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온 듯, 예쁘게 낡은 고향…청원 벌랏 한지마을

  • 등록 2009-09-30 오후 12:15:00

    수정 2009-09-30 오후 12:15:00

[경향닷컴 제공] 충북 청원에 있는 오지라고 했을 때 충청도에도 두메산골이 있을까 의아해했다. 흔히 두메라고 하면 강원도 심심산골이나 경북 봉화나 울진 같은 내륙지방을 떠올리게 마련. 청원은 의외다. 호기심으로 찾아간 마을은 꽤 깊숙했다. 대청호반을 따라 구불구불 들어갔고, 고개를 넘으니 마을이 하나 나왔다. 행정지명은 청원군 문의면 소전1리. 들어가는 길에 걸린 이정표는 모두 벌랏 한지마을로 돼 있다. 동쪽 끝에 있는 막다른 마을이니 ‘동막골’이라고 해도 될 법한 마을이었다. 집들은 낡아서 정겨웠고, 담배창고로 썼음직한 흙집도 많았다. 번듯하게 새로 지은 농촌체험관에서는 한지체험을 할 수 있다고 했다.

▲ 벌랏마을은 1970년대 농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황토담배막 옆에서 한 할머니가 가마솥 뚜껑과 채반 위에 나물을 말리고 있다.

마을이 생긴 것은 임진왜란 이후다. 화전민들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나저나 왜 한지마을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옛날에 여그 한지가 유명했어. 집집마다 밭에다 닥나무를 심고 농한기에는 호롱불 켜놓고 한지를 만들었는디 수입이 꽤 좋았던겨. 보리 수매를 할 때도 마을에서 1000가마는 했다니까. 오죽했으면 보리 천냥, 과일 천냥, 한지 천냥이라고 했겄어.”

12대조 때부터 이 마을에서 살았다는 토박이 이정룡씨(69)는 “초등학교 졸업하면 누구나 한지 일을 거들었지. 음력 설 쇠고 닥나무 베어놓고 손 시리지 않은 봄부터 가을까지 틈나면 한지를 만들었지”라고 했다. “한지 한 장에 쌀이 반되던가, 한되던가 했을겨. 집집마다 적게는 1000장, 많게는 3000장 정도 했응게 우리 마을은 넉넉하게 살았지. 집집마다 소 한두 마리 정도는 있었다니까….”

당시엔 한지 판매점이 따로 있는 게 아니어서 알음알음으로 주문을 해와 만들었다고 했다. “사돈네 80촌이라는 말이 있어. 시집간 이 마을 사람들이 그 마을에서 한지가 필요하다고 하면 이 사람 저 사람 입을 통해 우리 마을에 알려주는겨. 그럼 한지를 만들어 갖다주고 돈 대신 쌀을 받아와. 쌀도 그 자리서 주는 게 아니라 준비해놨다고 그라믄 가서 가져왔거든. 보은, 옥천, 대전, 신탄진, 조치원 이런 데서 많이 사갔지.”

한지 제작을 그만두게 된 것은 1975년도다. “아파트 생기면서 유리창 쓴게 한지가 필요없어진겨.” 비록 마을 사람들이 넉넉하게 살긴 했다지만 교통은 당시에도 불편했단다. 문의읍까지가 딱 22㎞인데 새벽에 나가면 한밤중에 돌아왔다고 했다.

“당시에는 농협 직원도 벼슬이었어. 비료 하나 살려고 소 끌고 가믄 이리 저리 시간을 끌다가 오후 늦게야 받거든. 비료 푸대 터진 것 주믄 그걸 여까지 어떻게 갖고 와. 소도 하루종일 못먹고 걷기만 하니까 나중엔 드러누워 버려. 그라믄 검정고무신에 물 떠다가 한손에 소 고삐를 잡아끌고, 비료는 사람이 짊어지고 오는거여.”

마을은 외졌다. 과거엔 소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문의 사람들이 우시장으로 안내해주기도 했단다. 한국전쟁 때에는 대전에서 학교 다니던 마을 사람들에게서 전쟁이 터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피란도 가지 않았고, 국군도 인민군도 오지 않았단다.

