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도 며느리였잖아요?"…시어머니 Vs 며느리 '가상대화'

[당신의 추석은 안녕하십니까]
며느리 "남편 조상 제사음식 왜 며느리만 차리나요?"
시어머니 "아들 부엌 오면 번거롭기만, 여자끼리 하는게"
  • 등록 2018-09-22 오후 12:00:00

    수정 2018-09-22 오후 1:32:53

사진=이미지투데이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민족 대명절 추석이다. 결혼 전에는 눈빠지게 기다리는 ‘빨간 날’이던 명절이 며느리가 되니 더이상 쉬는 날이 아닌 ‘일하는 날’이 됐다.

며느리들이 ‘시가’(媤家)에서 보내는 명절이라고 덮어놓고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남자들은 하는 일 없이 뒹굴뒹굴하는 동안 여자들만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뛰어다니는 이 불합리한 상황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게 더 정확하다. 명절 직후 이혼신청 건수가 평소의 2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여성들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시가 식구들 중에서도 며느리에게 가장 어려운 관계이자 노력해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시어머니다. 예전처럼 남자만 일하던 시대도 아니고 요즘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데도 명절풍경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 중심에 시어머니가 있다.

많은 며느리들이 평소 너무 궁금하지만 감히 ‘하늘과 같은’ 시어머니께 물어볼 수 없었던 명절 문화에 대한 질문을 이데일리가 대신 해드렸다.

다음은 30~40대 며느리와 50~60대 시어머니 각각 5명씩 인터뷰한 내용을 재구성한 대화다.

-어머님, 당신이 며느리였을 때 명절 풍경은 어땠나요?

△명절은 무조건 시댁에 가서 음식하고 차례 지내는 게 당연했어. 명절 전날은 여자들만 시댁에 가서 하루종일 지지고 볶다 당일에는 남자들까지 와서 차례 모시고 했지. 시어머니는 당신 딸들 싸줄 것까지 장만한다고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했는데 그 일이 다 며느리들 몫이었다.

시골은 보통 1박2일이나 2박3일 정도 가는데 부침개를 소쿠리로 하나씩 해놓고 먹었어. 온갖 전에 나물, 송편, 토란국은 기본이었지. 명절 때는 고모부터 시누이, 작은 아버지까지 시댁 식구들 대접하는 게 일이었다. 한 30명은 모였다. 그것도 한꺼번에 오는게 아니라 이틀, 삼일에 걸쳐 나눠서 오니까 친정에 갈 엄두를 못낼 때도 많았지. 시댁에서 온갖 일을 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죽어 지냈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누워서 TV나 보고 화투치고 차려주는 밥 먹는게 일이었지. 밤이나 까주면 다행이지.

-결혼 전에는 생판 남이었던 남편 조상 음식 차리는데 정작 남편들은 손하나 까딱 안해요. 결혼하고 첫 명절 때 음식준비한다고 저 먼저 오라고 하셨을 때 내심 서운했어요. 어머님은 그 당시 이런 문화가 불합리하다는 생각 안하셨나요?

△왜 안했겠어. 그런데 그 옛날에는 다들 그러고 사니 그러려니 했다. 여자만 뼈 빠지게 일하고 남자들은 도와줄 생각도 안했다. 그러다 남자가 부엌에 기웃거리면 시어머니가 남자가 왜 부엌에 들어오냐고 혼내고 네가 챙겨주라고 타박이나 하고 그랬다. 그래서 음식 준비할 때만큼은 남자들이 없는게 더 편해서 같이 안간 것도 있어. 같이 가봤자 챙겨야 하는 입만 느는 꼴이니.

불합리하다 느꼈지만 한 세월 그렇게 살다보니 나도 내 아들이 부엌에 들어오면 좀 어색해. 그래서 더 안시키는 것도 있다. 여자가 나도 있고 며느리도 있는데…

-그럼 요즘의 명절 풍경은 예전과 비교해서 많이 달라진건가요?

△그렇다. 옛날에 비하면 며느리들한테 일도 안시키고 음식 장만도 전부 나 혼자 알아서 한다. 와서 도와준다면야 막을 이유는 없지만 며느리들이 하는 일이 별로 없다.

올해도 자식들 내외 온다고 추석 음식 준비하느라 장을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내 입장에서 요즘 며느리들은 옛날에 비해 정말 많이 편해졌다. 하는 일이라곤 와서 설거지 정도 하는게 전부다. 그래서 가끔 억울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요즘은 명절 때 시댁 먼저 들르고 친정에 가는 정해진 형식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하는 젊은 부부가 많아요. 저도 설과 추석 번갈아가면서 친정 먼저 다녀와도 될까요?

△(침묵) 나는 내가 힘들었던 기억이 커서 며느리들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명절은 원래 시댁에 가서 차례 지내는게 당연한건데…당황스럽긴 할 것 같다.

-아들의 안부나 아들한테 부탁할 일도 꼭 며느리들한테 전화해서 전달하라는 시어머니들이 있다. 며느리보다 아들과 훨씬 친할텐데 직접 통화해도 될 일을 꼭 며느리를 거치는 심리가 궁금하다.

△속마음은 아들이 더 가깝지만 집안에서 며느리를 내세워줘야 편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며느리한테 이야기하면 어떤 경우라도 일단 시어머니 말이라면 겉으로는 다 들어준다. 아들은 무뚝뚝하고 무슨 말만 하면 “알아서 할게요. 됐어요”라는 등 짜증부터 낼 때가 많아서 더 안하는 것도 있다.

아마도 며느리가 거절 못하는 걸 아니까 시어머니들이 며느리한테 더 편하게 얘기하는게 아닐까 싶다.

-명절 문화에서도 급격한 세대변화를 실감하실 때가 있나요?

△많이 느낀다. 옛날에는 감히 시아버지 상에서 며느리가 같이 밥을 먹는다는건 상상을 못했다. 우리 때는 어른들 앞에서 엉덩이 보이면 안된다 해서 뒤로 돌아서 나가곤 했다. 시댁에서 양말 벗고 다니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요즘 며느리들은 좀 발랄(?)하다. 맨발로도 들락거리고 시아버지 옆에서 밥도 먹고 한다. 우리 기준에선 며느리들이 많이 살아났다.

-앞으로 명절 문화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나요? 어머님이 바라는 명절을 말씀해주세요.

△가족끼리 모여서 한두끼 먹고 즐겁게 지내는 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음식장만하는게 정말 힘들고 지긋지긋하다. 여자들만 하는 것도 그만 했으면 좋겠다. 요즘은 명절 당일에도 문 여는 음식점도 많고 파는 음식들도 잘 돼 있다.

상황에 맞게 누구도 별로 힘 들이지 않는 선에서 먹고 즐겼으면 좋겠다. 같이 여행가는 것도 좋다.

문제는 의외로 시아버지들이다. 아들네가 연락 없으면 나보다 더 서운해하고 명절 때 꼭 가족간에 모여서 왁자지껄하게 있길 바란다. 남자들이 좀 바뀌어야 하는데 지금껏 해온 세월이 있어서 쉽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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