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마켓워치]<4>무너지는 美 셰일혁명의 상징

`수평시추+수압파쇄` 첫 상업적 활용 체사피크에너지
수차례 위기에도 美대표기업 성장, `위기를 기회로`
1분기 적자 400배 ↑…컨퍼런스콜 취소, 실적전망 파기
90억불 부채상환 `막막`…파산신청-채무재조정 임박
생존한다 해도 설비투자 축소로 향후 수익악화 불보듯
  • 등록 2020-05-24 오후 2:34:15

    수정 2020-05-24 오후 2:34:15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미국 셰일산업의 선구자이자 `셰일혁명의 상징`으로 불리는 기업이 있습니다. 지난 1989년 설립돼 1993년 뉴욕증시에 상장(IPO)한 셰일 개발(E&P)기업 체사피크에너지(Chesapeake Energy)입니다.

지하수나 우물 파듯이 육상에서 시추공만 뚫으면 원유가 솟아오르는 중동 등과 달리 암석층에 갇혀 있는 원유와 가스를 강제로 분리해 끄집어내는 셰일은 수평시추와 수압파쇄(프래킹·Fracking)를 결합시킴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졌는데요, 이 방식을 가장 먼저 상업적으로 활용한 기업이 체사피크였습니다.

수평시추와 수압파쇄 방식으로 셰일을 채굴하는 원리


비전통적 원유와 가스는 지층구조 상 수평으로 분포해 기존 수직시추로는 시추가 불가능합니다. 이를 해결한 게 수직 방향으로 구멍을 뚫은 뒤 특정 깊이부터 수평으로 뚫어가는 수평시추인데요. 단 수평시추로 파이프를 연결해도 암석과 함께 굳어버린 원유·가스를 곧바로 뽑아내진 못하는 만큼 파이프에 뚫린 여러 구멍으로 엄청난 압력을 가한 물·모래·화학물질을 분사하는 수압파쇄 방식을 써야 합니다.

이 때 물은 암석을 깨고 그 속에 갇혀 있던 원유와 가스를 끄집어내고, 모래가 암석이 깨진 공간에 채우면 가스와 원유가 파이프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 셰일 붐을 이끈 체사피크는 1990년대와 2011년, 2015년 등 주기적으로 위기를 겪으면서도 포춘지 선정 미국 대표 100대 기업에 단골 멤버로 이름을 올렸고, 이후 고비 때마다 칼 아이칸과 레이 달리오 등 내로라하는 유력 투자자들의 지원 덕에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수완을 보여줬습니다. 그런 체사피크가 또 한번 마법을 부려야할 상황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얼마 전 1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체사피크는 크게 쪼그라든 매출과 불어난 적자규모를 공개하면서도 애널리스트들을 상대로 하는 컨퍼런스콜을 아예 열지 않았습니다. 세부적인 실적 내용과 향후 전망을 궁금해하는 시장에 대해 입을 닫아 버린 겁니다. 올해 남은 기간 설비투자도 당초 계획보다 크게 축소하겠다는 자료만 공개하고선 기존에 내놨던 올해 연간 실적 전망치도 폐기해 버렸습니다. 지금대로라면 올 한 해 실적을 전망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뜻이고, 이는 그 만큼 회사 사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체사피크는 1분기에만 83억달러 순손실을 냈습니다. 작년 1분기(2100만달러)대비 적자폭이 400배 가까이 급증했구요. 주당순손실도 852달러나 됐습니다. 이는 85억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자산상각비용 때문이었는데, 유가가 추락하자 비쌀 때 사들인 셰일 유전들의 경제성이 사라졌고 이런 오일과 가스전 상당 수를 털어버린 겁니다. 그러나 자산상각이 끝은 아닙니다. 이들 자산을 살 때 일으켰던 부채가 감당해야 할 숙제입니다. 지난 3월말 현재 체사피크의 순부채는 90억달러(원화 약 11조1600억원)로, 이 중 불과 2주쯤 뒤인 6월 초 갚아야할 빚이 1억3600만달러이고 8월에 상환할 부채도 1억9200만달러에 이릅니다.

체사피크에너지 주가 추이


이렇다보니 체사피크는 조만간 결단을 내려야할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6월 초 부채 상환은 어떻게든 막아본다 한들 8월까지 버티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특히 체사피크가 전통산업분야에서 채무 재조정에 관한 한 최고의 노하우를 가진 로펌인 커크랜드 앤 엘리스는 물론이고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까지 고용해 구조조정 컨설팅에 받자 시장에는 파산설이 파다했습니다. 현재 월가는 앞으로 30~60일 이내에 체사피크가 전면적인 채무 재조정에 나서거나 파산보호(Chapter11)를 신청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올 1월까지만 해도 배럴당 60달러를 훌쩍 넘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코로나19,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 재합의 불발로 역대 처음으로 마이너스까지 추락했고, 현재 30달러초까지 회복했지만 셰일업체들이 손익분기점(BEP)을 맞추기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새로운 유전과 유정을 개발해서 시추와 생산, 운영까지의 전 과정을 감안하면 WTI 가격이 50달러는 돼야 겨우 원가를 맞출 수 있는 게 셰일업체들입니다. 시추를 끝냈지만 셰일 오일과 가스를 빼내기 전인 DUC(Drilled but Uncompleted)에서 필요할 때 생산만 해낼 경우 35달러가 손익분기점이라고 합니다. 적어도 현 유가에서는 생산할수록 손해가 난다는 뜻입니다.

