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전략포럼 2010)올브라이트, 타고난 분쟁해결사

  • 등록 2010-05-24 오후 3:40:14

    수정 2010-05-27 오전 9:16:48

[이데일리 안근모 기자] 3월15일 독일군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로 진군해 들어왔다. 열흘 뒤인 3월25일 외할머니는 나를 프라하로 데려왔다. 그날 밤 열한 시에 부모님과 나는 두 개의 자그마한 여행가방을 갖고 기차로 그 나라를 탈출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자서전 '마담 세크러터리(Madam Secretary, 황금가지刊)'에서 인용.


이데일리의 `세계전략포럼 2010` 기조연설을 맡은 매들린 코벨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은 1937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일생은 세계 현대사의 축소판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중부 유럽에서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이자, 평화의 요새였고, 문화의 메카였다. 그러나, 올브라이트가 태어난지 얼마 안 있어 독일의 히틀러는 프라하에 괴뢰정권을 세우더니 체코슬로바키아를 강점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그녀의 가족은 고국을 피해야만 했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아버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아버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게 역사와 외교정책에 대해 이야기했고 아버지의 확신은 나의 확신이 되었다. -자서전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외무부 본부에 근무하던 외교관. 탈출이 불가피했다. 올브라이트는 영국에서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의 외교관으로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그녀는 자유 체코슬로바키아로 돌아갈 수 있었으나, 조국은 이내 공산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다시 스위스와 영국으로 옮겨 다니던 끝에 1948년 11월11일, 제1차 세계대전 휴전 기념일에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며 미국 뉴욕에 도착했다.

유고슬라비아 대사를 지냈던 올브라이트의 아버지 요세프 코르벨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국제관계학과를 개설한 덴버 대학에서 교수직을 얻었다. 그곳에서 올브라이트는 미국 국무부에서 일했던 덴버대학 학장 벤 체링턴과 국제관계와 민주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켄트덴버스쿨 학창시절 올브라이트는 국제관계클럽을 창설해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다.

매사추세츠주의 명문 여대 웰즐리칼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올브라이트는 워싱턴DC의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연구 고급과정을 수학했고,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곳에서 올브라이트는 훗날 지미 카터 대통령의 안보담당보좌관이자, 자신의 상사가 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워싱턴 시절, 딸아이 학교를 위한 기금모금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주도함으로써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그 인연으로 올브라이트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에드 머스키 상원의원을 위한 모금활동에 참여,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머스키 의원의 수석 법률보좌관으로 일하던 그녀는 카터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된 브레진스키의 부름을 받아 국가안보위원회(NSC)의 대의회 연락관 일을 맡게 됐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공화당 정부 시절 우드로윌슨 국제센터와 조지타운대학 등 학계에서 내공을 쌓던 올브라이트는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로 나선 마이클 듀카키스와 제럴딘 페라로를 도우며 정치활동을 재개했으며, 1992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민주당 정권을 창출하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행정부 인수작업을 총괄하는 전직 부장관 워런 크리스토퍼의 전화였다. 그는 아칸소 주의 리틀록에서 전화를 걸고 있으며 클린턴 당선자가 내게 유엔대사 자리를 제안했는데 나에게 먼저 의향이 어떤지 물어보라는 거라고 했다. -자서전

1993년, 그녀는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유엔대사 임명장을 받았다. 외교관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올브라이트 대사는 심각한 난제와 도전들을 줄지어 맞닥뜨려야했다. 가난과 기아에 빠진 소말리아에서는 무장폭도가 활개를 쳤고, 무력진압에 나섰던 미군은 심각한 저항에 직면했다. 르완다에서는 대규모 인종학살이 자행됐지만 미국과 유엔은 무기력했다. 그녀는 결국 때로는 위험한 현장을 발로 뛰었고, 때로는 목청을 높여가며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갔다.

"국무장관이 되어주십시오." 이것이 대통령이 처음 꺼낸 말이었다. 나는 마침내 사실을 믿게 되었다. 나는 느린 말투로 대답했다. "영광이고 감사할 뿐입니다. 물론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자서전
 
1997년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미국의 64번째 국무장관으로 취임했다. 미국 역사상 첫 여성 국무장관이자,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여성이 됐다.

미국 국무장관으로서 그녀는 코소보 전쟁과 보스니아 전쟁 등 발칸반도 문제에 의지와 인내를 가지고 깊이 관여, 결국 분쟁을 종식시켰다.

그리고 2000년, 올브라이트는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두 차례의 협상에 나선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평화무드가 형성된 때였지만, 북한의 미사일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올브라이트에게 1998년의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약속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현재 글로벌 투자전략을 자문해 주는 컨설팅 회사 '올브라이트 그룹'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머징마켓에 특화한 이 회사는 고객들에게 글로벌 사업대상을 찾는 전략을 짜 주거나, 정치적 또는 기업간 파트너십을 구성하는 문제와 위기대응 방안을 조언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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