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인 뉴욕)`창작의 저주`에 빠진 카포티

  • 등록 2006-03-08 오후 2:22:22

    수정 2006-03-08 오후 2:22:22

[뉴욕=이데일리 하정민특파원] 1994년 퓰리처 수상작 `수단의 굶주린 소녀`를 기억하는가. 이 사진을 찍은 케빈 카터(Kevin Carter)는 가장 불행한 언론인 중 한 사람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으로 아프리카의 기아 및 내전 취재 전문 사진기자였던 그는 당시 아프리카의 극심한 기아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수단 남부에 들어가 어느 식량 센터 근처에서 아사 직전의 한 소녀를 발견한다.

불행한 어린 소녀 뒤에는 살찐 독수리가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독수리가 호시탐탐 때를 기다리던 순간에 카터는 셔터를 눌렀고 이 사진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카터는 이 사진으로 퓰리처 상을 수상했지만, 그 광경을 본 순간 셔터를 누를 게 아니라 독수리를 쫓고 소녀를 구했어야 했다는 세상의 거센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사진을 찍은 후 곧장 독수리를 쫓아냈다"는 그의 항변은 무력할 뿐이었고 고통 속에 빠진 그는 그해 7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사진 한 장이 카터에게 퓰리처 상과 죽음을 동시에 안겨준 셈이다.

2006년 아카데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유명해진 `카포티`도 이와 비슷한 창작의 저주를 소재로 한 영화다. 한국에는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미국 내에서도 만년 조연 배우에 머물렀던 필립 시무어 호프먼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이 영화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자로 유명한 게이 작가 트루먼 카포티의 삶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카포티의 대표작 중 하나인 `냉혈인간(In Cold Blood)`은 당시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가족 집단살인을 소재로 한 실화 소설이다.

인구 수 백명도 안 되는 캔자스 주의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선량한 한 가족이 무참히 살해당한다. 사건이 발생하기 얼마 전 가석방으로 출옥한 딕 히콕과 페리 스미스가 용의자로 떠오르고, 우여곡절 끝에 둘은 체포당해 감옥에 갇힌다.

사건을 신문에서 본 카포티는 자신의 소설에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소재가 나타났다는 점을 직감한다. 당장 캔자스로 달려간 카포티는 두 명의 용의자 중 소심하고 내성적인 페리 스미스를 이용하기로 마음먹는다.

카포티는 스미스의 마음을 열기 위해 더러운 감방에서의 생활을 마다하지 않고, 식음을 전폐한 스미스에게 음식까지 떠먹여가며 인간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이를 신뢰한 스미스가 살해 사건의 전모를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하고 천재작가 카포티는 야심작의 집필에 몰두한다.

재판 후 사형을 선고받은 스미스는 카포티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믿고 그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그러나 이미 스미스로부터 살인과 관련한 이야기를 다 들은 카포티는 스미스의 연락을 무시하고 집필에만 열중한다. 결국 스미스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후 카포티의 삶은 케빈 카터와 상당 부분 닮아 있다. `냉혈인간`은 사형제도를 둘러싼 뜨거운 찬반 논란을 일으키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카포티는 당대의 걸작을 생산해 냈지만 스미스의 사형 이후에는 결코 이전과 같은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없었다. 스미스의 죽음에 무력하게 대응한 자신을 비난하던 카포티는 알콜과 마약에 찌들어 지내다 외로이 세상을 떠난다.

스미스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카포티의 행동이 진심이었는지, 책에서 강하게 풍기는 `죄인필벌`의 메시지가 그가 진정 원했던 것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영화는 어떤 태도도 취하지 않는다. 하긴 예술의 유미주의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그 누가 자신있는 대답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카포티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 비서만이 이렇게 말할 뿐이다. "당신은 그를 구하고 싶지 않았던 거였어요."

영화 자체도 훌륭하지만 필립 시무어 호프먼의 연기도 대단하다. 호프먼은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며 야비한, 그러나 자신의 단점을 너무나 예민하게 자각하며 괴로워하는 카포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왜 그가 아카데미 트로피를 가져갔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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