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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모두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김동신 센드버드(SendBird) 대표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제2 벤처붐이 불 수 있는 조건으로 이같이 제시했다. 김 대표는 “고객 변화와 시장 흐름은 비선형적 체계여서 예측·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일이 규제하기보단 원칙과 철학에 맞게 자원이 흘러가게끔 넛지(nudge)하는 방향이 옳다”며 “문제가 생겼을 때 땜질식 처방으로 순간만 모면하려 한다면 ‘규제 괴물’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벤처투자 선순환
김 대표는 엔씨소프트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소셜 게임업체 파프리카랩을 창업했으며 5년 후 일본 게임업체 그리(Gree)에 매각했다. 2013년 육아맘을 위한 커뮤니티 스마일패밀리를 창업하며 미국에 진출했다.
센드버드는 스마일패밀리의 메시징 기능을 떼어낸 기업용(B2B) 메시징 기술 솔루션 스타트업으로 지난해 5월 시리즈B에서 1억200만달러(1190억원)를 투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메시지 월 10억건 이상이 센드버드를 통해 전송되며 월간 사용자 수(MAU)는 1억명에 육박한다. 고객사로는 NBA, 야후스포츠, 고젝(Gojek), 버진모바일, 딜리버리히어로, KB국민은행, LG유플러스 등이 있다.
정부가 설정한 자격조건과 테마 등도 한국 VC엔 걸림돌로 작용한다. 콘텐츠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던 VC가 정부 자금을 지원받으려 인공지능(AI) 스타트업에 투자해야 하는 식이다.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분야의 스타트업에 투자할 땐 책임을 분산하려 남들 하는 데 따라가는 패시브펀드가 돼버릴 경향도 있다.
엑시트 과정 역시 차이가 크다. 한국에선 ‘큰손’이라 할 수 있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사들이는 데 적극적이지 않아 투자자 구성에 한계가 있고 결국 ‘50+1%’와 같은, 모호한 형태의 엑시트가 상당수다. 기업 가치를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해 기업공개(IPO)하는 사례도 드물다.
이와 달리 미국에선 스타트업을 사들이려는 기업 자체가 많아 스타트업에 조건이 유리해지고 결국 ‘대박’ 친 스타트업이 많다. 다양성과 큰 규모가 생태계를 이루는 밑바탕으로 작용한 셈이다. 그는 배달의민족이 해외 자본에 팔린 데 대한 비판 여론에 대해 “쇄국 정책만으로 고객과 시장 흐름을 이길 수 없을 뿐더러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시장 흐름을 읽고 앞으로 반드시 올 미래와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결국 한국은 투자와 회수, 재투자로 연결되는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선순환의 생태계를 조성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국내 VC는 크게 돈 버는 사례도 없는 데다 정해진 펀드 만기 안에 두세 배 내면 만족하는 정도고 창업자 역시 성공도, 실패도 아닌 채로 끝나다보니 다시 창업하거나 번 돈으로 투자에 나서지도 않는다”며 “생태계 자체가 적당한 자금이 흘러왔다가 다시 나가는, 제세동기로 심장을 강제 박동시키는 흐름”이라고 우려했다.
비선형적 시장 VS 선형적 정부 규제
아울러 김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에 어렵더라도 기회가 무궁무진한 해외로 눈을 돌릴 것을 당부했다. 그는 “모든 혁신은 외부에서 오는데 한국은 안에서 많이 싸우고, 밖에서 에너지를 받지 못하다보니 에너지가 고갈돼있다”며 “한국의 1980년대와 닮아있는 인도네시아가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듯 밖으로 나가 만들어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