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의 정치인·영원한 2인자' JP 영면..‘3김(金) 시대’ 역사 속으로

  • 등록 2018-06-23 오전 11:02:02

    수정 2018-06-23 오전 11:14:46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고 김 전 총리가 2015년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부인 박영옥씨 빈소에서 조문 온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대화를 하던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영수 기자] 한국 현대 정치사를 상징하는 ‘3김(金)’의 한 명인 김종필(92) 전 총리가 23일 오전 8시15분 별세하며 ‘3김(金)’시대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아침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켜 순천향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복리씨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 사범대 교육학부 2년을 수료하고 1948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임관, 주로 참모직을 역임해 1958년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기획과장을 지냈다. 이어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현대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같은 해 중앙정보부 창설을 주도해 1963년까지 초대부장으로 재임했으며 줄곧 ‘제2인자의 길’을 걸었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컵 아시아 축구대회 선수입장식에서 박수를 보내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사진=연합뉴스)
정치에 입문한 이후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공화당 창당과정에서 증권파동을 비롯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에 휘말리면서 63년 2월 ‘자의반 타의반’ 첫 외유를 떠난 데 이어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의 주역으로서 핵심쟁점이던 대일 청구권 문제와 관련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6·3사태가 일어나자 1964년 또다시 2차 외유길에 올랐다.

이후 1971년부터 1975년까지 4년 6개월 간 국무총리를 지내며 승승장구했으나 1980년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몰려 재산환수의 수난을 겪고 정치활동이 금지됐다.

김 전 총리는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유랑생활을 하다 1986년 귀국한 뒤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1987년 13대 대선에 출마해다가 낙선했다. 그러나 1988년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석의 국회의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 오뚝이처럼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이후 1990년 노태우·김영삼과 민주자유당(약칭 민자당)을 창당해 최고위원이 됐다. 1992년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같은 해 8월 민자당 대표위원을 지내던 중 1995년 2월 민자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 총재가 됐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1989년 당시 김대중 평민당(가운데), 김영삼 민주당(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서울 가든호텔에서 회동을 갖고 특위정국 마무리 등 새해 정국운용에 대해 논의하기 앞서 악수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1997년 대선에선 자신이 창당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다시 대권에 도전했으나 선거 막바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키며 김대중(DJ) 당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함께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내각제 파동과 16대 총선 과정에서 쌓인 공동정권 수장 사이의 앙금은 결국 2001년 9월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 및 공조파기로 이어졌다. 김 전 총리는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재기를 시도했으나 자신의 10선 도전 실패와 함께 고작 4명의 의원만 배출하는 참패를 당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합 당시에는 경선 이틀 전 YS와 전격 회동을 갖고 5촌 조카인 박근혜 후보 대신 “경제 살리기를 할 수 있는 유능한 후보가 선출돼야 한다”고 주장,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며 정계 원로로서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김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쿠데타 원조에서부터 중앙정보부 창설자, 풍운의 정치인, 영원한 2인자, 경륜의 정치인, 처세의 달인, 로맨티스트 정치인 등으로 다양하다. 여러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인생은 영욕과 부침을 거듭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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