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대의 컬처키워드] 트럼프와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 등록 2019-07-01 오전 9:09:32

    수정 2019-07-01 오전 11:05:42

오산공군기지 도착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평택=연합뉴스)
[이데일리 고규대 기자] “여러분은 지구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든 어떠한 위협에 대해서도 퇴치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뭉칠 것이다. 우리는 승리의 날로 이뤄야 한다.”

하나는 현실, 하나는 상상의 한 장면이다. 앞 문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한국을 떠나기에 앞서 오산공군기지에서 미 장병을 대상으로 한 연설의 일부분이다. 뒤 문구는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미국 대통령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외계인과 맞서기에 앞서 용기를 불어넣는 연설 중 하나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다. 하지만 나란히 놓고 보니 이질감이 없다.

30일 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연이었고,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주조연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였다. 판문점에서 북한 땅을 밟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은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보좌관의 말처럼 “초현실적”(Surreal)이었다. 연출되지 않은, 그러나 연출한 것 이상의 퍼포먼스였다. 남북미 정상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니, 의전팀이나 경호팀의 발걸음도 분주했다. 취재진의 동선도 얽혔다.

혼란스러운 몇 시간 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공군이 상주하는 오산공군기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등장에 앞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유엔군 사령관은 적당한 때 박수를 치고 환호하라고 독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이 임박할 즈음 그룹 AC DC의 히트곡 ‘Thunderstruck’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벼락같은 총소리처럼, 찢어지는 천둥소리처럼 울리는 기타 리드에 발맞춰 현장은 달아올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산공군기지의 연설은 하나의 퍼포먼스였다. 판문점 회동과 달리 100% 연출된, 그래서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 20미터 거리의 단상을 한참 걸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목했고, 미소를 지으며 박수 쳤다. 외우기 조차 어려운 특정 장병과 장교의 이름은 프롬프터를 통해 트럼프의 입으로 전해졌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의 한 장면.
트럼프 대통령의 오산공군기지 연설은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후반부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외계인의 지구 침공에 맞서 전투 비행사 출신인 미국 대통령이 직접 출격해 외계인을 무찌르고 무사귀환한다는 내용이다. 대형 격납고 문이 열리면서 등장한 성조기나, 카메라에 잘 잡히도록 단상 뒤에 배치된 전투기 등 미쟝센마저 흡사하다.

세계를 대상으로 힘을 과시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외계인과 싸우는 영화 속 미국 대통령의 비교도 흥미롭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말미 자신의 성과와 함께 미국의 힘을 과시했다. “미국 애국자들의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분들을 위해 감사합니다.” 화면을 통해 바라보는 국내 시청자는 낯선, 그러나 영화에서 봤던 흡사한 장면으로 인해 마치 또 다른 형태의 ‘초현실적’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실제나 상상이나 미국은 지구촌 경찰을 자처했고, 심지어 외계 세력과 맞서는 힘을 자랑한다. 어떤 이들은 ‘덕후도 양덕이라더니 국뽕도 미국 국뽕이다’고 부러워했다.

또 하나의 역사적 장면이 써진 30일. 또 하나의 리얼리티 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 대통령이 재선을 앞두고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이벤트를 연출하는데, 한반도의 운명이 좌지우지된다는 게 내내 씁쓸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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