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빈자리에 행복이 가득하더라

오지여행의 매혹―미얀마
  • 등록 2010-05-28 오후 12:00:00

    수정 2010-05-28 오후 12:00:00

▲ 양곤 최고의 사원 쉐다곤 파고다.(왼쪽) / 탁발 중인 비구니 스님(오른쪽)
[조선일보 제공] 생애 첫 여행지로 미얀마를 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얀마는 그리스나 이탈리아처럼 찬란한 고대 문화의 진원지도, 캐나다나 호주처럼 넘볼 수 없는 자연을 품은 나라도, 뉴욕이나 파리처럼 문화와 예술의 상징 같은 도시도 아니다. 사람들이 미얀마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는 건 해외여행에 슬슬 진력이 날 무렵이다. '시간이 멈춘 땅'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미얀마는, 그동안 우리가 쉽게 보지 못했던 오지마을의 풍경을 물리도록 풍요롭게 보여준다. 거대한 하늘 호수와 보는 순간 인간을 압도하는 불탑의 무덤, 그리고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들이 있는 미얀마를 찾았다.

하늘길만 달려 여행한 사람들은 미얀마의 속살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미얀마는 사실 '점'과 '선'으로만 연결된 육지 위의 섬 같은 나라다. 비행기가 아니면 미얀마 내부로 들어가는 길은 철저하게 막혀 있다. 태국 북부에 작은 길이 뚫려 있긴 하지만, 비자를 맡기고 한나절만 돌아볼 수 있는 지극히 폐쇄적인 육로개방이다. 휴대폰이나 이메일 같은 현대인의 필수품들은 이 나라에 입장하는 순간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길은 자주 끊기고, 정보는 철저히 차단되어 있다.

스스로 고립된 섬을 자처하는 미얀마에는 2003년 6월까지 강제 환전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도가 존재했다. 공항에만 머물러도 현지 환율을 고려할 때 다 쓰고 가기 어려운 200달러의 돈을 강제로 환전시키는 악명 높은 제도였다. 미얀마에 관한 소문은 점점 더 흉흉해졌다. 미얀마 지도 위에는 외국인 출입 제한지역이라는 표시가 빨간 차압 딱지처럼 덕지덕지 붙었다. 갈 수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이 마구잡이로 섞여 있다 보니, 장거리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는 국경을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수시로 버스에서 내려 여권 검사를 받아야 했다. 길게 늘어선 그 줄이 때때로 강제수용소의 배고픈 노동자처럼 비참해보였다.

▲ 모든 편의시설이 부족하지만, 결코 행복이 부족하지는 않은 나라 미얀마. 인레 호수에서 한 어부가 투망으로 고기를 잡고 있다.

단편적인 사실만 나열하고 나면, 미얀마는 아름다운 불교의 성지와는 거리가 먼 여행지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TV 뉴스에선 심심치 않게 미얀마의 불안한 정치 상황, 경제 위기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뉴스에 등장하지 않는 미얀마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평화롭고,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진 동남아 최고의 여행지다. 버마족, 샨족, 몬족, 잉따족 등 얼굴과 풍습이 다른 수많은 인종들이 드넓은 땅 위에, 정치와는 무관한 얼굴로 각자의 문화를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훼손되지 않은 광활한 미개척지,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순수한 오지 마을, 아직 발굴이 시작되지 않은 유적들. 육지 위의 섬 미얀마에선 이런 다채로운 구경거리를 조금 과장해서 10분에 한 번꼴로 만날 수 있다.

◆론지와 타나카의 나라

후텁지근한 공기가 입을 먼저 틀어막는 미얀마 제1의 도시 양곤. 이곳의 첫 느낌도 예외는 아니다. 양곤에는 그 흔한 맥도날드 없고, 스타벅스도 없다. 한 나라의 경제 중심지치고 양곤의 도심 풍경은 지나치게 어둡고 삭막하지만, 그러기에 이곳의 매력은 두 배, 세 배로 커진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순박한 웃음을 머금고 거리의 이방인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담요를 앞쪽으로 말아 대충 묶어 놓은 것 같은 전통의상 론지(lounji)를 입고, 선크림 대용으로 타나카(thanakha) 나무를 갈아 만든 황토색 가루를 바른 사람들의 얼굴은 포토제닉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은 대낮의 여유를 즐기며 삼삼오오 거리에 모여앉아 담배처럼 중독성 강한 빨간색 꽁야(kun ya)를 씹거나, 꼬치구이에 맥주 한잔을 곁들이며 미얀마의 시큰한 더위를 이겨나간다.

▲ 만달레이 근교에서 만난 해맑은 어린이들.

거리를 지나가는 자동차 중에 멀쩡해 보이는 것은 거의 없다. 거대한 재활용의 도시인 미얀마의 중고차들은 굴러간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질 만큼 고물이다. 여기에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몸을 싣고, 물건을 실어 올린다. 경제 중심지가 이 정도이다 보니, 최고의 불교 유적지인 바간(Bagan)이나 수상가옥이 모여 있는 인레호수(Inle Lake)로 들어갈 때는 사정이 더 나빠진다. 산간벽지를 둘러싸고 꼬불꼬불 나있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으면, 오장육부가 배배 꼬이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더 대단한 볼거리들이 펼쳐진다. 쓰레기더미가 쌓여있는 강가에 퍼질러 앉아 몸을 씻고 야채를 다듬는 사람들, 모래사장 위에 초가집을 짓고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아가는 원시마을 사람들, 깊은 호수에 수백, 수천 개의 집을 이어붙이고 마을을 이루며 사는 수상 부족. 모두 문명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 완벽한 자연의 삶을 살고 있다.

여행객 눈에 그것은 다소 불편해 보인다. 전기도, 물도, 돈도 넉넉지 않은 삶이 어떤 것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다행히 껄로(Kalaw)의 산골짜기에서 만난, 한국 드라마를 즐겨본다는 아주머니는 산책 나온 여행자를 굳이 자기 집 거실로 초대해 차를 대접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제일 가난한 한국 사람도 미얀마 최고 부자보다 훨씬 부유해 보여. 그렇다고 그 모습이 부럽진 않아. 나는 가진 게 전혀 없지만 늘 행복하거든. 미얀마 사람 모두 그렇게 살고 있어." 미얀마는 전기와 물, 모든 편의시설이 부족하지만, 결코 행복이 부족한 나라는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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