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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영국 정부가 유럽연합(EU)을 탈퇴(브렉시트) 후 불이익을 받더라도 EU 규정을 따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EU는 영국이 유럽 시장에 접근하려면 기존 EU 규정을 준수해야만 한다며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촉박한 시간이다. 연장 없이 오는 12월까지 양측이 협상을 마쳐야 한다. 이 때문에 애꿎은 기업들만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따르면 사지드 자비드 영국 재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브렉시트 이후 EU 규정과 연계·일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영국은 (기존 규정을 따라가는) ‘룰테이커(Rule Taker)’가 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오는 31일 오후 11시부터 EU에서 탈퇴하게 된다. 다만 당분간은 EU 관세동맹 및 단일시장에 잔류한다. 영국과 EU는 올해 12월 31일까지 전환기간을 두고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해 향후 관계를 재설정하는 미래협상을 마무리짓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 EU는 향후 영국이 EU와 무역협상 등을 체결하려면 기존 EU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향후 협상은 영국이 EU 규정을 얼마나 잘 준수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영국은 EU 규정을 준수할 경우 브렉시트는 의미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자비드 장관의 발언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전환기간 내 양측이 합의하지 못하면 노딜(합의 없는) 브렉시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자비드 장관의 성명 발표 이후 영국 산업계에서는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자동차 업계가 가장 먼저 불만을 터뜨렸다. 영국이 그동안 EU 회원국으로 지내면서 유럽 전반에 걸쳐 자동차 제조업 체인이 구축됐기 때문이다. 유럽 자동차 시자이 영국의 6~7배에 달하는 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영국이 EU 규정을 포기하고 자체 규정을 적용하게 되면 영국에서 차량을 판매하려는 회사는 별도의 허가·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업체들의 비용이 늘어난다는 지적이다. 또 영국에서 판매되는 차량이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비싸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동차 업계 일자리가 줄어들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한편, 비용 부담도 전가될 것이라는 게 업계 측의 설명이다.
대(對) EU 수입 의존도가 높은 농산물 및 식료품 업계에서도 비용 전가에 따른 소비자 가격 상승 우려가 제기된다. 영국 식음료협회 관계자는 “자비드 장관의 발언은 EU와의 무역마찰을 알리는 죽음의 종소리로 들린다”며 “EU 규정에서 벗어나면 수많은 영국 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자비드 장관은 “브렉시트로 인한 새 규정 적용에 따라 어떤 기업은 이익을 얻고, 어떤 기업은 손해를 볼 수 있다. 영국 기업들도 새로운 규정에 적응해야 한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올 연말까지 새 규정을 만드는 조정 작업을 끝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