그렇다고 마을이 산첩첩 물첩첩 감춰진 은둔지만은 아니었다. 대청호가 생기기 전 마을은 금강 줄기에 붙어 있었는데 강 건너 보은쪽 백사장이 워낙 좋아 피서철이면 인산인해를 이뤘다는 것이다. 배만 타면 마을로 들어올 수 있었지만 당시엔 굳이 마을까지 찾아온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활권도 보은과 대전권이었지 문의는 아니었단다.

“배 타고 20분만 가면 강 건너가 보은군 해남면 어부동 마을이여. 댐이 생기기 전만 해도 거그 백사장이 대단혔어. 대전 사람 여그 다 있나 싶었다니까.”

그 흔적은 마을 끝자락에 가보면 알 수 있다. 상수원보호구역이란 이정표가 있는 마을 끄트머리 오른쪽 숲길을 따라 1분 정도 걸어가면 시멘트로 지은 낡은 터미널이 나온다. 바로 그 앞이 선착장이었다. 포구에 배를 매두던 돌들은 이가 하나 둘 빠져 몇 개는 없어졌고, 하얀 터미널은 낙서만 어지럽지만 마을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을은 많이 변하지 않았다. 층층논이 마을 가운데 있고, 공동샘에는 돌너와를 덮었다. 곳곳에 담배막이 보였고, 시멘트로 포장한 길 양편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다. 70년대 잘 정돈된 마을 같아서 정겹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50~60줄로 보이는 아낙은 “두 번 들어와보고 덜컥 집을 사버렸다”며 “마을이 참 아름답다”고 했다.

▲ 한지체험을 마친 아이들이 한지를 펴든 채 웃고 있다.
이 마을은 2006년 한지체험관이 들어서면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구멍가게 하나 없던 마을인데 여행자들이 식사할 데를 찾다보니 식당도 2개나 생겼어유. 사람들이 여그 와서 먹어보고 좋다고 해서 꽤 유명한 식당이 됐다니까요. 그나저나 음료수라도 파는 곳이 있어야 하는데 자판기도 없으니….”

체험관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정귀순씨는 “그래도 밤에 별을 보면 엄청 예쁘다. 반딧불이도 살고 있어서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고 자랑했다. 지난 여름 방학때만 해도 사람들이 수백명 찾아왔는데 “신종플루가 뭔지, 그 소식 나고 딱 끊겼다”고 아쉬워했다.

벌랏마을을 돌아나올 때 인근에 산다는 50대 남자는 “나도 이 마을 처음 온다”고 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포도를 서너 박스 샀는지 승합차에 싣고 갔다. 벌랏마을은 어딘지 정이 들러붙는 그런 마을이다.

▲여행길잡이

* 내비게이터에 벌랏마을이라고 치면 안나오기 십상이다. 청원군 문의면 소전1리라고 치자. 청원~상주 고속도로 청원IC에서 빠진다. 톨게이트에서 나와 좌회전, 32번 국도를 타고 문의면 소재지까지 간다. 이후 청남대 이정표를 보고 계속 달린다. 괴곡삼거리에서 좌회전, 다시 염티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소전2리다. 여기서 고개를 넘으면 소전1리다.

* 문의면사무소 앞에 있는 구룡식당(043-297-6754)은 참마주 도리뱅뱅이와 어죽을 잘 한다. 도리뱅뱅이는 2006년 충북음식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음식이다. 1만2000원. 어죽은 4000원. 2인분 이상 주문해야 한다.

* 벌랏마을 한지체험관(043-221-7611)은 한 가족이 와도 체험이 가능하다. 대신 예약해야 한다. 체험과정에 따라 5000~1만원. http://bulat.go2vil.org. 단체여행객의 경우 마을에 요구하면 다람쥐와 고슴도치 만나기, 촛불잔치, 담력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

* 벌랏마을에는 민박집이 많다. 마을 홈페이지(http://bulat.go2vil.org)에 들어가면 민박집 사진과 가격, 연락처 등이 나와 있다.

* 청원에는 옥화 자연휴양림도 있다. 매달 1일 오전 9시부터 인터넷으로 다음달 사용자를예약받는데 주말예약은 약 두 시간 만에 동난다. www.cbhuyang.go.kr/ok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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