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의 월가브리핑]투자자들 아우성에도 파월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

작은 불씨에 과하게 반응하는 금융시장
과장과 발작…시장 투자자들은 불안하다
파월이 장기금리 눌러주길 바라겠지만…
"금융시스템 위험 없다" 파월은 시큰둥
연준-시장 '온도차'…단기 변동성 불가피
"변동성 장세서 투자 철학 정립 꼭 필요"
  • 등록 2021-03-02 오전 7:52:02

    수정 2021-03-02 오전 7:52:02



<미국 뉴욕 현지에서 월가의 핫한 시선을 전해드립니다. 월가브리핑이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투자의 맥을 짚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기자가 지금껏 만나본 주식 혹은 채권 매니저들, 외환 딜러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결국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만의 투자 철학이 확고해야 하지요.”

쉽게 설명해보면요. 사람마다 얼굴 다르고 성격 다르듯 투자 스타일 역시 판이하게 다릅니다. 어떤 매니저는 저평가 가치주를 사서 길게 보유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딜러는 그때그때 흐름을 타는 모멘텀 플레이에 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매수(buy)와 매도(sell)를 둘러싼 의미와 타이밍이 각양각색이라는 겁니다. 몇 년 전 만난 국내 A 은행의 한 외환 딜러는 “이건 밑줄 치면서 공부한다고 실력이 느는 게 아니다”며 “시장을 타면서 전적으로 동물적인 감각에 의존한다”고 했습니다. 돈을 벌기도 하고 돈을 잃기도 하면서, 스스로 고민을 거듭하고, 이런 경험을 다년간 축적하며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정립한다는 겁니다. 국내총생산(GDP) 같은 각종 거시경제 지표와 주가수익비율(PER) 같은 가치평가 지표, 지금까지 나온 모든 뉴스 등을 소화하는 건 기본 중 기본이고, 그 위에 감각적인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운용 경력 20년에 가까운 한 전직 채권 매니저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지키는 투자자가 수익률이 더 높다”며 “이들은 매번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선호하는 장세가 들어왔을 때 몇 배를 벌되 선호하지 않는 장세에서는 돈을 지킨다”고 하더군요. 상대적으로 투자자금이 적고 시류를 좇는 개인투자자들이 투자 전쟁에서 이기기 쉽지 않은 건 이런 이유가 있겠지요.

최근 한달 미국 10년물 국채금리 흐름. (출처=CNBC)


작은 불씨에 과하게 반응하는 시장

서두가 길었습니다. 뜬금없이 투자가 직업인 이들을 거론한 건 이유가 있습니다. 요즘 자산시장, 특히 주식과 채권의 단기 변동성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지루하게 들릴 수 있을 텐데요. 요즘이야말로 자신의 투자관에 대해 자문해보며 신중을 기할 때라고 봅니다.

기자는 현재 자산시장의 키워드로 ‘과장’ 혹은 ‘발작’을 꼽고 싶습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1.379%에서 장을 시작해 장중 1.614%까지 올랐습니다. 팬데믹 이전인 지난해 2월 중순께 레벨입니다. 이외에 그간 안정적이었던 2년물, 5년물 국채금리까지 치솟았습니다. 작은 불씨가 있었습니다. 당일 오후 미국 재무부의 7년물 국채 입찰에서 수요가 급감하면서 발행금리가 급등했던 건데요. 발행 직전 금리가 1.151%였는데, 입찰 결과 1.195%를 기록했습니다. 응찰률 역시 역대 최저였고요. 추후 인플레이션이 뻔해 보이는 상황에서 낮은 수익률로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투자자들의 생각이 가격에 반영된 겁니다. 돈을 태우는 입장에서 당연한 일입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려면 3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작심한듯 발언했지만, 시장은 파월 의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려되는 건 그 직후 대부분 만기의 국채금리가 갑자기 튀어오르며 발작을 보였다는 것이겠지요. 지난해 4월20일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배럴당 -37.63달러까지 폭락한 적이 있었습니다. 배럴당 10달러대까지 유가가 고꾸라진 와중에 일시적인 수급 불일치로 가격이 급변했던 건데요. 큰 맥락에서 보면 최근 국채시장 흐름은 이와 비슷합니다. 월가 내에서 앞으로 국채금리가 더 오를 것이라는데 이견은 거의 없습니다. 관건은 그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과장이 나타날지 인데, 그건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 시장의 모든 과장은 투자자들이 불안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겁니다.