실제 유전서비스업체인 베이커휴즈에 따르면 작년 985개에 이르던 미국 내 셰일 채굴기 숫자는 지난 주 339개로 급감했습니다. 5개월 만에 70%가 생산을 멈췄다는 거죠. 그나마 규모의 경제 덕에 체사피크와 같은 대형사들은 채굴기를 제거하진 않은 상태지만 이대로라면 2분기도, 3분기도 실적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죠.

체사피크도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일단 지난달 이사회 결의 이후 최근 200대1 액면병합을 단행했습니다. 기존에 200주를 가진 주주라면 현재 주식 수는 단 1주뿐이라는 얘기다.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액면병합을 주로 이용하는데, 미국에선 상장폐지를 면하기 위해 자주 쓰는 수법입니다. 뉴욕증시에서는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 주가가 일정 기간 1달러 이상 돼야 하는데, 200대1 액면병합을 단행한 체사피크의 현 주가는 13.71달러로, 올들어서만 92% 이상 급락했습니다. 최근엔 주가 급락을 틈타 회사를 가져가려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있을까봐 포이즌 필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회사 주식을 4.9% 이상 누군가가 매집할 경우 기존 대주주에게 회사 주식을 50%이상 낮은 가격이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입니다.

이런 노력에도 시장은 체사피크의 부활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체사피크에 대해 `강력 매도(strong sell)` 의견을 내고, 일부는 목표주가를 제로(0)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실제 목표주가를 0달러로 제시한 페이지 메이어 CFRA 애널리스트는 “체사피크가 올해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갈 것”이라고 점치면서 “4분기 시작 전까지 채무를 예정대로 상환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사실상의 디폴트를 예고했습니다. 아울러 “신용공여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크로스 디폴트(cross default)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크로스 디폴트는 한 채무계약에서 디폴트가 선언되면 다른 채권자도 같은 채무자에 대해 일방적으로 디폴트를 선언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셰일업계 채굴기 숫자 추이


다만 파산보호 신청이 셰일업체들의 최후를 뜻하는 건 아닙니다. 미국 주요 셰일업체들은 챕터7(Chapter7)을 통한 완전청산을 피하면서 파산보호를 위한 챕터11(Chapter11)을 적극적으로 신청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법정관리와 유사한 개념으로, 회생을 전제로 한 채무 재조정 등이 주를 이룹니다. 앞서 지난 2014년에도 챕터11을 선언한 셰일업체들은 잠시 숨죽인 후 유가가 반등하자 새 출발을 시작한 바 있습니다.

비단 체사피크뿐만 아니라 현재 시장에서 파산설이 돌고 있는 셰일업체는 13~14곳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가가 하락할 때마다 어려움에 처한 셰일업체를 돕기 위해 PEF들이 투자에 참여한 덕에 현재 100여개 셰일업체들이 PEF를 최대주주 또는 주요주주로 두고 있습니다. 당시 셰일업계 구제를 위해 들어온 사모투자펀드(PEF)들이 손바뀜을 하면서 업계를 또다시 지원할 공산이 큽니다.

지난 2014년만 해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적극적으로 유가를 낮추면서까지 시장 점유율을 높여 미국 셰일업체들을 고립시키겠다고 나섰지만, 결국 미국 정부와 금융계 지원 때문에 사우디는 뜻을 접어야 했습니다. 이번엔 그동안 OPEC+라는 결의체를 꾸려 감산에 나서면서도 오히려 글로벌시장 점유율을 미국에 빼앗긴 러시아가 `미국 셰일업계를 손봐주겠다`며 나섰지만, 이같은 미국의 힘에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셰일업체들의 화려한 반등도 기대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체사피크만 해도 생산을 종전대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설비투자 필요액이 한 해 17억~20억달러 수준으로 추산됩니다.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인해 현금흐름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는 이같은 설비투자는 아주 부담스러운 수준입니다.

올 1분기 중 체사피크의 영업상 현금흐름은 3억9700만달러 수준에 불과한 반면 설비투자는 5억100만달러였습니다. 1년 전인 작년 1분기 현금흐름은 4억5600만달러였고 설비투자 지출액은 5억1500만달러였습니다. 현금흐름 부진에 체사피크는 올해 설비투자 지출액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올해 설비투자 목표를 10억~12억달러 정도로 조정했는데, 이는 애초 목표였던 22억달러보다 10억달러 이상 하향 조정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생산량이 줄어들 것은 분명한데 그 감소폭이 얼마인지가 변수입니다. 올해 설비투자 지출 축소는 내년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현금흐름도 악화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파산보호 신청에도 셰일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을 일은 없이 보입니다. 다만 주요한 자산을 매각하거나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지 않는 한 체사피크 등 셰일업체들을 둘러싼 전망은 상당 기간 끔찍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유럽계 스코샤뱅크의 투자은행(IB)부문 애덤 워터로스 대표는 “현재 미국 셰일산업 전체적으로 한 해 1000억달러 정도 자금을 소진하고 있다”며 “최근 5년간만 해도 5000억달러가 사라진 셈인데, 구조적 변화가 없다면 셰일혁명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미모가 더 빛나
  • 빠빠 빨간맛~♬
  • 이부진, 장미란과 '호호'
  • 홈런 신기록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