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일로에 놓인 미국발(發) 글로벌 무역전쟁이 세계 경제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을 태세다. 미·중 양국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한 가운데 얽히고설킨 글로벌 공급망을 타고 한국을 비롯한 각국에도 그 여파가 ‘메가톤급 태풍’처럼 휘몰아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유럽연합(EU) 등 동맹을 향한 전방위적 무역전쟁을 선포할 가능성이 커 전문가들도 그 파장을 가늠하기 어려워할 정도다. 다만, 무역전쟁이 ‘제 살 깎아 먹기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만큼 미국이 막판 대타협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찮다.
장기화 땐 “제2의 대공황”
미·중 양국이 무역전쟁에 사활을 건다고 상정하면 그 피해는 말 그대로 엄청나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도널드 트럼프(사진 오른쪽) 대통령이 공언한 데로 무역전쟁이 지속된다면 최대 2조 달러(2234조원) 규모의 글로벌 교역량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봤다. 이는 연간 전 세계 교역량의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되더라도 그 피해는 적지 않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중국이 미국의 압박을 받아들여 총수출을 10% 줄이면 아시아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평균 1.1%포인트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요 수출국 중 하나인 한국은 이래저래 파장을 피해 갈 수 없는 구조다.
문제는 무역전쟁이 단기전에 그칠 공산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 본질이 세계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한 판 승부라는 점에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나, 이제 막 영구집권 시대를 연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 모두 쉽게 물러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제프 라비 전 중국 주재 호주대사는 미 경제매체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서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며 “대응의 대응을 거듭하다, 엄청난 피해를 본 뒤에야 끝이 날 것”이라고 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중국 석학인 데이비드 달러 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과의 싸움은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위너’로 여겨질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무역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정치적으로 ‘승기’(勝氣)를 가져올 호재라는 의미다.
물론 막판 대타협 가능성도 여전히 살아 있는 카드다. 상대방의 칼날이 두 지도자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 밀집한 ‘팜 벨트’(중서부 농업지대)와 ‘러스트 벨트’(북동부의 쇠락한 공업지대)의 피해가 가장 클 것이 자명한 데다, 마찬가지로 중국도 정보기술(IT)과 금융 등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양국이 두 지도자의 아킬레스건을 정조준한 만큼 ‘루즈·루즈’(Lose·Lose) 결과만큼은 피하자는 대내외의 목소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양국이 천명한 엄포가 실제 작동될 경우 미국의 GDP는 내년 말까지 0.34%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공화당 지지층 800만명이 경제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민주당 지지층(110만명)의 7배가 넘는 규모다. CNBC도 이코노미스트들의 의견을 종합해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타격은 중국보다 미국이 더 클 것이라고 단언했다. 중국 경제 성장률에 미칠 영향은 0.1~0.3%포인트인 데 반해, 미국은 중국에 투자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피해가 엄청날 것이라는 게 이들 이코노미스트의 생각이다.
미국이 무역전쟁을 통해 정치적 이익을 도모할 순 있어도, 대북(對北) 문제에선 오히려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관측도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바꿀 호재가 될 수 있다. 향후 지난(至難)한 과정을 거칠 북한의 비핵화·체제보장 맞교환 빅딜 협상에서 중국의 지원과 협력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나가기 어렵다는 걸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휴스턴 세인트토머스대의 존 테일러 정치학 교수는 “미·중 무역전쟁은 비핵화 논의가 진행 중인 한반도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