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박사되고, 부모는 엿 만드는 마을… ''박사골 엿마을''

이 엿 먹으면 저도 박사될까요?
박사 143명 배출한 마을… 바삭하고 이에 붙지 않는… ''사글사글한'' 맛으로 인기
  • 등록 2009-12-03 오전 11:53:00

    수정 2009-12-03 오전 11:53:00

[조선일보 제공] 전북 임실군 상계면 일대는 오래전부터 '박사골'로 통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박사를 배출한 고장으로 전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박사골이 엿으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박사와 엿은 무슨 관계인가? 언뜻 상관없어 보이지만, 따져 보면 박사와 엿은 의외로 연관이 많다. 박사는 지성과 학문의 최정점이고, 엿은 그 지성과 학문의 세계의 입구인 대학에 반드시 붙겠다는 염원(念願)의 상징물이 아니던가.

박사와 엿의 상관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박사골로 향했다. 삼계면 봉현리 숙호마을 한규체(77)·양정자(74)씨 부부가 사는 집을 찾아갔다. 박사골에서 가장 엿을 잘, 그리고 오래 만들어왔다는 부부이다. 일단 박사골이란 이름의 근거부터 궁금했다. 도대체 박사가 몇이나 나왔기에? "박사골 출신으로 박사학위 딴 분이 지금까지 143명이고, 예비 박사들도 20명이 넘어요."

▲ 전북 임실 박사골 숙호마을 한규체ㆍ양정자씨 부부가 만든 엿. 구멍이 많고 가벼울수록 상품(上品)이다. / 조선영상미디어

박사를 이리 배출한 것이 과연 엿 때문일까. 한규채씨는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띄웠다. "조선 때는 삼계도 남원에 포함됐어요. 지금은 임실로 분리가 됐지만. 남원, 옛날부터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났소. 낙향한 양반들이 남원으로, 삼계로 찾아들었어요. 집성촌을 여기저기 만들었어요. 그래서 예부터 '선비의 고장'이라 불렸습니다. 남의 집안에 뒤질세라 선의의 경쟁을 벌였소. 부모들이 자식한테 '기둥뿌리라도 팔아서 공부시킬 테니 열심히 해라'고 격려했어요. 풍수지리에 따르면 자리가 참 좋다고도 하더만. 하여간 '키포인트'는 선의의 경쟁이에요. 다들 공부들을 열심히 해가지고 박사를 그리 많이 배출한 거지요."

"박사골이 '엿마을'로 소문나기 시작한 것 새마을운동 시작할 무렵"이라고 한규태씨는 기억했다. 그러니까 한 40년 전 일이다. "제가 새마을운동 지역 회장을 했어요. 당시 부녀회장이 윤순호씨란 분이여. 그분 엿이 남들하고 달랐어요. 과거 엿 만드는 방법이 아니야. 사글사글하니 참 좋아. 그래서 우리 안사람한테 가서 엿 만드는 법을 배워오라고 했어요. 이런 자랑 하면 안 되지만(지방 어른들은 늘 이렇게 아내 자랑을 시작한다), 안사람이 음식을 참 잘해요. 그때 윤순호 부녀회장한테 배워온 엿 만드는 기술이 퍼진 것이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버렸소."

한씨는 "삼계면에서 엿으로 벌어들이는 매출이 40억"이라고 했다. "김장하고 나서부터 대여섯 달을 엿을 해서 팔아요. 크리스마스 지나고 설까지 뭉청뭉청 나가버려. 큰 회사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저 큰 저온저장고 하나가 다 나가버려."

한씨는 박사골 엿의 가장 큰 특징을 물으니 "사글사글하다"고 했다. 딱딱하지 않고 이에 들러붙지 않아서 먹기 편하고 맛있다는 뜻이다. 양정자씨에게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설명해주면 아느냐"며 웃는다. "쌀을 물에 담가. 오늘 담그면 내일 시루 걸고 쪄. 물을 데워 갖고 엿기름 풀어 가지고 고두밥 헌 놈을 퍼부어. 휘휘 저어 갖고 양쪽에서 잡아당겨. 6명이 한 조로 일해요. 둘이 갱엿(엿기름 푼 물에 밥을 넣어 삭히면 만들어지는, 누런 시럽 같은 엿)을 떼어서 초벌해 줘. 그러면 둘이 받아서 잡아 댕겨. 바깥에서 한 양반이 잡아당기고, 한 양반이 끊고. 농도를 알맞게 잘 맞춰야 돼. 일기(日氣)를 매일 들어야 해. 날씨에 맞춰서 되게 푸고 묽게 푸고 하지."

부부가 '엿 손잡이'라며 먹어보라고 내줬다. 한씨 말대로 '사글사글'하다. 다른 엿과 달리 씹으면 바삭하게 부서지면서 이에 달라붙지 않는다. 양과자처럼 노골적이지 않고 은근하게 달면서 씹을수록 구수한 콩과 땅콩, 참깨 맛이 배 나오고, 향긋한 생강향이 코로 올라온다.

▲ 선물용으로 가장 많이 나간다는 대나무 상자에 담긴 엿.
엿이 딱딱하지 않고 들러붙지 않는 노하우를 한씨는 "바람을 넣는 것"이라고 했다. 쉽게 풀어 설명하면 엿을 잡아당기고 포개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공기구멍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엿을 들어 단면을 태양에 비춰 보면 햇볕이 그대로 통과한다. 이 마을 엿은 가벼울수록 품질이 좋고 잘 만들었다는 증거다. 그래서 엿을 무게 단위로 팔지 않고 담는 상자 크기로 단위를 잡는다. 선물용으로 가장 많이 나가는 3만5000원짜리 대나무 상자부터 2만5000원짜리 플라스틱 상자 등 크기와 소재가 다양하다. 3만5000원짜리 대나무 상자 크기를 물어보니 모른다기에 자로 재봤다. 가로 34㎝, 세로 24㎝, 높이(뚜껑 닫은 상태에서) 8㎝이다. 사진에 나온 대나무 상자는 5만5000원짜리로 가로·세로 28㎝에 높이가 11.5㎝이다. 엿을 먹고 싶으면 한규채씨 집(063-642-7746)이나 휴대전화(011-9648-7746)로 주문하면 된다.

상자를 열어보니 엿이 상자에서 흘러내릴 것처럼 수북하게 담겨 있다. 한씨는 "무조건 푸짐하게 기분 좋게 담는다"고 했다. 취재를 마치고 떠나는 기자에게 "올라가면서 먹으라"며 '엿 손잡이'를 비닐봉지 하나 가득 담아 쥐여줬다. 박사가 넉넉한 인심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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