 그걸 이제 큰 봉지에 쓸어 담았다. “이건 팔대봉이고요, 이건 별대봉이에요.” 별대봉이 가장 큰 봉지, 팔대봉은 그 보다 작은 봉지를 말한다.

황 씨의 동선엔 다 이유가 있다. 도매 쇼핑몰인 남평화, 유어스, 뉴존, APM 등은 이른바 ‘밤시장’이라고 부르는 곳은 보통 밤 8시에 오픈해 새벽 5시쯤 끝난다. ‘낮시장’인 청평화, 디오뜨, 테크노 쇼핑몰은 자정에 열어 정오까지 연다.

5톤 트럭으로 물건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링크샵스’의 1톤 트럭이 쇼핑몰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데일리DB
쇼핑몰 운영 시간에 맞춰 동선을 짜고 분주하게 움직여야만 새벽 4시반 부산, 경남지역으로 향하는 링크샵스의 5톤짜리 배송트럭에 물건을 실을 수 있다. 수량은 약 10만여 벌(수수료=구매금액의 3.3%). 황 씨 등 팀원 10여 명이 쇼핑몰을 나눠 맡아 쉴 틈 없이 뛰어야 채울 수 있는 물량이다.

“저희는 새벽 3시에 점심을 먹어요. 그런데 오늘은 좀 늦어져서 우선 일을 끝내고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아요.”

황 씨가 상품을 짊어지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이데일리DB
새벽 3시. 그는 패션의류 쇼핑몰을 쉴 틈 없이 달렸는데도 “시간이 없다”고 했다. 끼니도 거른 채 곧장 신발만을 파는 쇼핑몰로 향했다. 황 씨가 일주일에 쉴 수 있는 날은 단 하루. 밤낮이 바뀐 삶을 사는 그는 자신도 “동대문 쇼핑몰에 작은 가게 하나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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