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 리베이트 복마전]②자영업자 한숨 속 대기업 배불렸다

밴 수수료, 절반 이상 대기업 리베이트로 제공
복잡한 거래관계로 감시 사각지대 놓여
편법 동원한 리베이트 관행 지속
  • 등록 2013-09-11 오전 9:16:29

    수정 2013-09-11 오전 9:16:29

[이데일리 이학선 기자] 지난 2006년 인천시 남구에 프랜차이즈점을 연 김명진(가명·59)씨는 지난해 말 가게 문을 닫았다.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말에 퇴직금을 털고 빚을 내 3억원(임대보증금 제외)을 투자했지만 6년 만에 투자원금 대부분을 까먹었다.

“대기업 계열 식품회사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라 믿었죠. 투자설명회에 갔더니 1~2년 안에 증자해 회사규모를 더 키우고 홍보도 열심히 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약속을 한 사람이 반년 만에 바뀌었어요. 안정적인 수익은커녕 집사람과 온종일 매달려도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운 생활이었습니다”

김 씨는 당시를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다른 가맹점주를 만나봤지만, 하소연만 들었다. “후회스럽죠. 서민 등골을 빼먹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김 씨는 대표적인 사례로 프랜차이즈 본사와 밴사의 유착관계를 들었다. 김 씨처럼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개별 가맹점주는 카드사에 가맹수수료(결제수수료)를 낸다. 지난해 전업카드 6개사가 거둔 가맹수수료 수입은 1조6357억원. 신용카드 가맹점수의 80%를 차지하는 연 매출 2억원 미만의 소상공인에게서 발생하는 가맹수수료는 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카드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가맹점주가 낸 돈 결국 대기업이 챙겨

이 돈은 돌고 돌아 대기업 금고로 들어간다. 카드사는 가맹수수료의 30~40%를 카드사와 가맹점 사이에 결제정보를 중계해주는 밴사에 지급한다. 지난해 전업카드 6개사가 밴사에 지급한 수수료는 6342억원에 달했다. 밴사는 이 돈의 적게는 50%, 많게는 80%가량을 대형마트나 편의점, 주유소, 빵집, 커피숍 등 대형가맹점 본사에 전산지원비나 유지보수비 등의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줬다. 개별 가맹점주가 낸 가맹수수료가 카드사와 밴사를 거쳐 대기업으로 흘러가는 구조다.

이데일리가 확보한 K밴사가 200여개의 기업형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C사에 제출한 입찰제안서를 보면 K밴사는 C사에 3년간 총 31억6500만원의 리베이트를 제시했다. K밴사는 카드 결제건수당 80원, 현금영수증 발급건수당 18원을 보장하고 영수증 용지도 무상으로 제공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고객이 카드를 쓸 때마다 가맹점주가 부담한 가맹수수료가 여러 단계를 거쳐 가맹점 본사로 흘러간 것이다.

리베이트는 관행처럼 이뤄진 일이지만 워낙 구조가 복잡해 그간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또 웬만한 대기업과 중소형 프랜차이즈 본사까지 이 돈을 버젓이 받아 개별 제재만으로는 리베이트 관행을 뿌리뽑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초 대형가맹점을 제재했지만 리베이트 자체는 계약서에 명시된 사항이라 제재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도 리베이트 문제를 손댈 경우 파장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밴사는 카드거래 건수가 늘면 그에 비례해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라며 “결국 밴사는 거래규모가 큰 대형가맹점에 목을 맬 수밖에 없고, 대형가맹점은 그 대가를 정당하다고 간주하는 풍토가 리베이트 문제를 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은 돈거래 양산..편법동원도

리베이트가 묵인되는 지금의 상황은 검은 돈 거래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김석우)는 최근 밴서비스 계약을 둘러싸고 수억원의 금품을 주고받고, 이를 중간에 착복한 혐의로 밴사와 밴 대리점 대표, 편의점 임원 등 5명을 구속기소했다.

관련업계는 검찰의 이번 수사결과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합법을 가장해 뭉칫돈이 오가면서 결국 사고가 난 것”이라며 “뒷돈뿐 아니라 세금탈루와 비자금 조성, 개인정보 유출 등 밴업무와 관련한 문제가 복마전처럼 얽혀있어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밴사 리베이트를 차단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는 미흡한 실정이다. 지난해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으로 카드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인 대형가맹점은 수수료 부담을 줄일 목적으로 명칭이나 방식을 불문하고 대가를 받을 수 없도록 했으나 이 규정은 카드사와 대형가맹점에만 적용된다.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주체인 밴사는 규제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그 사이 대기업들은 편법적인 방식을 동원해 리베이트를 챙기고 있다. 특정 계열사에 밴사 선정권한을 주고 리베이트를 받는 창구로 활용하거나 밴사와 신규계약 없이 기존 계약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받는 게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일부 프랜차이즈 본사는 상품권이나 회원권 등을 밴사가 구매토록 하는 방식도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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