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은혜를 버렸다"...한중수교, 분노로 넘친 1992년 8월24일

주변 대만 상인들 모여 통곡하며 울어..'한국에 배신감'
마지막 주한국 대만 대사 진수지, "반드시 돌아온다" 대만인들 위로
  • 등록 2017-08-24 오전 8:13:12

    수정 2017-08-24 오전 8:13:52

한중 수교 전 대만 대사관이었던 서울 명동의 중국 대사관. 사진=위키피디아


[이데일리 차예지 기자] 1992년 8월 24일 이상옥 외무장관은 중국의 첸치천 외교부장을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만나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이날 오후 4시, 명동의 대만 대사관에서는 한.중 수교로 철수하게된 대만대사관의 직원들이 대만국기인 청천백일기의 마지막 하기식을 거행했다. ‘마지막 주한국 대만 대사’ 진수지가 공식 단교문서를 전달받고 한국땅을 떠나라고 통보받은지 3일 만이었다.

“3일 안에 한국 땅 떠나라” 통보에 대만인들 ‘배신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부터 한국과 대만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1948년 8월 13일 한국과 대만은 공식 수교를 맺고 상호간 공관을 설치했고, 1949년에는 대만 장제스 총통이 한국을, 1966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대만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45년 간 긴밀히 유지되던 양국의 외교관계는 한국이 중국의 수교를 선택하며 대만에 단교를 선언함으로써 한순간에 무너졌다. 1971년 중국이 UN에 가입한 당시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했던 국가들이 하나둘씩 대만과 단교를 선언하였으나, 한국의 일방적 단교 선언으로 많은 대만인이 깊은 충격을 받았다.

대만 대사관 철수날, 대만인들 ’망은부의’ 써들고 대성통곡

마지막 하기식이 거행된 날, 대사관 앞에 모여든 대만인들은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다’라는 뜻인 ‘망은부의’(忘恩負義)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왔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한 목격자(36)는 대사관이 철수하던 날, 그 앞에서 근처 상인 등 대만인들이 모여서 슬피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그는 “대만인들 여럿이 모여서 반은 울고 반은 항의하며 통곡 수준의 울음을 터뜨렸다”며 “모여든 대만인들과 이를 지켜보는 우리나라 사람들로 길이 막혀 우리나라 경찰들이 교통통제에 나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목격자(50)는 “‘노 정권(노태우 정권)을 엄중히 질책한다’는 문구를 써서 나온 대만인들을 봤다”며 “근처에 위치한 한성화교학교의 밴드가 나와 대만 국가를 부르고 대만인들은 침묵하다가 흐느끼고, 흐느끼다가 통곡하고, 통곡하다가 분노했다”고 기억했다.

진 대사는 “우리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로 모인 대만인들을 위로했지만 그 말은 한국·대만 단교 25주년인 올해까지도 실현되지 못했다.

오성홍기와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2015년 방송 프로그램에서 청천백일만지홍기를 흔드는 모습으로 논란이 됐던 걸그룹 트와이스의 쯔위. /[이데일리 스타in 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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