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어릴 적부터 ‘평가’를 받으며 자란다. ‘쟤는 예쁘네 아니네’ ‘눈이 크네 작네’ ‘말랐네 뚱뚱하네.’ 그래서일까. 여성은 남성보다 ‘눈치’가 빠른 것 같다. 문제는 장점으로 승화해야 할 눈치가 ‘단기 성과’에만 연연하는 모습으로 비칠 때가 잦다는 점이다.
오는 30일 서울 반포 세빛섬 FIC홀에서 열리는 제3회 세계여성경제포럼(WWEF) 연사인 김행(사진·55)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이하 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길러야 할 덕목 중 하나는 ‘대범함’”이라며 “이제는 (눈치를 보는) 조급함을 버리고 앞을 내다보는 배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자신을 산전수전 다 겪은 ‘여성’으로 정의한다. 남들 눈에는 ‘성공한 여성’의 표본으로 보이지만, 꽤 굴곡 있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원래 김 원장은 여론조사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잘 나가는’ 언론인이었다. 기세를 몰아 2002년 정몽준의 국민통합21 창당 때 대변인으로 정계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 파기 이후 더 큰 날개는 펴지 못했다.
김 원장은 “노 후보의 지지를 철회할 때 대변인으로서 이를 발표하는 역할을 맡았다”며 “돌이켜 보면 이 행위도 제대로 된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해 생긴 실패의 한 경험”이라고 회고했다.
그런 김 원장에게 ‘여성이 야심을 드러내는 게 답이냐’고 물었다. 김 원장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때그때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능력부터 키우라’는 것이다. 야심을 숨길 때, 드러낼 때를 제대로 구분하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셰릴 샌드버그의 저서 ‘린인(Lean IN)’을 보면 움츠러들지 않는 여성이 되라고 강조하는 부분이 많이 나옵니다. 저도 상당 부분 공감하죠. 특히 순치(馴致)되는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 여성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절대 과(過)하면 안 됩니다.”
김 원장은 “현재는 과거의 축적이고, 현재의 축적은 곧 미래”라고 단언했다. 무작정 야심을 드러내면 당장 과실을 딸 가능성은 커지겠지만, 그만큼 많은 대가를 지불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 원장은 “실제 자신이 쌓은 업적과 평가는 미스매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평가는 먼 훗날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같은 맥락에서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을 갖은 여성이야말로 ‘리더’를 맡을 자격이 있다는 게 김 원장의 지론이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조직을 위하는 사람, 또 후배와 동료를 먼저 생각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의 선결 조건이라고 봅니다.”
그녀의 리더십은 양평진흥원 경영 과정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김 원장은 양평진흥원장 취임 이후 임직원에 대한 고과(考課)를 매길 때 ‘개인의 업적’이 아닌 ‘후배 양성 능력’과 ‘조직에 대한 충성도’를 최우선으로 점검한다고 한다.
“피해의식은 피해라”
김 원장은 ‘피해의식’을 넘어서야 할 첫 번째 걸림돌이라고 강조했다. 여성지위가 꾸준히 상승하고 남녀평등이 완성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여성은 약한 존재’라는 의식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여성이어서 실패했다’라고 믿는 잘못된 편견에 빠진 여성들이 제법 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평소 단기 성과에 조급해하고, 그렇다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도 못하면서 포기는 하지 못해 나온 결과물”이라며 “피해의식을 극복해야 진정한 여성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김행’이란 이름을 들으면 주로 ‘성공한 여성’을 떠올린다. ‘독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김 원장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손사래를 친다. 사실 김 원장은 아이를 키워본 엄마이자 시어머니도 모시는 며느리다.
대변인 시절 기자들은 그녀를 ‘대변인님’이나 ‘선배’가 아닌 ‘누님(누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오랜 기간 청와대를 출입했던 한 기자는 “그동안 청와대를 거친 대변인 중 진정성이나 친근감으로 봤을 땐 최고였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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