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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국민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나 하나 망가져서 관객이 통쾌할 수 있다면 내가 대신 맞겠습니다.”
1980년대를 주름잡은 왕년의 에로배우 선우일란(51·본명 길은정)이 돌아왔다. 의외로 스크린이 아닌 대학로 연극무대다. 지난해 나라를 뒤흔든 국정농단 사태를 소재로 한 역사교훈 풍자극 ‘비선실세 순실이’에서 타이틀 롤인 ‘최순실’ 역을 맡았다. 영화 ‘어떤 그리움’ 이후 11년 만의 복귀작이자 첫 연극 데뷔작이다.
최근 기자들과 만난 선우일란은 “배우생활 30년간 예쁜 주인공만 해왔다. 최순실처럼 강하고 독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 처음 제의를 받고는 망설였다”고 운을 뗐다. 이어 “최근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더라. 동료들과 촛불집회에 몇번 나가보니 억울함과 분통도 터졌다. 악역으로 공분의 대상이 된다면 영광이다. 철저하게 망가져서 국민이 통쾌함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선우일란은 1980년대 성인영화계에서 맹활약했다. 1984년 영화 ‘산딸기 2’로 데뷔해 ‘밤을 먹고 사는 여인’ ‘웅담부인’ ‘물레방아’ 등 2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애마부인’의 안소영을 비롯해 원미경·이보희 등과 당대 ‘성인 에로배우’로 군림했다. 1993년 드라마 출연 직후 돌연 은퇴한 뒤 하와이로 건너가 보석공부를 하다가 1998년 귀국 후 결혼했다. 2000년에 이혼한 뒤로는 현재 ‘싱글맘’이다.
“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연기의 꿈을 키우고 싶다”는 그는 탈진할 지경으로 연습을 거듭했다고 했다. 혹독한 연습 탓에 목도 쉰 상태. 선우일란은 “동료배우들의 연기열정에 많이 놀라고 배우고 있다”면서 “며칠 전 연습 중 눈을 다쳐 완전히 회복한 4월부터 무대에 선다”고 했다.
극작과 연출을 맡은 강철웅도 이른바 ‘벗는’ 성인연극의 대부로 불린다. 1993년 ‘마지막 시도’를 연출했다가 공연음란죄로 구속되기도 했지만 이후 ‘교수와 여제자’(2009),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2010), ‘개인교수’(2011), ‘가자 장미여관으로’(2011) 등을 차례로 무대에 올렸다. 강 연출은 “성(性)이란 주제가 음습하다는 과거의 편견을 깨고 터놓고 이야기하는 장을 마련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지난 대선에서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찍은 51.6% 중 한 명이었다. 이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고 스스로 반성하자는 의미에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가 아직도 공주인 줄 알아” “개좋아, 정유라가 이대 갑니다” “니 언니 (장)시홍도 말 안 탔으면 대학도 못 나왔어” 등. 시종일관 직설적이다 못해 자극적인 대사와 장면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선우일란이 내달부터 무대에 서는 탓일까, 국정농단 사태에서 온 피로감 때문일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반응은 시큰둥하다. 빈 객석이 눈에 많이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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