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현대車 목에 방울달기

  • 등록 2010-12-21 오후 2:11:47

    수정 2010-12-21 오후 2:27:56

[이데일리 좌동욱 기자] 현대건설(000720) 채권단(주주협의회)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던 현대그룹과 매각 협상을 중단하자 세간의 관심은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수 있을 것인가로 쏠리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자와 협상이 결렬되면 예비협상대상자와 협상을 재개하는 게 M&A(인수·합병)업계의 관행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가능성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채권단 말대로 절차상 하자가 없고 주주들이 동의하는 사안이라면 현대차그룹과 협상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채권단 입장에선 협상을 거부할 경우 4조원 이상의 매각 차익을 거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 결과적으로 배임행위가 될 수 있다는 법률 검토의견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현대건설 M&A건에서 분명히 따지고 넘어가야할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 우려감은 글로벌화로 거대해진 국내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게 새삼 입증됐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러한 역학 관계는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만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결과가 공정한 룰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상황을 되짚어 보자. 현대건설 매각 주관기관인 외환은행이 채권단 운영위내의 충분한 협의없이 현대그룹과 현대건설 매매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자 현대차그룹은 외환은행에 예치된 1조3000억원의 거액 예금을 일시 인출했고 일부 직원들은 외환은행 급여통장도 다른 은행으로 교체했다. 현대차그룹은 또 외환은행에 대해 500억원의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겠다는 으름장도 놨다.

물론 MOU 체결을 위임받았던 외환은행이 법적 소송 부담감 때문에 채권단과 합의없이 MOU를 체결한 것도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였다. 하지만 더 곱씹어봐야할 대목은 재계 2위 재벌그룹의 실력 행사가 결과적으로 먹혀들어간 구조다.

외환은행은 혹시나 있을 추가 보복(?)에 전전긍긍했다. 현대차그룹은 물론 수많은 협력업체까지 실력행사에 동참할 경우 외환은행의 기업금융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게다가 범현대가의 특성상 현대중공업이나 KCC 등으로 전선이 확대될 수 있다는 `보이지 않는 중압감`에도 떨어야 했다.

현대차그룹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뿐만 아니라 우리은행이나 정책금융공사 최고경영진도 사석에서 이같은 현대차그룹의 행태가 불공정거래에 해당할 수 있고, 앞으로 국내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토로했다. 금융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그룹 재무적 투자자(FI)로 나선 동양종금증권 고위 관계자는 "현대차로부터 향후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채권단 차원에서 공식적인 문제제기는 없었다. 채권단이 현대그룹의 인수자금 실체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행태와 크게 대비된다.

채권단은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는 안건이 전체 주주협의회에 상정될 경우 부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명분은 둘째로 치더라도 반대표를 던지면 현대차그룹에 낙인이 찍혀 두고두고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걱정이 있다"며 "금융당국을 제외하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나설 금융회사가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금융권에선 외환은행이 최근 현대차그룹과 협상을 서두르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것도 그동안 현대건설 M&A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에 밉보였던 행동을 만회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외환은행을 인수할 하나금융 내부에서도 현대건설 매각건으로 인해 외환은행이 입게 될 기업금융분야 손실을 우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대건설 M&A건은 금융권에서 돈을 과도하게 빌려 M&A에 나섰던 국내외 기업들이 잇따라 쓰러졌던 `승자의 저주` 문제를 금융회사들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만들어준 딜이다.

채권단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당시 인수 후보자들의 자금 출처를 따져보지 않았던 점이나 우선협상대상자 심사 이틀만에 승자를 가린 것도 대우건설이나 대우인터내셔널 매각 등 기존 M&A 관행을 충실히 따른 결과였지만, 결국 문제가 됐다.

기존 관행에 문제가 있다면 관행을 바꿔야 한다. 새로운 출발점은 향후 M&A 과정에서 기업의 자금조달 능력을 좀 더 면밀하게 따져보는 일이다.

또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룰을 만드는 것도 현대건설 매각이 국내 금융권에 남긴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과거처럼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당시의 부작용을 감안할 때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압도하려는 형태가 가져올 문제도 클 수 밖에 없다. 공통점은 공정한 룰의 훼손이다. 금산 분리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우리 엄마 맞아?
  • 토마토에 파묻혀
  • 개더워..고마워요, 주인님!
  • 공중부양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