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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한 나라 경제의 최대 적은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이 ‘디플레이션(물가가 계속 하락하는 현상)’을 꼽는 건 이유가 있다.
디플레의 전조는 소비자가 지갑을 닫는데서 시작한다. 이는 물건값 하락을 부추기고, 사람들은 소비를 미루려는 심리가 더 커진다. 가격이 뚝뚝 떨어지는데,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사겠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기업은 곧바로 직격탄을 맞는다. 판매가격 하락하고 판매물량이 감소하면서다. 당연히 투자와 함께 고용과 임금도 줄이게 되고, 이는 다시 소비 여력을 더 악화시킨다. 이른바 ‘디플레의 소용돌이(deflationary spiral)’ ‘디플레의 덫’이다.
경제를 넘어 사회 전체를 침몰시키는 디플레는 일찍이 인플레보다 더 위력적인 위험으로 간주돼 왔다. 계량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어빙 피셔(1867~1947)는 디플레를 두고 “전(全) 경제에 걸친 파산”이라고 칭했을 정도였다.
멀리 있지 않다. 한때 세계 경제를 호령했던 이웃나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일본이 디플레의 덫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다는 관측이 나와 주목된다. 돈을 풀대로 풀어 경기를 살리려는 노력이, 꼬박 20년이나 걸려 조금씩 빛을 보는 것이다.
17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0.2%) 이후 1년 넘게 플러스(+)를 지속하고 있다.
아직 일본은행(BOJ)의 목표치(2.0%)에는 한참 못미치는 0%대이기는 하다. 이례적인 저(低)물가 지적이 나오는 우리나라도 현재 1% 후반대다. 하지만 일본의 직전 7개월 상승률이 마이너스(-)였다는 점에서 물가가 조금씩 꿈틀댄다는 해석은 가능해 보인다. 특히 올해 7월부터는 꾸준히 0.5%를 상회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갭률도 플러스 전환하고 있다. GDP갭은 잠재 GDP와 실질 GDP 차이다. 플러스의 GDP갭은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상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 이상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BOJ가 추정한 올해 2분기 일본의 GDP갭률은 1.2%다.
이재원 한은 아태경제팀 과장은 “일본의 GDP갭률은 경기 회복이 지속되면서 지난해 하반기 플러스로 전환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올해 더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즈호종합연구소 등 일부 민간연구소는 일본 정부가 내년 하반기께 디플레 탈출을 공식 선언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디플레 탈출에 모든 경제 정책의 초점을 맞춰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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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단 이르다” 관측도
다만 디플레의 골이 워낙 깊었던 만큼 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도 많다. 한은에 따르면 일본은 임금 정체 탓에 단위노동비용(명목임금/실질부가가치액)이 여전히 2005년 수준을 하회하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내년 4월 임기 만료)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와카타베 마사즈미 와세다대 교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추가적인 통화완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