3월 첫 거래일인 1일 시장은 또 달랐습니다. 10년물 금리는 1.395%에서 출발해 줄곧 1.4% 초반대에서 움직였습니다. 하원이 지난 주말 바이든표 부양책을 처리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일시적으로 낮아진 여파입니다. 이에 따라 뉴욕 증시도 반등했습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모처럼 3.01% 급등했네요.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지요. 또 언제 어떻게 오르내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를 테면 바이든 행정부가 언제든 큰 규모의 부양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건 염두에 둬야 겠지요. MKM 파트너스의 JC 오하라 수석시장전략가는 “과거 국채금리 급등 사례를 분석해보면 대부분 중기적으로 주가는 계속 상승했다”며 “큰 폭의 하락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비드 코스틴 골드만삭스 주식전략가는 “국채금리 상승 수준은 주식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위험이 아니라 (기술주에서 경기민감주로 자금 흐름이 바뀌는) 변화로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건 중기적인 시계로 본 분석입니다. 촌각을 다투는 투자의 세계에서 얼마나 귀에 들어올지 모르겠습니다만, 바꿔 생각해보면 이럴 때일수록 곱씹어 봐야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최근 5거래일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 흐름. (출처=구글)


파월 움직일 가능성 생각보다 낮다

어쩌면 투자자들은 파월 의장이 장기금리를 안정적으로 눌러주기를 바랄 겁니다. 연준은 채권수익률통제(YCC) 혹은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를 통해 장기국채를 집중 매수하는 식으로 얼마든지 10년물 금리 상승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주식 투자자들은 또 초강세장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요.

그런데 파월 의장은 답답하게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는 당분간 파월 의장이 칼을 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는 쪽입니다. 파월 의장의 최근 발언을 모아보면, 그 이유가 보입니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23일 상원에 나와 예상보다 빠르게 급등하는 10년물 국채금리를 두고 “경기 회복 기대감에 따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증시 버블론에 대해서는 “(통화정책과) 연관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파월 의장이 최근 시장 상황을 충분히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는 다만 몇 차례에 걸쳐 “우리는 심각한 인플레이션 억제 압력(disinflationary pressures)이 작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자는 최근 <월가브리핑>을 통해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을 나눠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분석하면서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인플레이션이라고 본다면, 최근 실물경제가 거기에 부합할지는 약간의 의구심이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2월22일자 [김정남의 월가브리핑]인플레 경고음 커졌다…건강한 조정 vs 급격한 폭락 참조)

파월 의장은 통화정책 양대 책무인 물가 안정과 고용 안정 중 후자에 집중할 것임을 만방에 알린 겁니다. 물가가 일시적으로 약간 오르는 걸 잡는 것보다 역사상 최악 수준의 실업난부터 대처하겠다는 겁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국채금리가 이 정도로 올라 증시가 조정론에 직면한 건 연준 입장에서 오히려 반가운 일일 수 있을 겁니다. 버블 위험을 시장 스스로 제거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건강한 조정’이지요. 몇% 떨어지는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항공모함으로 비유되는 연준 통화정책 방향을 바꾼다는 것 자체가 투자자들의 너무 큰 기대일 수 있습니다. 토머스 바킨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긍정적인 경제 전망을 감안하면 국채금리 상승은 놀랍지 않다”며 “물가는 더 오르겠지만 문제 될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했습니다. 최근 국채금리 발작 역시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연준은 보고 있습니다.

‘나는 왜 투자하나’ 자꾸 곱씹을 때

더 주목할 게 있습니다. 미국 연준 인사든 한국 한은 인사든, 전세계 중앙은행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는데요. 그게 금융시스템 리스크입니다. 경제 혹은 금융이 망가지는 모습은 각양각색인데요. 그게 예금과 대출을 기본으로 한 현대 간접 금융의 젖줄인 시중 은행권에 타격을 줘서, 다시 말해 예금자가 은행에 맡긴 돈을 떼일 정도로 혹은 은행이 대출자에게 빌려준 돈을 못 받을 정도로 금융시스템이 흔들리는 걸 중앙은행 사람들은 가장 주목합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거진 12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파월 의장은 지난두 하원에 출석한 자리에서 이를 명확히 정리했습니다. 그는 “지금 대형은행들은 (위기가 불거지지 않을 만큼) 강한 상태”라며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자신했습니다. 한마디로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겠다는 겁니다.

파월 의장이 고려하고 있는 이 모든 요인들이 위협 받을 정도로 국채금리가 확 뛴다면, 물론 연준은 움직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니라는 걸 파월 의장의 발언을 통해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연준과 시장 사이에 온도차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지요. 파월 의장은 오는 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여는 컨퍼런스에 참석합니다. 시장의 이목이 집중돼 있는데요. 이변이 없는 한 발언의 범위는 최근 수준을 넘지 않을 것으로 기자는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주식 투자자들, 특히 개미들이겠지요. 연준과 시장의 생각이 다른 만큼 단기 변동성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연준이 금리 상단을 사실상 열어놓았으니, 또 발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또 고평가 논란이 큰 종목들 중심으로 증시는 흔들릴 수 있고요. 시장의 조그만 불씨에 과하게 반응하는 흐름은 반복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겁니다. 돌고 돌아 같은 얘기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나는 왜 투자하는가’를 곱씹어 보았으면 합니다. 자산 운용으로 돈을 버는 ‘프로’ 역시 투자를 어려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3일 오전(현지시간) 화상으로 열린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사진=야후파이낸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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