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년간 크레딧 채권시장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양적·질적 성장을 하였다. 우선 양적으로 크레딧 채권시장은 크게 성장하였다. 2006년 20.4조원에 불과하던 무보증 공모회사채 시장 규모는 2018년에는 79.3조원으로 늘어났고, 2019년 10월말까지 무보증회사채의 발행은 전년도 발행 규모를 초과한 82.6조원을 기록하였다. 특수채, 금융채 및 무보증회사채를 합한 크레딧 채권시장의 발행규모도 2018년 역대 최고치인 326.3조원을 기록하였고, 올해도 높은 발행 실적이 지속되고 있다. 다양한 신용사건을 겪었지만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였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장기 자금조달 수단으로 크레딧 채권시장의 역할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우량채 위주의 시장이 고착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2006년까지 30% 이상을 차지하였던 BBB등급 이하 회사채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2017년 이후에는 5% 이하로 줄었다. 최근 A등급에 대한 수요가 다소 증가하기는 하였지만 신용시장이 경색되면 A등급 회사채조차도 발행이 어려운 경우가 자주 발생하곤 한다.
크레딧채권시장을 둘러싼 환경 변화, 규제 여건 그리고 크레딧 채권시장 참여자의 견제와 자극은 신용평가산업을 변화시키는 동인이 되었다. 또한 일련의 신용사건은 신용평가의 신뢰도를 크게 하락시켰지만, 신용평가의 역할과 기능 및 평가방법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지난 15년동안 건설사 PF 부실화, STX, 웅진의 부실화, 동양사태, 해운사 구조조정 및 대우조선해양 사태 등 다양한 신용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신용사건이 발생한 시점에는 신용평가사의 신뢰도가 크게 하락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신용사건은 신용평가의 방법론을 재검토하고, 신용평가 품질을 제고하며, 신용평가의 적시성을 제고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촉매제로 작용하였다. 또한 대우조선해양 사태 이후에는 대규모 신용사건이 발생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최근 신용평가사의 신뢰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국내외에 걸쳐 신용사건은 신용평가 규제를 크게 변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였다. 미국의 경우 엔론사태 이후 신용평가에 대한 규제가 도입되었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과정에서 신용평가사의 잘못된 평가와 내부통제 장치 미흡 및 이해상충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규제체계가 크게 바뀌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신용평가를 전담하여 감독하는 체계를 도입하였고, 신용평가사의 행위규제를 강화하였으며, 평가사 간의 경쟁을 강화하고 투자자들의 신용평가 의존도를 줄이는 규제를 도입하였다. 유럽의 경우에도 EU 공통의 신용평가 규제가 마련되어 이전과는 다른 강력한 감독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의 경우 2013년 동양사태가 발생한 이후 신용평가 규제가 크게 변화하였다. 신용평가사에 대한 규제와 감독이 강화되고, 강화된 행위규제가 도입되었다. 특히 이전에는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신용평가 기준과 평가내용에 대한 감독이 이뤄지고 있고, 평가결과에 대한 책임성도 강화되었다. 이에 따라 과거에 비해 신용평가사의 규제 종속성은 심화되고 있다. 신용평가의 인허가, 평가기준, 절차, 행위 등에 걸친 강력한 규제가 도입됨에 따라 신용평가사들은 과거에 비해 규제기관의 눈치를 더 많이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SRE라는 신용평가의 전문성을 지닌 참여자의 의견 전달 채널이 마련됨에 따라 신용평가사의 시장과의 대화가 강화되었고, 신용평가 서비스 개선을 위한 다양한 노력의 동인이 되었다. 최근 국내 크레딧 채권시장이 우량채 위주로 바뀌면서 시장의 신용평가에 대한 요구도 변화하고 있다. 다양한 신용등급의 회사채가 발행되는 시기에는 신용등급의 변별력과 정확성이 신용평가사의 신뢰도에 핵심 요소로 작용하였다. 평가대상의 신용도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그 결과가 등급별 부도율에 반영되어 신용평가사의 우열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우량채 위주로 크레딧 채권시장이 재편되어 장기간 신용사건이 발생하지 않음에 따라 부도율 차이에 따른 평가사간 변별력이 줄어드는 대신 평가보고서의 질, 신용평가 의견의 적절성, 연구보고서의 유용성, 등급의 적시성, 향후 신용등급 방향에 대한 정보 등 다양한 요인들이 신용평가사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SRE의 신용평가사 신뢰도 평가도 이와 같은 시장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가 나오고 있다. 신용등급 결정의 핵심적인 요인에 대한 설명을 강화하고, 평가보고서의 질을 개선하며, 신용등급 결정의 적시성을 제고하는 평가사가 상대적으로 높은 신뢰도를 나타내고 있다.
SRE의 설문 항목중 특히 워스트레이팅(worst rating)은 신용등급에 대한 선제적인 의견 개진을 통해 신용평가의 적시성과 적정성 제고에 크게 기여한 사례로 볼 수 있다. 30회에 걸친 SRE의 과정에서 다양한 기업과 계열의 신용등급이 워스트레이팅에 포함되었다. 대부분은 시장전문가가 판단하고 있는 등급과 차이가 있거나,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등급의 변동이 없는 기업이 포함되었다. 워스트레이팅에 포함된 기업의 등급이 이후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살피기 위해 각 회의 설문에서 가장 높은 응답을 기록한 10개 기업을 대상으로 등급 변화의 비중을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1년후 등급이 상승한 기업은 6%에 불과하고, 등급이 하락한 기업의 비중은 41.2%로 나타나고 있으며, 신용사건이 발생한 기업의 비중도 8.3%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워스트레이팅에 포함된 기업의 3년후 등급 변화를 보면 등급이 하락한 비중은 58.7%, 신용사건이 발생한 기업은 15.7%를 기록하였다. 이 같은 결과는 신용평가 전문가들의 평가 대상기업에 대한 높은 전문성과 신용등급 방향에 대한 높은 예측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전문가들이 신용등급의 적시성과 적정성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신용평가의 품질을 제고시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지난 15년을 되돌아보는 현재의 시점에서 SRE의 기능과 역할의 새로운 정립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평가사간 선의의 경쟁을 촉진하는 설문과 더불어 크레딧채권시장의 변화 방향을 모색하고 신용평가의 영역과 컨텐츠 확대를 촉구하는 작업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신용도 분석이 필요한 새로운 금융부분을 발굴하고 적정한 신용분석 정보가 제공될 수 있도록 시장전문가와 신용평가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새로운 구조의 크레딧 채권의 도입이 빈번해짐에 따라 이에 대한 평가능력을 기르고 평가기준을 정립하는 방안도 찾아 나가야 한다. 시장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변화하는 크레딧 채권시장에 걸맞게 SRE도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서있다.
[이 기고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30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 책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