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에서 시(詩)는 잊어라 강(江)이 그냥 시(詩)가 된다

섬진강 상류여행 -순창 장구목
  • 등록 2009-12-03 오전 11:36:00

    수정 2009-12-03 오전 11:36:00

[조선일보 제공]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김용택 시인이 스스로 뽑은 가장 마음에 드는 시 '섬진강 15'의 첫 대목입니다. 한강처럼 거대하지도, 동강처럼 세차지도 않은 530리(약 212㎞) 강은 묵묵하고 조용하게 흐릅니다.

'두꺼비 섬(蟾)'자에 '나루 진(津)'자를 쓰게 된 사연도 재미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들이 바다 건너 섬진강으로 배를 몰고 들어왔답니다. 경남 하동쯤이었다지요. 두꺼비들이 떼로 강을 차단해 일본 사람들을 막았고 그 덕분에 쳐들어오던 일본 배를 잡아둘 수 있었답니다.

전북 진안에서 솟아나는 섬진강은 임실을 지나면서 운암댐과 만납니다. 곡성, 구례, 오산을 지나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로 흘러들면서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의 경계를 이루지요. 관광객으로 가득한 봄과 다른 호젓한 매력이 가을의 섬진강엔 흐릅니다. 섬진강 상류 작은 마을들의 늦가을 이야기, 수억 년 전 바위가 원시의 멋을 뿜는 전북 순창 장구목부터 시작합니다.

▲ 강 위쪽 돌은 기운 세고 거대하다. 섬진강 상류, 전북 순창 장구목의 바위들은 덩치 큰 동물이 뛰어논 것처럼 움푹움푹 파였다. 이 바위가 굴러 자갈이 되고, 그 자갈이 다시 굴러 하류의 모래가 된다.

그 어떤 신비롭고 덩치 큰 동물이 이 바위 위를 뛰어다닌 걸까. 공룡 수천 마리가 강 위에서 기쁨에 겨워 달린 것처럼, 커다란 돌들 위엔 기괴한 모양의 구멍이 움푹움푹 패었다. 전북 임실군과 순창군의 경계에 있는 장구목(전북 순창군 동계면 내룡리·이 동네 사람들은 '장군목'이라고도 부른다)엔 강 상류 특유의 원시적 에너지가 가득하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작품'이 나오는 기막힌 절경에 비해 장구목은 사시사철 한가하다. 임실에서 순천으로, 717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보면 '장구목' 표지가 나오는데 용골산 자락 장구목에 이르는 3㎞ 남짓한 길이 자가용 한 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은 탓이다. 관광버스가 들어올 수 없다는 불편이 대규모 관광객을 막으면서 조용함이란 매력을 선물한 셈이다.

기기묘묘한 바위 중에 '요강바위'란 이름이 붙은, 깊은 구멍이 뚫린 돌덩이가 눈에 확 들어온다. 동그란 구멍은 성인 남자가 들어가도 남을 정도로 크고 깊다. 높이 2m, 폭 3m, 무게 15t…. 한국전쟁 당시 이 거대한 바위 속에 숨어 화를 피한 이들도 여럿이란다.

동그란 구멍은 기계나 정으로 세심하게 깎아 만든 듯 반듯하다. 그 기묘한 자태가 탐나서였을까. 1994년 '골재 채취를 하러 왔다'고 밝힌 한 남자가 몇 달 동안 밤마다 돌 가는 소리를 내고 '작업'을 하더니 어느 날 바위를 들고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국에 몽타주를 만들어 보내고 방송까지 내보낸 끝에 경기도 어느 집에서 이 바위를 훔쳐간 사람을 간신히 찾아냈다고 전해진다.

장구목의 강물은 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다. 느릿느릿 내려오던 물은 변덕스럽게 생긴 돌을 만나 깜짝 놀란 듯 꿀럭꿀럭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배배 꼬인다. 물 위에 떠가는 마른 버들잎들은 단정하고 곱다. 강기슭 너른 바위 한가운데 난 틈엔 가느다란 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바위가 갈라져서 나무가 들어섰는지, 나무뿌리의 힘이 바위를 갈랐는지… 묵묵히 서로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길게 길게 흐르는 섬진강과 똑 닮았다.

가는 길

장구목까지는 버스가 들어가지 않아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 임실에서 순창으로 넘어가는 717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보면 산 위로 올라가라는 '장구목' 이정표가 크게 보인다. 내비게이션을 이용한다면 장구목 바로 앞에 있는 '장구목 가든'(063-653-3917)으로 검색하는 게 편하다. 순창택시 (063)653-8252

여행 문의

순창군청 농촌관광과 (063)650-1628 http://tour.suncha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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